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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5.09 06:53

내사랑내곁에 "엄마의 잔인한 충고"

가족에게조차 마음놓고 의지하지 못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한 미군 병사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전쟁이 끝났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에요."

그리고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조심스럽게 덧붙여 말했다.

"어머니 그런데 이번에 친구랑 함께 집에 돌아가려 하거든요? 군대에서 사귄 친구인데 부상으로 두 눈을 잃고 다리도 없어요."

어머니는 대답했다.

"앞도 못 보고 걷지도 못한다는 말이니? 그런 친구와는 사귀지 마렴."

그로부터 며칠 뒤 어머니는 전쟁으로 두 눈과 다리를 잃은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군으로부터 전해듣게 되었다. 친구의 이야기는 바로 그 병사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참 미솔아, 너 미주 소식 들었어? 걔가 애를 낳았단다? 너, 앞으로 미주하고 연락하지 마!"

어쩌면 인간사회의 수많은 병폐는 바로 그러한 상상력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말하는 역지사지라는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내가 그러한 처지가 되었다면.

가수 강원래 또한 그 끔찍한 사고로 평생 걸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나서야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던가. 평소에야 누가 자기가 장애인이 되리라 생각이나 하겠는가? 자기가 아니더라도 주위의 누군가 장애를 안고 장애인으로 살아가리라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장애인 시설이 들어선다 하면 집값 떨어진다고 무리지어 반대하고, 장애인관련한 정책이나 장애인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냉소를 보내는 것일 게다.

사람을 때리고도 설마 죽기야 할까? 사람을 그렇게 때리면서도 설마 그렇게 아프기야 하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범죄자들 역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면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딸 선아(이혜숙 분)으로부터 아이를 빼앗아 고아원에 내다 버린 강여사(정혜선 분)가 그리도 두려워하던 그것. 딸로 하여금 평생 자식을 잃은 멍에를 안고 살아가도록 만든 바로 그것이다.

"결혼도 안한 네가 그러고 돌아왔는데, 세상사람들이 알아 봐라? 다 너를 위해서였어!"

태연히 친구와의 연락마저 끊으라 이야기할 수 있는 그것. 그 자세한 내막도 알지 못한 채 학생이고 아직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단정짓고 단죄하려는 도미솔(이소연 분)의 엄마 봉선아(김미숙 분)의 모습이야 말로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도미솔이 장차 겪게 될 일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가 헤쳐나가야 할 고통과 절망과 좌절의 인고의 시간일 것이다.

과연 아이를 지워야 하는가? 그래서 결국 도미솔은 아이를 지우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하고 어른의 옷을 입고 산부인과를 찾아간다. 그리고 산부인과에서 자신이 품고 있는 생명의 무게를 깨닫고 돌아서고 만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거부당할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지키려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고독과 절망이라는 것은. 생명의 환희를 알기에도 너무 어리고 절박하다.

뻔하게 그나마 자궁에 생명을 품고 있는 어머니에 비해 남자는 쉽게 도망쳐 버리려 들고.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조차 모르면서 무책임하게 일을 저지르고 보는 그 유아적 이기는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미숙아를 보는 듯하다. 생각한 대로 그런 미숙한 아이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하여튼 도대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이를 낳아 본 어머니로써 보다 유심히 지켜보았으면 미리 알아챌 수도 있었을 텐데. 하긴 눈치를 채더라도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더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아이가 힘들어하는 데도 오로지 공부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고민이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많은 고민들에 휩싸여 살아간다. 그것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족일 터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자식 대학 보내는 것이다. 보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고석빈(온주완 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그렇게 비겁하게 어머니의 뒤에 숨어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가장 의지해야 할 순간에조차 홀로 외로이 고통받고 괴로워해야 하는 그런 모습들에 대해서.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참 적나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여사가 아이를 버리고, 그 아이를 버려야 했던 이유를 봉선아의 입을 통해 말하고, 그것으로써 도미솔의 미래를 예언한다. 강요한다. 자신을 위한 선택을. 모두를 위한 선택을. 그리고 자식에 집착하는 또 한 사람의 어머니 배정자(이휘향 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항상 자식의 편에서 남의 자식을 망치는 맹목적인 자식사랑의 단편이다.

결국 선아의 유언으로 인해 강여사는 계속 고아원에 버린 선아의 아들을 찾으려 할 것이고, 아마 그는 이소룡일 터다. 역시나 미혼모로써 혼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도미솔과 미혼모의 자식으로 버려진 이소룡의 만남, 그리고 고진국(최재성 분)의 조카로써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도미솔을 외면한 채 도망쳐 버리는 고석빈. 그들은 아마 강여사의 회사에서 만날 것이다. 이들의 얽인 운명은?

아무튼 식겁했다. 선아가 눈물을 흘리며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릴 때. 운전자의 입장이 되어 버렸다. 죽은 것이야 마음이 혼란스럽고 더구나 눈물까지 흘리느라 제대로 앞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운전을 한 당사자의 책임이라지만, 덕분에 그로 인해 사고까지 내고 사람을 죽이게 된 반대편 운전자의 입장은 뭐가 되겠는가? 그나마 상대편 운전자는 트럭이었다. 더 작고 내구성이 약한 차여서, 혹은 보행자여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항상 운전면허를 따면서 듣는 이야기. 방어운전. 졸립거나 피곤하거나 그래서 운전에 지장이 있을 것 같은 경우 운전대를 놓고 잠시 쉬거나 아니면 대리운전을 불러 운전케 하라. 정상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운전하는 것은 흉기를 몰고 다니는 일이다.

그래도 한 사람이 죽었으니 슬퍼해야 하는데 하필 그 순간 상대편 운전자의 입장이 되어 버리고 나니 동정심마저 생기지 않는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런 식으로 운전하면 이렇게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이었을까? 보면서 내내 불편했던 장면이었다.

이제 다음주부터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아이와 그를 여전히 아이인 채 두고 싶은 부모에 의한 막장극이 펼쳐질 텐데.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고 고통받는 또 한 어머니와 가족들과. 궁지에 몰리게 되는 도미솔 역시. 제껴버릴까? 감정이입하여 보기에는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기대하게 된다. 어떻게 드라마는 현실을 그려내면서도 다시 희망을 보여주려는가? 그것이 내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일 것이다. 적나라한 현실 만큼이나 대안도 구체적이고 아름답기를.

약간 질척거리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아직까지는 깔끔하게 잘 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만 넘어서지 않으면 의식있는 드라마로써 꽤 완성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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