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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5.07 07:56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점수와 결과와의 괴리에 대해"

어째서 김태원의 멘티들은 강한가?

 
또 대중은 심사위원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심사위원 점수 34.5점으로 데이비드 오가 간발의 차로 백청강을 누르고 3위, 그러나 결과는 탈락. 꼴찌는 33.5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손진영이었지만, 결국 손진영은 살아남고 데이비드 오는 이번이 마지막 무대가 되어 버렸다.

시청자투표 70%에 의한 결과였다. 심사위원 점수 30%, 그나마 1위 이태권과 5위 손진영의 점수 차이가 고작 2.3점이다. 30%로 줄이고 시청자투표까지 더하고 나면 거의 무의미한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시청자의 참여 정도에 따라서 그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시청자 투표의 점수에 결과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실제로도 그렇다.

사실 이것은 제작진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는데, 말했듯 2.3점의 잠수차이를 다시 3/10으로 줄여 환산하고 나면 거의 있으나 마나 한 미미한 차이에 불과하게 된다. 차라리 1위와 꼴찌와의 점수차이만을 가지고 1위 30점에 꼴찌 0점 하는 식으로 비율에 따라 나눠 점수를 매기는 것은 어땠을까? 그랬다면 최소한 1위와 꼴찌와의 차이는 확연히 두드러졌을 것이다.

하기는 제작진도 아주 생각없이 그렇게 점수 비율을 정한 것이 아니었다. 심사위원 점수 30%, 그러나 심사위원이란 프로이고 전문가로써 그 판단과 평가에 자연적으로 권위가 부여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비록 30%이지만 시청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30%다. 그 30%에 의해 결과적으로 50%가 될 수도 있고, 70%가 될 수도 있고, 아예 전적으로 시청자가 그러한 전문가적인 판단에 복종하여 따르는 것도 아주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라면 시청자들이 투표하면서 이러한 전문가적인 권위에 대해 그다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일 게다.

한 마디로 심사위원들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슈퍼스타K>에서도 역시 제기되었던 문제였다.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권위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개별적인 사실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평가를 할 중립적인 권위의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 왔으니까.

워낙에 인정에 연고에 휘둘리는 일이 많은 권위더라는 것이다. 명색은 권위자이고 전문가일 텐데도 인간적인 관계에 이끌려, 혹은 소속에 이끌려, 다른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히며, 그래서 심지어 판사조차 법정에서 판결을 내릴 때 법조문대로 판결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으로써 제 몫을 못하고, 학자들은 학자들로써 자기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로 인해 모순과 부조리만이 쌓이게 된다. 분명 이러한 판단과 결과 뒤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

그래서 이승철이 그렇게 비난을 들어야 했었다. 그나마 엄정화에 비하면 한참 나은 편이었다. 어떻게 저런 점수를 줄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런 심사평을 할 수 있는가? 다만 <슈퍼스타K>의 경우는 심사위원 개개인이 도전자나 다른 심사위원들과 친소의 갈등관계르 이루고 있지 못하다. 그에 비하면 <위대한 탄생>에는 멘토라는 것이 있으니까.

이태권, 백청강, 손진영은 멘토 김태원의 멘티다. 그리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신승훈에게는 멘토로써 황지환, 조형우, 셰인이라고 하는 다른 멘티를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김태원과 신승훈은 또한 심사위원으로써 각자 서로의 멘티들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야 한다. 한 쪽에는 내가 가르치고 밀고 있는 제자 = 멘티가, 다른 한 쪽에는 그를 위해 경쟁해야 하는 다른 멘토의 멘티가, 아무래도 상상력의 불을 지필 수밖에 없다. 과연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도전자들이 무대에 올랐는데 스승된 입장에서 그것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실상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여기는 순간 그렇게 보이게 된다. 그렇게 믿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순간 그렇게 여겨지고 그렇게 존재하게 된다. 그렇게 상상력을 키우며 믿음은 실체를 갖는다. 분명 저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게 사건이란 개별이 아닌 서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서사적으로 파악하여 이해할 문제다. 그렇게 관계지향적 사고가 강하다. 누가 누구와 어떤 관계였는가? 어떤 것들과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가? 그렇게 심사위원의 판단마저 심사위원과 심사대상자와의 개인적 관계로 수렴하게 된다. <슈퍼스타K>에서 이승철과 엄정화가 각각 특정 도전과의 감정적인 문제로 주목받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믿음이 가지 않는데 결국 이런 개인적 인연과 동기까지. 여기까지 오게 되면 의심은 확신이 된다. 멘티가 바로 앞에 무대에 있는데. 무대에서 다른 멘티들과 경쟁하고 있는데. 그동안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강조한 것도 있어서 - 더구나 멘토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대중의 상상력 안에서 구체화된다. 믿을 수 없다.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다.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멘토들의 의견을 불신하고 비판적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권위를 부여하고 그로부터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감시하고 비판하며 부정하는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오죽하면 손진영이 TOP4에까지 살아남는데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멘토 김태원이 아닌 그에게 유난히 가혹했던 방시혁과 이은미 멘토들이었다고 말하겠는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점수를 그렇게 주었던 것일 터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멘토간의 견제와 신경전 이야기가 나오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점수를 주는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어느 순간 손진영에 대한 점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손진영에 대한 지지를 천명함으로써 불순한 이들의 판단에 대한 비토를 행사하려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오히려 심사위원의 점수를 믿지 못하겠다. 심사위원의 판단을 믿지 못하겠다.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이 심사위원과 시청자와의 간극을 넓히고 판단과 평가를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심사위원들의 전문가적인 판단과 역량을 믿지 못하고 내 임의로써. 그렇다 보니 심사위원 점수 30%는 시청자의 판단과 유리된 채 그야 말로 한 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여기에 점수 그대로 환산하여 계산을 하려 하니 변별력까지 떨어지고.

개인적으로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사위원의 판단과 시청자의 판단을 일치시키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를테면 심사위원들은 멘토로써 점수가 아닌 심사평만을 들려주고, 현장에 나가 있는 평가단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가부를 물어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아니면 지금의 시스템에서 앞서 말한 심사위원 점수를 총점기준이 아닌 점수차를 기준으로 해서 차등해 적용하여 변별력을 높이거나. 일단 시청자가 심사위원의 의견을 쫓아 표를 줄 것 같지는 않다. 바꿔야 한다.

아무튼 역시 보면서 이래서 김태원의 멘티들이 - 김태원과 외인구단이 강할 수 있구나. TOP4까지 뽑았는데 이 가운데 신승훈 멘토의 멘티인 셰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이 모두 김태원의 멘티들이다. 패자부활전에서 끝내 떨어진 양정모를 뺀 나머지가 모두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은 멘티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는 MC 박혜진 아니운서의 요구에 손진영, 이태권, 백청강에 이어 이미 멘토스쿨 과정에서 탈락하여 생방송에 오지 못한 양정모의 이름을 거론하는 장면에서. 비록 생방송에 오지는 못했지만 양정모 역시 다른 세 사람과 더불어 김태원의 멘티였을 터였다. 멘티들에게 응원을 해 달라 했으니 양정모도 예외는 아닐 터다. "죽을 때까지 계속 만나기"라 하더니 벌써 생방송진출자가 가려진지도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도 김태원은 양정모를 잊지 않고 있다.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손진영, 이태권, 백청강 등과 함께 거론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 김태원의 멘티들은 멘티들 개인의 표가 아니라 김태원과 외인구단 집단의 표다. 확실히 손진영의 경우도 개인의 팬보다는 김태원의 멘티라는 점이 많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멘티의 이름이 - 아니 그보다는 하나의 팀으로써 대중에 인식될 수 있었던 이유. 그만큼 김태원 멘토스쿨을 통해 보여졌던 그들만의 끈끈한 무언가가 사람을을 이끄는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양정모까지 김태원과 외인구단이다.

무대는 사실 많이 실망스러웠다. 데이비드 오는 확실히 떨어질만 했고, 손진영은 지난주의 '바람의 노래'가 그야말로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린 느낌이었다. 백청강은 힘이 빠진 것이 멘토 김태원에 의해서도 인정되고 있었고, 이태권은 역시 고음에서의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나마 나았던 것이 셰인? 특유의 미성에 한국적인 뽕끼 가득한 트로트를 특색있게 잘 부르고 있었다. 여전히 답답한 음색과 창법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

여유를 부린 것일까? 이제까지의 김태원의 성곡이 장점을 드러내 보이자는 것이었다면 이번의 선곡은 단점을 가려보자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단점이 드러나며 하나같이 이제까지보다 나은 무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고 나니 대중들에 어필해야 할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확실하지만 안정된 선곡보다는 무리해서라도 보다 임팩트있는 선곡을 시도하려는 모양새다. 팝송 미션에서도 그같은 경향을 보였었는데. 어쩌면 이번에는 한 사람 정도는 떨어져도 좋다며 쉬어가는 미션으로 삼은 것인지도.

음향이야 차라리 저주라 할 정도고. 저 음향에서 누구인들 노래 잘하게 들릴까? 심사위원들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분명 TV 앞에 앉은 시청자들과는 판단의 괴리가 존재한다. 지난주 위대한 탄생이 출연했을 때는 상당히 괜찮은 소리를 들려주더니만, 프로가수들도 아마 힘들 것이다.

그나저나 무대는 오히려 저번주보다 못했는데 점수는 오히려 저번주보다 높다는 점에서 방시혁과 이은미에게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동안 그렇게 욕을 먹였으니까. 당장 생방송 도중에도 심사평을 하는데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충분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런 점수를 주었던 것일 텐데. 그러나 그런 것들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사회의 한심한 현실이. 그렇더라도 결국 외부의 힘에 의해 판단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각자 프로로써 소신을 가지고 평가한 것일 텐데도. 대중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억압을 보았다.

재미있었을까? 슬슬 <위대한 탄생>의 한계가 보이려는 느낌이다. 5월 6일 금요일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23번째 에피소드에서. 사실 그 전부터도 느끼고 있었다. 지루하다. 답답하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할 텐데. 시즌 2에서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다.

간만에 강변가요제며 대학가요제의 입상곡들을 들을 수 있어서 기분은 좋은데. 확실히 나 역시 즐겨 듣고 부르던 노래였으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는 가수다>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아니면 팀킬이거나. 음향마저 이래서는. 기대만큼이나 아쉬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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