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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8.09 06:59

[김윤석의 드라마톡] 닥터스 15회 "기적의 시간, 불가능을 바꾸고 싶은 간절한 바람"

새로운 숙제, 결혼식을 앞둔 어느 부부의 경우

▲ 닥터스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닥터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만나 서로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되면 같은 일을 하는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도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서로 침범하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때로 일로써 부딪혔는데 서로의 개인적인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혹은 개인적으로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었을 때 공적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어차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귄다는 것이 순탄할 수만은 없다.

이번에도 두 주인공을 위해 환자들이 숙제를 내준다. 해와 달 형제의 아버지 남바람(남궁민 분)을 통해 유혜정(박신혜 분)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해묵은 오해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모든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아버지 스스로가 강하지 못하다. 때로 혼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남겨진 자식들에 대해 미처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급하게 쫓기며 혼자서 도망치고 만다. 그나마 해와 달의 아버지 남바람(남궁민 분) 그 직전 유혜정이 불러세워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겨우 힘들고 어렵고 급한 일들이 해결되었을 때 유혜정의 아버지 유민호(정해균 분) 역시 자식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이해한다고 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와 용서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비록 아버지에게도 아버지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딸로써 충분히 이해할만한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겪어온 고통과 상처 역시 실재하는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더 필요하다. 동기와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신은 딸로써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해야만 한다. 하지만 더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어쩐지 구원받은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원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잠시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한결 홀가분해진다. 용서하거나 화해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시작된 출발선에 다시 선 때문이다. 이제는 어디로 어떻게 가면 되는지 안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가능케 해준다.

이번에 주인공 두 사람에게 숙제를 내주는 것은 다름아닌 결혼식을 앞둔 어느 불운한 부부였다. 부부로 함께 살기 시작한지 무려 3년만에 올리는 결혼식이었다. 더구나 아내는 임신중이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기에 지금까지 헤쳐올 수 있었다. 이제 오랫동안 꿈꿔왔던 결혼식을 마치고 두 사람의 2세까지 태어나고 나면 그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앞으로 잘 사는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갑작스런 사고가 모든 것을 바꿔놓기 전까지는. 아내는 뇌사상태에 빠졌고, 아내 뱃속의 아이마저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선택해야 한다. 아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때 과연 남편은 아내와 아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쩌면 의식일지 모른다.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나머지는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납득해야 한다. 아내는 죽었다. 아이도 죽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닌 불가항력적인 어떤 이유로 아내와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죄책감은 덜 수 있다. 무력감은 벗어날 수 있다. 비겁한 것이 아닌 당연한 본능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뜻밖에 수술을 마치고 나온 홍기홍(김래원 분)에게 아내의 상태를 묻는 남편의 태도에서 그다지 절박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었던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이미 마음 한 구석에서 아내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과정을 필요로 한다.

기적을 믿고 싶다. 머리로는 이미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양아버지 홍두식이 죽을 때 자신 역시 그랬었다. 의사로서 이미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기적을 바라며 살리려 마지막까지 추한 발악을 멈추지 않았었다. 추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한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만큼. 자신이 지금 얼마나 어리석게 억지를 무리고 있는가 잊을 만큼. 다른 사람을 위해 기적을 바란다. 의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평범한 남편이 되어 아내와 자식을 위한 기적을 빌어본다. 두 사람이 계속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그들도 마찬가지로 부부가 될 것이다. 아이를 임신한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자신. 유혜정이 먼저 부부에게 자신을 이입했고, 홍지홍이 다른 과정으로 그들의 세계로 빠져든다. 간절히 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살았으면 좋겠다. 설사 죽더라도 다만 5분이라도 살아서 자신의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이기다. 그러나 사랑이란 자체가 매우 이기적인 감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이타조차 가장 지독한 이기가 된다. 죽어가는 아내를 위해서. 그보다는 그 아내를 사랑하는 남펴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아내를 사랑하고 싶은 남편의 입장에서. 의사로서 그는 죽음을 판정했다. 죽음을 받아들일 것을 선언했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한 남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홍지홍 역시 같았다. 의사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의사란 어떤 존재인가. 가장 의사다웠고 가장 인간다웠다. 홍지홍과 유혜정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유혜정이 이겼다. 홍지홍 역시 의사였지만 그보다는 인간이었다. 인간의 판단이었다.

정윤도(윤균상 분)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사실마저 시원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여전히 유혜정을 사랑하지만 일부러 유혜정의 사랑을 훼방놓거나 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응원은 하지 않는다. 기회만 된다면 어떻게든 유혜정과 홍지홍의 사이를 갈라놓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이 유혜정의 감정을 거스르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면 사람이 이처럼 낙천적이고 긍정적일 수 있을까? 자기 집으로 쳐들어온 민폐 3인을 내쫓기보다 자기가 집을 두고 나오기를 선택한다. 근본이 선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무르지는 않다. 진서우(이성경 분)가 지금도 응석부리듯 정윤도에 기대는 이유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헷갈리는 것이 없다. 덕분에 사람이 너무 좋아서 조역조차 버거운 경우란 것도 보게 된다. 너무 좋아서 아예 다른 가능성이 전혀 없다.

진서우와 아버지 진명훈(엄효섭 분) 사이의 갈등은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한 번은 거쳤어야 할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자식이 자신과 다른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진명훈의 아버지 진성종(전국환 분)의 세대에는 그다지 필요없었던 번거로운 과정이다. 딸에게는 자신과는 다른 딸만의 삶이 있다. 딸만의 지향과 가치관이 있다.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같아야 한다고 여겨왔다. 처음으로 거부당했다. 부정당했다. 손이 나가고 만다. 그 순간 가장 상처입은 것은 진명훈 자신이었다. 자기로 인한 상처였다. 자기의 믿음이 깨진데 대한 상처였다. 차라리 진서우는 단호하다. 처음부터 한 번은 이렇게 했어야 했다.

진명훈의 위기다. 무엇보다 진명훈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존재가 셋이나 나타났다. 의사로서 미숙했던 과거의 자신을 좇는 유혜정과 감히 자신으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저 높은 경지에서 노니는 홍지홍의 모습과 강제로 자기로부터 자신을 내쫓으려 드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딸 진서우의 존재다. 폭주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뜻밖에도 악역치고 진명훈도 꽤나 냉정한 타입이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유혜정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병원에 이익이 되기에 침묵하며 인내한다. 어느새 홍지홍이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진명훈의 이후 선택이 드라마의 전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드라마도 거의 막판에 왔다.

어쩌면 사람의 목숨값에 대한 산술적인 계량일지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과 비용,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5분이라도 늘리고 싶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사람도 노력도 기술도 시간도 들어간다. 그렇게라도 살려야 하는가. 그보다 더한 것이더라도 다만 5분이라도 살 수 있다면 사겠다. 포기하는 사람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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