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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8.05 07:13

[김윤석의 드라마톡] 원티드 14회 "사회의 악 개인의 죄, 합태섭 최준구를 살해하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관심과 방관에 대한 경종

▲ 원티드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원티드. 어쩌면 인간이라는 생물이 가지는 근본적 한계인지 모른다. 사회적 악보다 개인의 범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기와 직접적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깟 가습기 살균제 자기가 조심해서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모르고 썼더라도 아직까지 문제가 없으면 역시 자기는 괜찮은 것이다. 하기는 그래서 유괴당한 아이를 찾기 위해 필사적인 정혜인(김아중 분)에 비해 대부분의 대중은 그저 한낱 이슈거리로나 소비할 뿐이다.

당장 눈앞에 중대한 사회악이 있다.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제품을 유통하며 실험내용을 조작하고 관련자들을 살해하면서까지 진실을 은폐하여 그동안 막대한 이익을 얻어왔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희생되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분노했고 고발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유괴된 자기 아이에 대한 단서가 들어오자 진실은 어느새 한참 저 뒤로 밀리고 만다. 전 SG캐미컬의 대표이자 현SG라이프의 대표인 함태섭(박호산 분)이 교활하고 말을 잘해서 정혜인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아예 의지가 없었다. 의욕이 없었다. 어차피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이었다.

반대로 오히려 그동안 어떤 사건을 계기로 '원티드'에 비판적이었던 연우신(박효주 분)이 이번이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당장 자기 딸의 건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최준구(이문식 분) 국장을 찾아와 피해를 증언했던 어느 어머니처럼 자신 역시 딸을 위해 그동안 가습기를 써 왔을 터였다. 딸을 돌봐주는 어머니에게 가습기를 쓰지 말라 당부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혜인의 아들 현우의 일은 연우신에게 자신과 크게 상관없는 남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정혜인의 아들이기에 납치되었고, 특정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정혜인을 협박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정혜인이 되지 않는 이상 자기의 딸에게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정혜인의 아들을 위해서는 소극적이지만 자신의 딸을 위해서는 적극적이 된다.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최준구가 다른 사람도 아닌 정혜인의 아들을 납치대상으로 삼은 이유였는지 모른다. 무심코 흘려들었을 것이다. 기억에도 없을 만큼 사소하게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최준구는 당시 이미 아내와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까지 잃은 뒤였다. 필사적으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 증언을 확보하고 관계자들을 추적하여 진실을 밝히려 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든 노력들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과연 그동안 그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는 지금으로서 전혀 알 수 없다. 단지 유일하게 자신을 돕던 형사 김상식이 조남철을 찾아갔을 때도 최준구는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수현이 조남철을 살해한 진짜 이유였다. 

당시 김상식을 살해하며 조남철 역시 밖에 차안에서 기다리던 최준구를 보았고 얼굴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칫 본격적으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모든 것이 끝장날 위기였었다. 처음으로 예정에도 없이 나수현은 손에 피를 뭍혀야만 했었다. 형사 김상식이 살해당하고, 마찬가지로 자신과 같이 진실을 쫓던 나수현의 친형 나재현은 물론이고 그를 도우려던 SG그룹의 3남 함태영까지 철저히 그 죽음이 은폐되고 있었다. 진실을 밝힐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때 정혜인의 사소한 말 한 마디 몸짓 하나가 최준구의 절망을 더욱 키우지는 않았을까. 차라리 나에게 위해를 가한 당사자보다 그것을 무심히 지켜보는 제 3자에게 더 원망을 품기도 하는 법이다.

유해한 제품을 유통하며 진실을 은폐한 탓에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다수는 죽었고, 다수는 아직도 살아서 후유증에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일을 지시한 배후를 납치하려 살해하려 한 사람이 있었다. 그에 의해 또 누군가는 자신의 소중한 아이마저 납치당하고 있었다. 누가 더 악인가? 누가 더 용서못할 악인가? 그래서 모순된다. 차라리 같은 이슈가 얼마전 크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히 유괴된 아이를 찾으려는 정혜인의 순수한 모성을 뒤쫓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까지 유괴하려 한 것은 잘못이고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함태섭과 SG캐미컬이 그동안 저질러온 악은 지금도 은폐된 채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경찰마저 희생자의 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실히 둘 모두에게 공통된다. 아이를 잃은 정혜인에게도,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고 진실을 밝히려 뛰어든 최준구에게도 공권력은 공평하게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 경찰은 정의가 아닌 권력의 편이었다. 오히려 이지은을 납치하기 위해 경찰이 앞장서서 이지은을 보호하고 있는 차승인을 억류한 채 강압수사를 하고 있었다. 이지은을 납치하는 과정에서 같은 경찰들까지 일개 기업의 하수인들에게 폭행당하고 있었다. 경찰은 경찰의 편조차 아니었다. 김상식 형사의 죽음을 은폐한 곳도 따지고 보면 경찰 자신이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된다. 법도, 정의도, 대중도 결코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아직까지 최준구든 신동욱(엄태웅 분)든 방송의 힘은 믿어도 대중의 판단은 믿지 못하고 있다. 어쩐지 시험하는 느낌이다. 대중이 방송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방송이 과연 대중을, 그리고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절망한다. 최준구가 절망하는 만큼 신동욱은 회의한다. 그래서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실험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예감같은 것을 가지게 된다. 공중파드라마라는 특성상 결국 마지막은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특정 사건을 정면으로 겨냥하여 만들어지고 있었다. 안타깝다. 반전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그 부분을 드라마의 홍보를 위해 사용할 수 없었다. 점진적으로 반전에 반전을 통해서 진실은 드러나야 했다. 시청자를 놀래켜야 했다. 역시나 보통의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수많은 피해자가 이미 나타나고 있음에도 대기업이 가진 자본의 힘에 철저히 진실은 은폐되고 최근까지도 희생자는 계속 양산되고 있었다.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동안에도 언론도 정부도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책임지는 사람도 처벌받는 가해자도 없었다.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를 구하는 사람마저 없었다. 나수현의 마지막 넋두리가 차마 분노조차 부끄럽게 만든다.

정혜인과 최준구의 상식을 넘어선 악이었다. 자신마저 철저히 수단으로 여긴다. 유해성을 알면서도 기꺼이 자신을 제물로 내놓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이 곧 정의다. 경제가 곧 정의다. 기업을 살려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 국민의 편에 서야 할 정부마저 기업의 편에서 그들을 돕는다. 드라마보다 항상 현실이 더 극적이다. 이제 함태섭이 최준구까지 살해하고 드라마는 어디로 숨가쁘게 달려갈 것인가. 인간사회에 대한 경종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무심한 사이 어디선가는 고통과 절망에 신음하는 이들이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최준구마저 살해당했다. 함태섭이 자신의 손으로 몸싸운 끝에 직접 찔러 살해했다. 그 모습이 방송을 통해 모두에게 보여졌다. 하지만 여기서 어쩌면 최준구가 남긴 마지막 함정이 드라마속 대중과 시청자들에게 숙제로 제시된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아직 현우가 최준구의 장모와 함께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방송도 한 회가 더 남았다. 정혜인의 잘못도 아직 밝혀진 것이 없었다. 마지막 한 걸음이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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