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24 09:09

해를 품은 달 "허연우는 진실을 알고, 이훤과 윤대형은 허연우를 알다!"

성급함과 딱딱함, 파업의 여파인가 매무새가 엉성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너무 급하다. 이훤(김수현 분)의 경우는 그나마 괜찮았다. 아니 아주 훌륭했다. 허연우(한가인 분)가 당시 죽은지 두 시진이 흐르고서도 체온이 식지 않은 것을 알았다. 허연우가 앓던 병의 원인이 흑주술인 것을 알아냈는데 정작 도무녀 장씨(전미선 분)가 밝힌 대로라면 그녀의 주술로는 결코 허연우를 죽일 수 없다. 여기에 이훤의 명을 받들어 진실을 추적하던 의금부 도사 홍규태(윤석희 분)와 마주치곤 하던 월의 무노비 설에 대해 듣게 되었다. 추리한다. 퍼즐의 조각을 하나하나 짜맞추며 진실에 다가간다. 허연우는 죽지 않았다. 더구나 무녀 월이 바로 허연우일 것이다. 지극히 타당한 논리적 구성이며 전개라 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과정이 개연성과 체계를 갖춘다.

반면 허연우의 경우는 허탈할 정도로 단순하다. 중전 윤보경(김민서 분)을 만나고 돌아오는데 도무녀 장씨가 그녀를 기다린다. 어찌된 것인가 물으니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 심지어 당시 허연우를 죽이고자 베풀었던 흑주술에 오라비인 허염(송재희 분)의 아내, 즉 그녀의 올케이며 이훤의 누이인 민화공주(남보라 분)가 개입했다는 사실마저 밝히고 만다. 어째서 왕대비 윤씨(김영애 분)는 민화공주를 허연우를 죽이고자 하는 모의에 동참시켰으며 왕은 또한 어째서 그러한 왕대비 윤씨와 윤대형(김응수 분)의 의도를 알면서도 그것을 덮어둘 수밖에 없었는가를 도무녀 장씨의 입을 통해 낱낱이 숨김없이 털어놓게 된다. 이제는 궁금할 것도 없다. 모든 것이 너무 명확하다. 과정이랄 것도 없이 허연우가 기억을 찾으니 당사자인 도무녀 장씨가 모든 것을 낱낱이 이야기해준다. 마치 중간이 생략된 채 시작과 끝만 있는 듯한 상황이다. 허연우 역시 이훤과 마찬가지로 하나하나 단서를 찾고 그 조각들을 꿰어맞추며 진실에 다가가는 수고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였을까?

그러한 성급함은 결국 허연우가 도무녀 장씨로부터 들은 내용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만다. 상당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당연히 화도 날 것이다.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원통한 마음도 들 것이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 한순간이다. 어느새 도무녀 장씨를 원망하여 내뱉는 말조차 또박또박하니 제대로 정돈되어 있다. 오히려 활인서에서 차라리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죽고자 하는 여자아이를 붙잡고 신세한탄을 하는 장면은 뜬금없기도 하다. 누구 말마따나 밑도 끝도 없다. 어떤 개연성을 가지고 보여지는 장면이 아니라 단지 당시 허연우의 심리상태를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은 장면의 혐의가 강하다. 물론 덕분에 양명군(정일우 분)이 그것을 보기는 했다. 양명군은 그를 통해 더욱 월이 허연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키우게 된다.

은월각에서 이훤과 만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왕을 알아보지 못한 죄를 스스로 물으려 했을 때 과연 허연우에게 왕이란 어떤 존재였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정작 누군가 이훤에 대해 언급하거나 이훤을 직접 마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허연우가 이훤을 떠올리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허연우의 이훤에 대한 간절함이 더해져야 그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그려질 수 있었을 텐데 정작 이훤과 헤어지고 나서도 허연우에게는 이훤의 존재는 전혀 아랑곳없이 보여진다. 이대로라면 허연우가 양명군에게로 마음이 돌아서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 보인다. 이훤은 허연우에 대해 한결같은데 허연우는 때로 이훤을 잊는다. 차라리 아무말 없이 자나갔다면 그 아무말 없는 가운데 그 여백에 대해 마음을 떠올려 볼 수 있었을 것을.

어쩌면 너무 급하게 대본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미스테리물의 경우는 벼락치기가 매우 어렵다. 미로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것을 잇는 하나의 길이 있다. 그러나 미로가 미로인 이유는 그 길 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다른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시작과 끝을 내달리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혼란케 하면서도 명확하게 그 길을 가리킬 수 있어야 한다. 치밀한 계산과 엄격한 구조에 의해 미스테리는 완성된다. 어디쯤에서 단서를 주고 어디쯤에서는 함정을 팔 것이며 어디쯤에서 진실의 일부를 드러낼 것인가. 하기는 마음이 급해서인지 대사들도 자연스러움을 잃고 어색한 것이 상당하다. 아마 MBC 파업의 여파이기도 할 것이다. 평소라면 편집을 통해 잘라냈어야 했을 짜투리들이 너무 많이 보이고 있다.

드라마가 얼핏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도무녀 장씨가 왕대비 윤씨를 만나는 장면이 그렇다. 허연우를 살리기 위해 도무녀 장씨가 왕대비 윤씨를 심지어 협박까지 하던 것을 왕대비 윤씨가 상기시키자 도무녀 장씨는 바로 왕대비 윤씨에게 용서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허리가 꼿꼿한 상태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극에서였다면 비천한 무녀가 지고한 왕대비 앞에서 용서를 구하려 한다면 자세를 뒤로 빼고 몸을 최대한 굽혀 공경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것이 없었다. 하기는 왕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허연우 역시 중전과 마주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대개 무녀들은 왕족과도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고 할 말 다 하고 한다. 그만큼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뜻이리라. 나온 대본을 소화하기에도 급급하다. 타이트한데 그만큼 불필요한 여백이 너무 많다.

아무튼 그래서 덕분에 민화공주의 짐이 무거워졌다. 마지막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까지 그녀는 그저 모른체 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러면서도 허염의 곁에서 그의 사랑을 받으며 만족할 수 있으면 좋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그녀가 저지른 일들이 밝혀지고 말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모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슬슬 그녀의 입장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오고 만다. 그 시한을 넘어서면 민화공주는 동정의 여지조차도 없게 된다. 반성하고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사건의 해결에 나름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보라의 경우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나름대로 훌륭하게 민화공주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이후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 민화공주의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중전 윤보경을 보면서는 그저 마음이 애처롭다. 차라리 윤보경이 여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지 않았을까? 왕이고 외척이다. 남편이 왕이고 아버지는 그 왕과 대립하는 외척의 거두다. 아버지의 야망을 위해 궁으로 들어와 중전의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정작 남편인 이훤은 그런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녀를 중전의 자리에 앉히고자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자신 또한 그것을 방관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그녀를 보듬어주어야 할 남편의 차디찬 냉대 뿐이다. 상처가 도지고 도져 그녀를 병들게 한다.

아버지의 죄다. 그녀 자신의 죄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다. 아버지가 잘못한 탓인 것만 같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녀도 남의 탓을 한다. 원망하고 증오하고 책임을 돌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은 죽은 허연우가 아닌 그녀 자신의 안에 도사린 죄의 망령이다. 그녀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죄의 기억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훤과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차라리 마침내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더라도 그녀의 사랑은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아닌 죄다. 그녀를 진심으로 동정한다. 오히려 허연우보다도 더 큰 비극의 주인공일 것이다. 허연우는 그나마 그동안 기억이라도 잃고 있었다. 기억을 되찾고서도 그녀는 너무나 쉽게 마음을 정리한다.

참고로 드라마에서 활인서를 운영하는 비용이 모두 무녀 - 정확히는 무격들이 내는 무세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원래 사대부들은 무세를 걷는 자체가 무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 하여 금지하려 했었다. 문제는 이 무격들이 내는 세금의 규모가 조선의 재정에 있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무격들이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조선전기 세종조를 기준으로 평무당이 구리 1근을, 덕적무당이나 송악무당등 유명한 무당들은 그 이상을, 특히 성수청의 국무의 경우는 종1품과 같은 9근의 구리를 무세로서 마치도록 되어 있었다. 당시 관리들이 받던 녹봉을 감안했을 때 성수청 무녀들이 왕실의 일을 돌보는 이외에도 민간을 대상으로 영업했던 정황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국가에서 요구하는 요역이 적지 않았던 듯 연산군조에는 성수청 무녀들의 요역을 감해주도록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도무녀 장씨가 저리 한가하게 돌아다닐 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열심히 돈을 벌지 않으면 세금 내기도 빠듯하다. 하기는 왕대비 윤씨가 뒤에 있으니.

모르는 척 넘어갔지만 윤보경 역시 눈앞의 월이 허연우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허연우가 아닌 월이라 물러나게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깊숙이 감춰진 오롯한 양심은 그럼에도 그녀의 죄를 일깨운다. 그리고 그녀의 양심이 일깨우고 만 죄는 그 죄의 당사자인 윤대형에게로 전해진다. 윤대형도 마침내 알게 되었다. 월이 곧 허연우라는 사실을. 그리고 같은 시간 이훤 또한 허연우의 정체를 알게 된다. 본격적으로 허연우를 둘러싼 한바탕 큰 갈등과 충돌이 예고된다. 다만 조금만 더 탄탄하게 그 내실을 채울 수 있었다면. 허전한 느낌이 있다. 많이 아쉽다. 안타깝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