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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달 "허연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직접 밝히려 나서다!"
소설과 드라마가 갖는 장르의 차이, 소설과 드라마의 허연우의 차이를 보다!
2012년 02월 23일 (목) 09: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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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기자 azzasi@stardailynews.co.kr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어쩌면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대해 갖게 되는 가장 큰 아쉬움이라면 역시 원작이 소설인데 비해 드라마라는 것일 게다. 원작이 로맨스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면 드라마는 드라마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나름대로 드라마로서 완성도도 뛰어나기는 하지만 그러나 조금은 어색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원작에서와는 전혀 다른 허연우(한가인 분)의 캐릭터에서. 로맨스에서 여성은 그저 수동적인 대상이기만 해도 좋았다. 끝없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니다. 드라마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란 한계가 있다. 소설이라면 그 내면을 단지 문장으로써 얼마든지 상세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에서는 제약이 있다. 액션이 필요하다. 능동적으로 무언가 액션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원작에서는 오로지 왕 이훤(김수현 분)과 그의 명을 받은 홍규태(윤희석 분)에 의해 8년 전 허연우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던 정황이 밝혀지고 있었던 것을 드라마에서는 허연우와 그녀의 몸종 설이(윤승아 분)가 그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아니 홍규태가 이훤의 명으로 과거 허연우의 교육을 당담했던 노상궁을 찾아가기 전 이미 허연우의 지시를 들은 설이가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홍규태가 노상궁을 찾아갔을 때는 윤대형(김응수 분)이 보낸 자객에 의해 노상궁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이제 진실을 아는 것은 허연우와 설이 두 사람 뿐이다. 민화공주(남보라 분)와 당시 사건과의 연관성도 덕분에 상당히 일찍 드러나게 되었다.

역할일 것이다. 그로써 이훤과 허연우는 균형을 이룬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고 그 사랑을 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이훤이 허연우를 질투하기도 한다. 그저 사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당연히 이훤의 여자가 아니다. 허연우가 동의함으로써 그녀는 이훤의 여자가 된다. 아니 이훤이 허연우의 남자가 된다. 그저 왕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던 원작에 비해 드라마에서의 허연우는 보다 현대적인 이훤과 대등한 존재로서 자리매김한다.

사실 그래서 문제도 있었다. 몇 번이나 지적했던 바로 겁이 없어진 부분이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본능적인 공포라는 것이 있다.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꺼려해야 하는가. 그것을 규범이라 부르고 질서라 부른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바로 그에 맞춰 이루어지게 된다. 그것이 그가 살아가는 지금을 정의하고 그 지금 속의 자신을 정의한다. 시대가 조선시대이고 신분이 무녀라면 따라서 당연히 그에 걸맞는 공포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 지나치게 현대적인 의미가 부여되면서 시대와 신분을 잊어버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비천한 무녀의 신분으로 왕의 사랑을 받고, 왕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이루어져 중전의 자리에 오른다. 원래는 사대부가의 딸로써 세자빈으로 간택된 바 있지만 불의한 음모에 휘말려 비천한 무녀의 신분으로 전락했다가 다시 원래의 신분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것이 왕의 일방적인 애정과 배려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그저 왕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 보답으로 사랑을 해주는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인다.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주체로써 오롯하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비천한 무녀로써 중전이 되는 것은 그녀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고, 음모를 파헤치고 잃었던 신분을 되찾는 것 또한 그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그녀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이다.

섬세한 심리묘사같은 건 그런 점에서 전혀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허연우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어정쩡하다. 기왕에 그리 할 것이었다면 굳이 허연우에게서 그같은 복잡한 심리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부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보다 단순해도 좋았다. 단순하되 보다 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활력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도 좋았을 것이다. 한가인이라는 배우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을 아무래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러한 가능성을 막아 버렸다. 지금이라도 제자리를 찾은 듯하니 다행이다. 허연우는 단지 이훤의 뒤에만 숨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훤과 다른 곳에서 이훤과 같은 방향을 보며 그녀 역시 달려가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허연우가 주인공답다. 지금까지는 지나치게 피동적인 존재였다. 피동적인 존재인데 그렇다고 피동적인 채 남아 있지 않았다. 허연우 자신은 피동적이지 않은데 상황이 그녀에게 피동을 강요했다. 그렇다면 그러한 모순이 허연우를 통해 드러났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드라마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파탄이 일어나고 있었다. 가장 큰 균열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봉합되려 한다. 다만 여전히 전체적인 조화에서는 문제가 보인다. 소설과 드라마라는 서로 다른 장르에 따른 부조화이고 불균형일 것이다. 그래도 드라마는 재미있다.

아무튼 중전 윤보경(김민서 분)의 처지가 갈수록 더욱 안쓰러워진다. 차라리 이훤이 그녀에게 작은 마음의 한 자락이나마 허락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녀에게 매몰차게 냉정하게만 대하고 있었다면. 희망고문이다. 언젠가는 이훤 또한 자신을 돌아볼 날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고 자신에게 이제껏 꼭꼭 닫아 놓았던 마음을 온전히 허락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윤보경이 느끼게 될 좌절과 절망이란 어떠한 것일까. 그 슬픔과 원망을 어찌 다 감당할까? 은월각에서 허연우의 귀신이 나왔다면 교태전에서는 윤보경의 귀신이 나올 만도 하다.

희망이 없다면 절망도 없다. 기대가 없다면 좌절도 없다. 도대체 어찌하려는 것일까? 이제는 원작에서와 같이 그렇게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원작에서와 같은 그와 같은 결말을 보고서도 이훤과 허연우의 행복만을 마냥 아무 거리낌없이 바라보기는 힘들다. 설사 윤보경이 악녀가 되어 이훤과 허연우를 괴롭히게 된다 하더라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지금과 같아서는 윤보경이 밤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두 사람을 저주한다 해서 그녀를 탓하거나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너무 괴롭힌다. 더욱 동정하게 되는 캐릭터일 것이다.

양명군(정일우 분)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작에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분명 원작에서도 양명군은 허연우를 사랑하고 있었다. 한 번 혼인도 하고 끝내 상처도 했지만 8년이라는 시간을 허연우를 잊지 못하고 내내 마음에 두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허연우와 다시 만날 기회도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양명군에게는 허연우에 대해 기대를 가질 만한 어떤 상황도 주어지지 않았었다. 허연우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도, 그녀와 함께 기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도, 그래서 기대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어떤 상황도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홀가분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허연우의 행복만을 바라며.

그러나 어떤가? 이제 양명군은 허연우를 포기할 수 있을까? 바로 가까이에서 그녀가 웃고 있다. 바로 가까이에서 그녀가 숨을 쉬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몸짓이 느껴진다. 함께 어울려 자치기를 하며 놀기도 한다. 자치기를 치척놀이라 부르기도 하는구나. 규칙이 조금 다르다. 예전 살던 동네에서는 반갈아 자를 쳐서 그 최종길이를 쟀다. 자라는 것이 친다고 항상 올곧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노는 수준에서는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 같은 놀이더라도 동네마다 다른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자치기를 하며 놀기도 했는데 자신의 품에 꼭 안긴 허연우를 원작에서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게 체념하고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너무 잔인하다. 작가나 그런 허연우 자신이나.

그야말로 나쁜남자 나쁜여자일 것이다. 결국 이루어지지 못할 기대라면 처음부터 주지도 말았어야 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라면 처음부터 갖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다. 때로는 무정한 것이 다정한 것이 되기도 한다. 흔히 이런 것을 어장관리라 한다. 마음은 각각 허연우와 이훤에게 가 있으면서도 정작 가까이에 있는 윤보경과 양명군도 그대로 놓아 보내지 않는다. 괜히 남은 사람만 더 힘들어진다. 차라리 마지막에 양명군과 윤보경이 서로 동병상련하여 함께 야반도주를 하게 되면 어떨까? 진심으로 행복을 바라게 된다. 허연우와 이훤이야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원작에서는 허연우의 아버지가 허연우를 죽인 것으로 되어 있다. 무병이란 사대부가에서 결코 발병해서는 안되는 병이다. 집안의 체면과도 관계가 있다. 장차 아들 허염(송재희 분)과 그 후손들의 앞날에도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역시 드라마이기에 허연우를 살리고자 약을 먹인 것으로 나온다. 허연우가 죽을 것으로 알고 그것이 마음의 병이 되어 죽은 것 또한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민화공주를 자극한다. 민화공주도 원작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그저 사실이 밝혀지기만을 기다리려고 한다면 굳이 8년 전의 사건에 대해 모두 보여주고서 시작한 보람이 있다. 반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설은 소설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원작을 각색하여 드라마를 만들었을 때 유념해 보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서로 다른 장르이기에 서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을 어떻게 충실히 활용해 최대한 완성도 있게 만들어내는가. 다만 아쉽다면 디테일이다. 마무리도 어색한 감이 있다. 그러나 이미 훌륭한 드라마일 것이다.

윤보경과 허연우가 마침내 한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고작해야 무녀, 더구나 죄인 주제에 한 나라의 중전을 정면에서 마주보려 하다니. 역시 허연우는 겁이 없다. 윤보경은 허연우를 알아볼 것인가? 알아본다면 어찌할 것인가? 알아보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하루가 너무 길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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