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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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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2.19 08:49

무신 "실제 기록에 나타난 격구의 모습과 막부의 뜻, 고려는 일본도 로마도 아니다!"

말을 타 본 적 없는 노비가 격구에 참가하려 한다. 역사가 판타지가 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다시 한 번 작가와 감독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고려는 일본도 아니고 더더욱 로마도 아니다. 고려는 고려일 뿐이다. 고려에서 굳이 일본이나 로마를 찾으려 하지 말라.

무리수다. 굳이 기록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조금만 상식을 가지고 생각해도 바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과연 비천한 노비의 신분으로 말을 타고 겨루는 격구에 참가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아니 노비가 아니더라도 말이란 것이 결코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아무나 하고자 한다고 격구에 참가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더라도 태조 이성계가 격구에 참가하여 개경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태조의 연세가 22세인데 비로소 벼슬하였다. 고려의 풍속에 매양 단오절(端午節)에는 무관(武官)의 나이 젊은 사람과 의관(衣冠)의 자제(子弟)들을 뽑아서 격구(擊毬)의 기예(技藝)를 익혔는데, 그 날이 이르면 구규(九逵)에 용봉(龍鳳) 장전(帳殿)을 설치하고 길 복판에 구문(毬門)을 세우고, 왕이 장전(帳殿)에 나아가서 이를 구경한다. 연회를 베풀고 여악(女樂)을 벌려 놓으매, 경대부(卿大夫)들이 모두 따르고, 부녀들도 또한 길 왼쪽과 오른쪽에 장막을 매고 금단(錦段)으로 장식하여, 이를 화채구(畫彩毬)라 이름하니, 구경하는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된다. 격구(擊毬)하는 사람이 의복 장식을 화려하게 하여 다투어 사치를 숭상하니, 말안장 한 개의 비용이 중인(中人) 10가(家)의 재산에 해당되었다."(출전 :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

조선이 개국하고 군사훈련목적을 제외한 민간에서의 격구가 금지된 이유였다. 중인이란 조선 전기까지 오늘로 치면 중산층에 해당하는 중간 정도의 재산과 품격을 지닌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쓰였으니 한 마디로 말안장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이 중산층 10개 가구의 재산에 비할 정도로 비쌌다는 뜻이다. 어지간히 출신이 좋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비용이다. 물론 권문세족이 발호하던 고려후기에 대한 기록이고 보면 이전보다 훨씬 사치스러워졌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격구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치러졌는가 하는 중요한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병은 기관총이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병종 가운데 하나였다. 빨랐고 또한 강력했다. 누구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었고, 빠르게 달리는 육중한 말 위에서 가해지는 공격은 몇 배의 적을 한 순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인구와 생산에서 항상 열세에 있었던 유목민족이 군사적으로 농경민족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거니와 기병이 갖는 그러한 강점들은 보다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기를 원하는 권력자들에게 반드시 보유하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같은 강력한 기병을 보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목민족은 평생을 말 위에서 생활한다. 겨우 걷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말 타는 법을 배우고 말 위에서 생활하며 성인으로 자란다. 말이란 그들에게 일상의 일부다. 그러나 농경민족에게는 말이 부족하다. 그리고 말을 탈 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유목민족이 생활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말을 타는 대신 농경민족은 말을 타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숙달되도록 반복해서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훈련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고안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기마수렵도 역시 그 일환이다. 말을 타고 활을 쏘아 사냥감을 잡는다. 그리고 격구 또한 말 위에서 장이라 불리우는 채를 휘둘러 공을 빼앗고 던지고 받고 치는 기마술을 겨루며 훈련하는 종목 가운데 하나였다.

굳이 드라마에서처럼 죽이고 죽는 살벌한 싸움을 치를 필요도 없었다. 말을 타고 가는 채를 이용해 공을 치고 채고 던지고 받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도의 기마술을 요구한다. 말과 하나가 되어 균형을 잃지 않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취할 수 있을 때 그와 같은 격구의 동작들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기마술을 과시하는 쪽이 사람들에게 어필하기도 좋다. 말을 잘 타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사람을 잘 죽이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잘 타면 사람도 잘 죽인다. 그보다는 얼마나 멋지게 말을 잘 타는가. 그것을 보자는 격구다.

그래서 참가자격으로 젊은 무관이거나 관리의 자제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말만 잘 탄다면.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말을 타는 훈련을 받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말을 구입해서 훈련할 수 있는 신분에 있거나, 아니면 그러한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더구나 고려에서 직업군인들에 있어 무장은 자비로 챙기는 것이 원칙이었다. 말을 타고 싸우는 직업을 가진 무장일지라도 그 말은 자기 돈으로 직접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무관도 세습직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말 위에서 저같은 묘기를 보이기란 불가능하다. 말을 구경조차 한 적 없을 것 같은 노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송길유(정호빈 분)가 말한다. 불경이나 외우는 승려들이 무슨 무예를 하느냐고. 그러나 중국에서도 그랬고 일본에서도 승려들은 무예를 배웠다. 물론 그 가운데는 불법과 무예를 함께 배우는 승려들도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상당수는 말 그대로 절에서 보유한 사병이었다. 김준도 그런 범주였을 것이다. 절에서 보유한 노비로 하여금 머리를 깎아 중의 행색을 하게 한 뒤 무기를 들려 절의 무력으로 삼는다. 당연히 그들은 정식 승려가 아니다. 일본이나 고려나 승려에게도 신분이 있었다. 천민은 출가를 할 수 없었고, 일반 백성 역시 출가는 할 수 있었지만 승직은 얻을 수 없었다. 굳이 도망노비가 아니더라도 김준은 승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채 무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과연 절에서 무술을 배운 승려가 말을 탈 일이 있겠는가. 말했듯 말을 타고 싸운다는 자체가 매우 특별한 것이다.

무술을 잘한다고 말도 잘 타는 것은 아니다. 말을 타고 무술을 펼치는 것은 또 다르다. 말을 잘타는데 무술을 배운다면 당연히 말을 타고도 잘 싸울 수 있겠지만, 무술은 잘하는데 말을 타지 못한다면 말에 익숙하기까지 말 위에서 싸운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차라리 그럴 것이면 김준(김주혁 분)더러 승려시절을 말을 타는 법을 배우도록 하던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화려한 치장이야 그동안 모아 놓은 재물도 많으니 최우(정보석 분) 개인의 재산으로 어찌 하더라도 단지 무술 좀 잘 한다는 이유로 말 위에 태우고 싸우게 하는 것은 어색하다. 하물며 격구를 한답씨고 말 위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싸움을 치러야 한다. 결국은 <스파르타쿠스>나 <글라디이에터>가 아니겠는가? 영화속의 원형경기장을 고려 속에 재현하고 싶다.

주인공은 비천한 노예여야 했고, 그리고 원형경기장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열한 싸움을 치러야 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살벌한 싸움과 그를 환호하며 즐기는 군중의 역설. 그런데 하필 기록을 살펴보니 격구라는 경기가 고려에서는 매우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격구가 원형경기장에서의 노예격투로 바뀐다. 문제는 <스파르타쿠스>나 <글라디에이터>나 이미 그만한 실력과 경험을 갖춘 고귀한 신분에서 노예로 전락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벤허>에서도 주인공 벤허는 로마의 유력자의 양아들이며 원래 유대인의 유지였다. 무리하게 영화의 설정을 적용하려다 보니 개연성은 물론 역사의 고증마저 엉망으로 뒤바뀌고 만다. 말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어 보이는 이들조차 노예의 신분으로 신분상승을 노리고 말위에 올라 격구에 참여하려 한다.

참고로 이 마상격구가 말이 없는 채로 지상에서 치러지게 되면 역시 MBC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주인공 이훤이 하던 골프와 비슷한 보격구가 된다. 그리고 보격구와는 달리 마상격구의 규칙은 그대로 유지한 채 말만 빼면 예전 농촌에서 흔히 즐기던 장치기라는 경기로 바뀐다. 한 마디로 하키다. 마상격구란 말을 타고 하는 하키라 보면 된다. 스포츠의 역사는 유구하다. 한국 하키가 세계적으로 강한 이유가 있다. 골프도 잘친다.

아무튼 그래서 또 보다가 어이가 없던 것이 최충헌(주현 분)이 스스로 말하는 막부(幕府)'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막부란 원래 전장에서의 지휘관의 전시사령부를 뜻하는 말이었다.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일본 최초의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 있어 그 지지기반이 되어준 것이 동국의 무사들이었기에 과거 그의 선조인 미나모토노 요리요시가 '전구년후삼년의 역'이라 불리우는 무츠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동국의 무사들에게 추대되었었던 것을 명분으로 삼고자 굳이 동국과 관련한 정이대장군과 막부라는 호칭을 새로운 자신의 정권에 쓰고자 했던 것이 이후 관례처럼 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의 모든 무사정권은 어찌되었든 겐지의 후예였고, 따라서 무사정권은 관례처럼 정이대장군과 막부의 이름을 쓰고 있었다. 겐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오다 노부나가가 우장군에 머물렀고 역시 평민 출신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쇼군이 아닌 간바쿠의 관직을 가지게 된 이유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스스로 겐지의 후손이라 천명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무사정권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막부란 일본에서, 그것도 동국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동국의 무사들에게 추대되었던 미나모토노 요리요시의 후손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세이와 겐지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정치적인 의도에서 처음으로 쓰여진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가마쿠라 막부와 최충헌의 도방은 고작 4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최충헌은 어디에서 듣고 자신의 정권을 막부라 이름하게 되었을까? 전시사령부를 뜻하는 원래의 의미였다면 도방은 지금 현재 거란군을 막기 위한 임시지휘부가 설치되어 있어야 했을 터다. 어느것도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사들이 갑옷 위에 겹쳐 입고 있는 덧옷이 일본의 그것을 닮았더라니.

정숙첨은 더구나 심지어 거란군을 막기 위해 총사의 직책을 맡아 전선에 나가 있는 상황에서도 병사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기던 인사였다. 부정으로 치부하여 그 저택이 상당한 규모였다 하니 그 인품을 알 만하다. 최충헌이 굳이 정숙첨을 제거하려 한 이유였다. 태종이 굳이 자신의 외척인 민씨일족과 장차 세종의 외척이 될 심온의 가족을 무리하게 숙청한 이유와 같다. 성정이 오만했다. 전횡을 일삼기 좋았다. 최우는 최충헌의 장남이었다.

도방밖에 없다? 도방이 전부다. 최씨정권에 있어 도방이야 말로 시작이며 끝이다. 도방이 보유한 병력이 물경 수천이다. 심지어 거란군을 막기 위해 징집한 장정 가운데서도 쓸만한 이들은 모두 빼돌려 보유한 사병의 수가 수천이다. 명실상부 고려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 도방인데 최우에게 힘이 없다? 최향(정성모 분)을 지지하던 가신 4인방이 최우를 제거하기 위해 굳이 최충헌을 문명하도록 유인하려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도방에 최씨정권의 모든 힘이 있는데 관직이 어떻든 최향에게 무슨 실속이 있었을까? 하기는 드라마에서 최충헌은 무욕한 인물이니. 거란군과 싸우러 가겠다는 가신을 처벌하던 최충헌은 없다. 도방에는 사병이 없다.

굳이 몽골의 침략 이후에나 들어오는 소주를 등장시킨 이유부터가 의문스럽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판타지에 기반한 가상역사드라마임을 천명하고자 한 것이었을까? 그 시대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소주를 등장시킴으로써 드라마는 역사드라마로서의 의미를 부정한다. 물론 실수일수도 있다. 너무 기본적인 실수다. 그러니까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격구에 대해서조차 허술하다. 차라리 판타지라 하는 쪽이 이해가 쉽다. 역사드라마에 역사가 없다.

드라마로서는 재미있다. 상당히 흥미롭다. 그래서 더 문제다. 드라마가 재미있으면 자칫 역사적 사실과 혼동하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역사기록을 찾아읽을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다. 드라마로서만 충분한 경우가 많다.

안타깝다. 격구는 과거 아주 멋지게 드라마에서 묘사된 적이 있다. 역시 MBC에서 방영했던 <다모>라는 드라마에서였다. 군사훈련의 일환으로서의 격구를 아주 세밀하게 잘 묘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기록에 남은 고려의 격구는 무척 화려하다. 그러나 살벌하기만 할 것 같다.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는데 항상 이렇게 비판하는 말만을 쏟아내고 만다. 아쉽다.

다시 말하지만 고려는 일본도 로마도 아니다. 고려는 고려다. 고려는 기록과 유물 속에 존재한다. 역사속의 고려에는 원형경기장도 막부도 없었다. 안타깝다. 재미있어서 더 안타깝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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