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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18 08:30

해를 품은 달 "한가인의 연기력, 그러나 이미 한가인이 허연우다!"

한가인에게 허연우란 너무 버거운 배역인지도 모르겠다. 아쉽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현대의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경찰서를 찾으려 하면 어쩐지 주눅부터 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기보다 직급만 하나 높아져도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하물며 신분제사회다. 그것도 가장 비천한 무녀의 신분이다. 모든 것이 두렵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째서인가 싶었다. 어차피 <해를 품은 달>은 대단한 작품성을 기대하고 보는 드라마는 아니다. 철저히 대중의 취향에 맞춘 오락드라마다. 나쁜 것이 아니다. 드라마 한 편을 제작하는데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다. 배우들에게서도 그다지 크게 연기력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가인(허연우 역)의 연기는 유독 거슬리는 부분이 많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거슬렸던 것일까?

문득 깨달았다. 은월각에서 자신의 과거와 만나는 허연우의 모습에서. 그 순간 만큼은 허연우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제껏 없던 모습이었다. 심지어 왕인 이훤(김수현 분) 앞에서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왕마저 꺼려하는 권신 윤대형(김응수 분)을 마주하고서도 비천한 무녀에 불과한 그녀는 전혀 무서워하는 모습이 없었다. 국문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 비명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에서는 독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끌고가려는 관원들 앞에서조차 그녀는 항상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결코 비천한 무녀가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필자가 항상 허연우를 두고 현대사회로부터 타임슬립해 간 것은 아닌가 여기는 이유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현대의 허연우가 꾸는 꿈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현실감이 없다. 용기란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바로 용기다. 현실이란 두려움이다. 불안이다. 공포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불안과 공포와 싸우며 살아간다. 한 나라의 지존인 조선의 국왕 이훤조차 그러한데 그러나 허연우만은 예외다. 비천한 무녀의 신분임에도 한 나라의 판서를 대함에 있어서도 그녀는 한결같다. 차라리 비천한 무녀로 살기보다 이대로 깨끗하게 죽기를 바라는 사람 같다. 용감한 것이 아니라 무모한 것이다. 무지한 것이다.

과연 대본의 문제인가? 아니면 연기력의 문제인가? 물론 한가인이란 그다지 연기력을 기대하며 보는 배우는 아니다. 비유하자면 한가인의 연기란 이제 막 고음을 지르는 방법을 알게 된 아마추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저음에서의 호흡도 알지 못하고 중음을 채우는 발성은 더욱 모른다. 섬세한 표현이란 불가능하다. 마음 한 구석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이기고 하고자 하는 바를 전할 수 있는 그 굳센 의지를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가인에게 <해를 품은 달>의 허연우란 너무 버거운 배역이 아니었을까. 그녀에게는 그와 같은 복합적인 내면을 표현하기란 버거운 듯 보인다.

입체란 다양한 면을 갖는다. 현실의 인간이란 그러한 입체 가운데 존재한다. 수많은 모순 속에 사람은 살아간다. 그래서 결심이란 중요하다. 그 결심을 나타내는 것이 의지다. 그런데 그녀에게서는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눈을 부릅뜨고만 있는 그녀에게서는 어떤 다른 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연우라고 하는 캐릭터에 대해서만 유독 이입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현실감이 없다. 현실의 존재가 아닌 것 같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본의 문제이며 한가인의 문제다. 허연우는 보이지 않고 한가인만이 보인다. 연기력 논란의 이유다.

젊은 배우들 가운데서도 그런 점에서 유독 한가인이 눈에 보인다 할 것이다. 정일우(양명군 분) 역시 여전히 연기가 불안하다. 하지만 최소한 그에게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분노하면서도 그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복잡한 내면이 보인다. 양명군의 비극은 온전히 운명을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운명을 거스르지도 못하는 그 자신의 모순으로부터 나온다. 남보라(민화공주 역) 역시 어설픈 가운데서도 오히려 허연우에 대한 죄책감과 남편 허염(송재희 분)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오히려 그 불안으로 인해 더 강하게 집착하고 마는 모순된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충분히 납득한다. 김수현과 김민서는 말할 것도 없다. 김수현의 이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알 수 없고, 김민서의 애증을 통해서는 중전 윤보경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한가인은 무엇인가? 허연우란?

차라리 섬세한 감정의 표현이 그다지 필요치 않은 배역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역시 대본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한가인이라는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고작 그런 정도라면 그에 맞춰 캐릭터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한가인은 연기력으로만 판단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웠고 그것이 아직까지도 연기력 논란이 이어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제까지 굳이 연기력과 관련한 논란이 필요치 않은 배우였었다.

한가인에 대한 연기력논란이 아직도 어색한 이유일 것이다. 연기를 못한다, 혹은 연기를 잘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가인이란 어차피 그같은 대단한 연기력을 기대하던 배우는 아니었을 것이다. <해를 품는 달>의 캐스팅을 보면서도 처음 기대했던 것도 딱 지금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기대를 벗어났다면 다름아닌 허연우의 캐릭터였을 것이다. 너무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해를 품은 달>의 허연우는 다름아닌 한가인이다. 그럼에도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고음만 잘 내지른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아니다. 저음이 받쳐주어야 하고 중음이 채워져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노래도 아름답게 들린다. 연기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미 <해를 품은 달>에서 허연우는 한가인이다.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더 훌륭한 허연우가 나올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가인만이 허연우를 연기할 수 있다. 그리고 한가인은 충분히 매력적인 배우이기도 하다. 가수에도 비주얼 가수가 있다. 노래가 가수의 전부는 아니다.

이미 드라마가 재미있다. 허연우의 캐릭터가 아쉽지만 그녀가 겪어야만 하는 사건들은 흥미롭다. 허연우 이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있다. 한가인 말고도 다른 많은 배우들이 있다. 그 모두를 아우르며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단지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의 색을 채운다. 단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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