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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17 08:49

해를 품은 달 "은월각에서 마주한 허연우의 8년 전 자신의 모습, 마침내 기억을 되찾다."

왕이기에 더 불가능한 것들, 이훤 울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흔히 혼백 할 때 혼이란 음혼을 일컫는다. 사람의 혼은 선천적인 양백과 후천적인 음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양백은 죽으면 흩어져 하늘로 올라가고 음혼은 땅에 남아 수십년을 이어진다고 한다. 이른바 말하는 귀신이다. 유교에서 무속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이유다. 귀신이란 자체가 부정한 것이 남은 것이다. 허연우(한가인 분)가 은월각에서 마주한 어릴적 자신의 모습의 정체다.
 
그토록 살고자 했었다. 그토록 보고자 했었다.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이기에 죽고 싶지 않았고 세자 이훤(김수현 분)을 떠올렸기에 그를 한 번만 더 보고자 했었다. 그 마음이 형체를 갖는다. 원래는 사람의 혼백에 남아야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담은 곳이 은월각이었기에 은월각에 남게 된다. 그리고 일깨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단지 귀신에 불과할 테지만 그 자신이기에 그로부터 잃었던 자신을 보게 된다. 머리로 기억한 기억이 아닌 영혼에 새겨진 기억이다. 허연우란 누구이고 어떻게 죽어갔는가?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망하고 있었던가?

다만 아쉽다면 허연우 자신도 정작 자신이 어떻게 죽어가야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단지 이름 모를 병에 걸렸고 끝내 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고자 아비가 주는 약을 먹고 숨이 끊어졌었다. 설마 그 배후에 장차 지존의 자리에 오를 세자의 배우자의 자리를 노린 왕대비 윤씨(김영애 분)와 권신 윤대형(김응수 분)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하물며 그 음모에 허연우에게 올케가 되는 민화공주(남보라 분)이 가담하고 있었다. 지금도 왕과 그의 명을 받은 홍규태(윤희석 분)가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아직까지는 진실에 이르기에는 요원하다. 단지 원래 자신의 신분을 찾았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금은 허연우의 캐릭터도 단정해질까? 사대부가의 규수로써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세자빈으로 간택되고 궁으로 들어와 역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있었을 터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설사 감추지 않고 드러내려 해도 넘치지 않도록 그 수위를 조절한다. 중전 윤보경(김민서 분)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순간적인 공포로 거울을 깨뜨리고, 다시 찾아온 왕을 원망하는 말을 쏟아내면서도 그녀에게서는 어쩐지 중전다운 기품이 느껴진다. 하지만 허연우에게서는 아직까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기는 드라마일 것이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라면 아무래도 방관자로 있기보다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어울린다. 중전 윤보경의 방식은 중전다운 품위는 있지만 그러나 너무 음험하다. 원작에서의 허연우의 방식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당시의 시대상에는 어울릴지 모르지만 현대의 시청자가 보기에는 답답하게 여겨질 수 있다. 허연우의 캐릭터는 마치 현대로부터 타임슬립이라도 한 듯 지극히 현대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왕이고 정승이고 가리지 않는다. 당장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조차 전혀 두려움없이 당당하기만 하다. 한 번 죽음의 위혐을 겪은 때문일까? 현실감이 부족하다. 대신 그렇기 때문에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원작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지금의 허연우라면 가능하다. 허연우가 전면에 나선다면 현대의 드라마에 어울린다. 다만 드라마의 긴장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겠다.

아무튼 결국 왕이고 왕후라는 것일 게다. 그저 여염의 사내였다면 오랜 옛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당장의 자신의 아내를 저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아내의 집안이 원수의 집안이라 할지라도 일단 자신의 아내가 된 이상 그에 대한 남자로서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왕이다. 나라의 주인으로서 갖는 책임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갖는 책임을 넘어선다. 윤보경의 비극이다. 그녀가 진정 싸워야 하는 것은 허연우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 윤대형이다.

과연 이훤은 아직까지도 허연우를 사랑하고 있는가? 사실 의문이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의 우울함이 그로 하여금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허연우가 은월각에 자신의 망령을 남겨놓았듯 이훤 또한 자신의 가슴 한 구석에 허연우에 대한 망령을 키우고 있다. 윤대형이 싫고, 왕대비가 원망스럽고, 지금의 상황이 불만스럽다. 그때 허연우만 죽지 않았더라면. 허연우가 죽지 않고 허염이 의빈으로 저리 날개를 꺾이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당장의 현실이 이렇게까지 불만족스럽지 않았다면 허연우 또한 세월과 함께 잊혀졌을 것이다. 미련이다. 미련이라는 망령이다.

그래서 이훤은 윤보경을 끌어안고 마는 것이다. 연민이다. 미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품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만일 그녀를 조금이라도 품으려 했다면 오히려 그는 윤보경을 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한 나라의 왕후로서 체통조차 잃고 저리 눈물로써 호소하고 있는데 어느 남자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그나마 원작보다는 나은 결말을 기대하는 이유다. 너무 불쌍하다. 심지어 허연우보다도 더 불쌍하다. 이대로라면 너무 불쌍해진다.

어쨌거나 왕이라는 게 그렇게 보기처럼 화려하기만 한 자리는 아니라는 것일 게다. 아주 오래전에는 날이 가물면 아예 왕을 죽여 그를 가지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날이 가물어도, 비가 많이 내려도, 서리가 일찍 내려도, 전염병이 돌아도, 하다못해 드라마에서와 같이 일식과 같은 자연현상들에 대해서마저 왕에게 그 책임을 묻고는 했었다. 하기는 중국에서 왕이란 곧 천자다. 하늘의 아들이다. 고려 때까지도 우리나라에서도 왕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도 날이 가물면 원구단에 나가 기우제를 지냈다. 왕의 배우자를 두고 소격서의 혜각도사나 성수청의 도무녀 장씨(전미선 분) 등이 천기 운운하는 것이 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왕이란 그래서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 여겼다. 사랑인들 마음 가는대로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왕이 그토록 마음에 두고 있음에도 눈물을 흘리며 허연우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 자신의 이복형인 양명군(정일우 분)에 대해서조차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 어찌되었거나 아내인 윤보경에게도 다정해질 수 없는 이유, 혈연으로는 친할머니인 왕대비 윤씨지만 마주하는 순간에는 정적을 마주하는 긴장감이 감돈다. 그래서 드라마가 재미있다. 고작해야 유부남과 유부남의 첫사랑과의 애닲은 사랑 이야기지만 그러한 거대서사가 비장감을 더하며 드라마에 재미를 더해준다.

아무튼 소격서의 혜각도사(김익태 분)가 허연우의 편에 서는 바람에 관상감의 처지가 우습게 되었다. 관상감은 원래 유학자들로 이루어진 기구였다. 현재 허연우를 이용해 방술을 펼치려는 나대길(김명국 분) 역시 원래는 유학자일 터였다. 유학자가 보는 역리란 혜각도사나 도무녀 장씨가 보는 점복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우주가 순환하는 법칙이다. 수학적 계산을 통해 천문현상을 예측할 수 있듯 수학적 기법을 통해 인간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귀신의 힘을 빌고 사람을 제물로 쓰는 음사나 방술은 좌도로써 사대부가 행할 바가 아니었다. 관상감은 소격서나 성수청과는 달리 조선 후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혜각도사나 도무녀 장씨나 허연우를 이용해 방술을 펼칠 입장이 아니다 보니. 그러나 허연우를 이용해 방술을 펼침으로써 그녀를 더욱 궁지로 내몰 필요가 있었다. 역시 드라마라는 것일 게다.

잃었던 과거를 되찾은 허연우가 과연 어찌 행동하게 될 것인가? 아직 허연우 또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더욱 과거를 찾았더라도 그것을 주위에 알리기란 어려움이 있다. 양명군과 이훤과의 사이에도 골이 패이기 시작한다. 민화공주의 죄책감과 그리고 조금씩 그 실체에 다가가고 있는 8년 전의 진실, 윤보경의 비극과 함께 윤대형의 어두운 그림자도 커져가고 있다. 기대한다. 일주일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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