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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16 09:31

해를 품은 달 "무녀 허연우의 고초, 고귀한 신분의 사랑을 스케일도 다르다!"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해를 품은 달>이라고 하는 드라마가 무려 40%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특별한 신분과의 특별한 사랑, 필연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 역시 결코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을 보게 된다.

물론 재벌 역시 현실에서 대부분의 보통사람에게는 차마 감히 넘볼 수조차 없는 높은 산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높은 산이더라도 사람이 노력하다 보면 오를 수 있다. 실제 지금 당장에도 어렵던 시절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여 재벌까지 이른 이들의 이야기가 여러가지 형태로 사람들 사이에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고귀한 신분이란 타고 나야 한다. 제아무리 실력으로 고귀한 신분을 손에 넣었다 할지라도 그 출신이 고귀하지 않다면 그에 대해서는 단지 실력과 노력과 의지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오히려 그에게 자손이 있어 그 자손들이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를 두고서 고귀한 신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산 그 위 하늘과도 같다.

스케일 역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대단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나라가 하나 흥하고 망하는 것은 곧 시대가 움직이는 것이고 역사가 바뀌는 것이다. 기업이 하나 더 잘 되고 더 못 되고 하는 것이야 경영자 개인이나 그 기업에 종사하는 다수에게 있어서나 의미가 있을 뿐, 그러나 한 나라가 어찌 되는가 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구성원은 물론 국제사회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역사교과서에 기술되는 내용이 달라진다. 이후의 시대와 역사의 흐름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그 기로에 있다. 단지 한 남녀의 사랑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 거대한 격랑의 한 가운데에 있다. 지금 이훤(김수현 분)과 허연우(한가인 분)의 사랑처럼.

기껏해야 20대 초반의 남녀에 불과하다. 한 사람은 왕이고 한 사람은 비천한 무녀다. 그러나 거기에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개입된다. 중전 윤보경(김민서 분)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찌되었거나 이훤과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이훤은 남편으로 유보경은 그의 아내로 서로 부부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는 이훤의 왕권을 넘보는 외척 윤대형(김응수 분)이 있고 왕대비 윤씨(김영애 분)가 있다. 윤대형이 윤보경의 친아버지인 이상에는 왕으로서 이훤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일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만일 이훤이 윤보경에게 마음을 준다면 윤대형은 더 세력을 얻을 것이고, 장차 윤보경이 낳게 될 원자의 외할아버지로서도 더 큰 권력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왕은 그 앞에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 있다. 고작해야 부부가 되어 잠자리를 갖는 것 하나 가지고서도 이렇게 큰 의미가 부여된다.

윤보경이 무녀로서 월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허연우를 질투하게 되는 것도 단순한 남편의 새여자에 대한 아내의 질투로 끝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윤보경의 질투에 왕을 노리는 윤대형의 권력의지가 개입한다. 윤대형의 권력의지는 국왕인 이훤과 대립하고 있는 외척의 권력의지다. 그들은 더 큰 힘을 가지기 위해, 그래서 더욱 조정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하기 위해 왕의 약점을 노리려 한다. 허연우는 그러한 왕의 약점이 되어준다. 어느새 윤보경의 질투는 왕과 외척 사이의 힘겨루기로 번져간다. 어떻게 해서든 왕권을 지키려 하는 이훤과 그런 왕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내어 보다 큰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윤대형과, 그 사이에 끼인 허연우란 그저 작고 애처로울 뿐이다. 하기는 이미 그래서 허연우는 멀쩡하게 살아서 죽은 사람이 되어 있기도 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려 해도 이훤은 왕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많은 짐이 지워져 있었다. 윤대형에 맞서 왕권을 지켜야 한다. 윤대형 일파의 부패와 전횡에 맞서 자신의 것인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 분명 이훤이 구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형틀에 묶여 있는 허연우를 구할 수 있다. 그대신 많은 것들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단 이훤 자신에게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왕이 감수해야 하는 손해란 곧 조선이라는 나라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훤 자신은 물론 조선과 나아가 조선의 왕실에까지 미칠 수 있다. 고뇌가 시작된다. 하나를 얻고자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릴 것인가? 모두를 지키고자 하나를 버릴 것인가? 왕이기에 가능한 고민이다. 왕인 자신의 체면까지 걸고 허연우를 구하고자 하는 의지란 것도 왕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양명군(정일우 분) 또한 마찬가지다. 그 역시 한 남자로서 사랑하는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국문장에 뛰어들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왕위를 노릴 수 있는 고귀한 신분에 있었다. 왕대비 윤씨는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양명군에게 그것으로 올가미를 씌우려 하고, 양명군과 이훤 사이의 어쩌면 있을 수 있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둔 형제간의 갈등은 장차 왕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지려는 조짐을 보인다. 아니 이훤이 양명군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 자칫 양명군을 죽이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하기는 직접 살이 찢게고 피가 튀는 고문을 당하고 있는 허연우 자신도 비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칫 그녀의 마음이 양명군이나 이훤에게 해로 돌아갈지 모른다. 자신의 목숨마저 걸어야 한다. 부릅뜬 눈이 그 순간만은 너무 잘 어울렸다.

그런 점에서 민화공주(남보라 분) 역시 비극의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겹사돈이라는 게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오라지인 이훤과 허연우가 결혼하게 되었다고 그녀가 굳이 허연우의 오라비인 허염(송재희 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다. 부모를 움직이고 직접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진심으로 진실하게 허염을 대한다면 어렵지만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 또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화공주는 공주였다. 그리고 허염은 공주의 부마로 삼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인재였다. 당시 조선의 법제가 걸렸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 앞에 좌절하고 있던 공주에게 왕대비와 윤대형의 탐욕과 권력에 대한 의지가 접근하고 있었다. 허염의 날개를 꺾으려는 윤대형의 의도와 허염을 얻고자 하는 민화공주의 의지가 만나고 있었다. 한 여자로서 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 뿐인데 이렇게 걸리는 것이 많다. 만일 이것이 실제의 역사였다면 역사교과서에 그녀의 이름 또한 적잖이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었을 것이다. 사림을 끌어들여 훈구파인 외척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성조의 의지를 결정적으로 좌절시킨 당사자로서. 사랑 한 번 하기도 이렇게 어렵다.

이른바 로열로맨스, 고귀한 신분의 사랑이야기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 그러면서도 사랑이 단순한 사랑이 아니고 현실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순히 만나고 서로 사랑하고 사귀고 결혼하는 것인데, 서로 질투하고 오해하고 갈등하고 다투는 것에 불과한데, 그야말로 판타지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현실에서는 오로지 상상으로밖에는 경험해 볼 수 없는 것들. 어쩌면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그런 이야기에 이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도 그래서 특별한 신분과 관련한 이야기는 항상 높은 대중의 관심 속에 소비된다.

고작해야 사랑 하나 하는 것인데. 고작해야 서로 좋아해서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인데. 신분이 무언지. 자신의 처지와 입장이 무엇인지.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으려 해도 주위에서는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그 한 가지 한 가지가 매우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그로부터 움직인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혹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역사를 써나가게 될 것이다.

다만 아쉽다면 거기서 굳이 허연우를 고문했어야 했을까? 허연우가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가 그 기록마저 삭제된 채 강제로 출궁된 이유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겠다. 한 나라의 왕후란 왕의 후계자를 잉태해야 할 중요한 위치다. 정비인 왕후가 후계자를 낳지 못한다면 자칫 후계를 두고 나라가 갈라져 피를 부르게 될 수도 있다. 왕실은 눌론 나라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서라도 왕후는 어떻게든 왕의 후계자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후계자를 낳아야 할 왕후가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면? 작은 접촉사고로도 어떤 후유증이 남게 될지 모르는데 허벅지를 직접 매로 치고 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있었다. 허연우를 이후 왕후로 삼으려 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물론 판타지다. 모든 것이 허구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의 디테일이 허구에 불과한 판타지임에도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양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드라마는 더욱 그다지 긴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다. 허벅지가 그렇게 헤어지도록 고문을 당했는데 이후 허연우는 얼마나 빨리 완쾌되어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되겠는가? 허연우가 흘린 피의 양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그렇게 직접적으로 윤대형의 악의를 드러내고 허연우가 처한 어려움을 구페화시켜 보여줄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조금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몸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고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무리수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나저나 확실히 이래서 소격서와 성수청은 폐지되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도교에도 양생과 수양을 중요시여기는 우도가 있다. 그런데 소격서의 혜각도사(김익태 분)가 하는 일이란 남을 해치는 좌도의 방술에 불과하다. 성수청의 도무녀 장씨(전미선 분) 역시 마찬가지다. 무녀로써 신에 대한 거짓이나 일삼는 그녀를 보고 어찌 성수청을 신뢰할 수 있는 국가기구로 인정할 수 있을까? 최소한 국가기구라면 국가적인 가치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러나 소격서, 성수청 어디에도 그런 것은 없었다. 기껏해야 개인의 복락과 안위를 구하고 그를 위해 방술이나 행할 뿐. 물론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는 재미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악의와 숨은 신의 악기가 드라마를 더욱 음험하게 얽어간다. 하늘에는 신이 있고 땅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 사이에는 의지가 있다. 정작 성수청과 소격서가 페지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현실적이다. 디테일이 있다.

사랑이 비단 한 남녀의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단지 개인의 감정만이 아니다. 그 등에 지워진 거대한 책임은. 그를 감당해야 하는 짓누르는 중압감은. 욕망과 악의가 휘몰아친다. 그 위에 왕이라는, 왕후라는 인세의 지고한 신분이 자리하고 있다.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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