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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4.07 07:36

로열패밀리 "공순호 회장의 약점"

인간의 죄와 인간의 존엄

 
그녀는 어쩌면 겁먹은 여우였는지도 모른다. 호랑이가 되고 싶어 그 가죽을 뒤집어쓰고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작고 약한 늙은 여우.

조현진(차예련 분)과 공순호(김영애 분)는 확실히 닮았다. 하지만 닮았지만 같지는 않다. 역시 살아온 시간이 다른 때문일까? 거울에 비친 듯 서로 너무나 다르다. 조현진은 공순호의 거울이다.

조현진은 한지훈(지성 분)에게 직접 묻는다. 올케(김인숙)을 좋아하느냐고. 김인숙(염정아 분)을 좋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면서 자기를 좋아해 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야망을 가져보라 한다. 자기가 그 야망이 되어주겠다.

비록 뒤에서 지켜보며 눈물을 흘릴지언정 조현진은 굳이 부딪혀 깨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공순호도 조현진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두렵더라도 알기를 꺼리지 않고, 불안하더라도 직접 부딪혀 도전한다.

아니 그것은 조현진과 공순호가 서 있는 자리가 다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켜야 할 것들이 다르다. 공순호의 뒤에는 이미 정가원과 JK가 있었고, 조현진의 뒤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 한지훈조차 그녀가 책임져야 할 무언가는 아니다.

과연 김인숙(염정아 분)과 남편 조경탁과의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가? 여자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불안과 두려움이란 과연 사실이었는가?

차마 그것을 확인할 용기조차 없었다는 것은 아들 조동호(김영필 분)가 김인숙과 결혼하려 했을 때 그것을 말리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이용하려 든 데에서도 드러난다.

“그때 청운이 했던 말을 들을 걸 그랬습니다. 동호의 결혼, K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허락하고 그렇지 않으면 과감히 내치라 했던 말...”

진정 조경탁과 김인숙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었다면 그녀는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어야 했다. 만일 의심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패륜일 터였다. 아버지와 불륜의 관계에 있던 여자와 아들이 결혼한다. 한국사회에서 그런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리 없다. 더구나 그것이 당사자들의 아내이고 어머니의 입장이라면.

그러나 그녀는 그런 너무나 쉽고 간단한 결론을 오히려 거부한다. 도리어 아들과의 사이가 틀어질 것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조동호가 물려받은 JK메디컬의 지분을 속임수로 빼앗고 만다.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사실을 안다는 것에 대한. 그것이 사실일 경우에 대한. 과연 그런 의심들이 사실이었을 경우 그녀는 어찌해야 하겠는가? 사실과 마주하기도 진실을 받아들이기도 그에 대처하기도 너무 두렵고 버겁다.

그래서 그녀는 도망친다. 의심하고 있다는 그 사실로부터도 도망쳐 현실의 욕망과 바꾸고 만다. 조동호의 지분이 탐나서가 아니었다. 조동호와 김인숙의 결혼을 반대하고 두 사람 사이를 영영 찢어 놓는 것은 스스로의 의심을 인정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의심을 인정하는 순간 그 의심을 확인해야 하고 그로써 도저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도 부딪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두렵다. 그래서 외면한다. 조동호의 지분을 빼앗은 것은 그저 작은 자기위안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들에 대한 응석이었다.

그런 그녀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청운거사일 것이다. 그녀는 다름아닌 유수의 재벌 JK의 총수다. 그녀가 JK를 이끌고 지휘하는 것은 원대한 전략과 치밀한 전술, 엄정한 원칙과 비전일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점장이에 불과한 청운거사에 의지한다.

청운거사의 실체는 그래서 그녀에게는 참으로 얄궂다.

“저는 거사님이 협박이나 돈 때문에 형님(임윤서) 대신 저를 택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저와 어머님, 그리고 JK의 운명, 그게 재미있으시죠? 결과를 미리 예정하고 그렇게 되어가는, 그게 궁금하시죠?”

그리고 바로 그런 공순호의 약점을 김인숙은 바로 파고든다. 그녀의 불안과 공포, 그녀의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읽어내는 김인숙은 바로 또 하나의 공순호다.

공순호가 김인숙을 꺼려하는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그렇게 김인숙을 꺼려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이유. 굳이 조경탁과의 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차마 그에 대해 묻지 못하는 이유. 김인숙이 겁먹은 여우이듯 공순호도 겁먹은 여우다. 조경탁이 살아 있을 때는 남편에 가려서, 조경탁이 죽고 나서는 JK의 쟁쟁한 주주와 임원들과 맞서싸우며 JK를 지켜야 하는 벼랑에 갇힌. 다만 공순호가 배부른 여우라면 김인숙은 춥고 배고픈 야위고 헐벗은 여우라고나 할까?

공순호가 쌓아 올린 JK라는 탑은 그래서 공순호를 닮아 허점투성이다. 불안과 두려움에 의해 쌓아올려진 정가원이라고 하는 성벽은 끊임없이 탐욕스럽게 주위를 공격하더니 이제는 자기 자신마저 갉아먹기 시작한다.

김인숙이 새로 꺼내든 카드인 임윤서(전미선 분)야 말로 바로 그렇게 준비된 약점이다. 어쩌면 조동진(안내상 분)은 임윤서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임윤서도 남편으로서 조동진을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란 어색하고 불편할 뿐이다. 그것이 조동진으로 하여금 다른 여자를 찾게 만들고 임윤서로 하여금은 조동진을 경멸하게 만든다. 지금에 이르러 두 사람을 잇는 것은 조동진이 후계자가 되리라는 기대. 하지만 그 아래에는 인간이기에 갖는 격정과 증오가 있다.

아마 임윤서가 김인숙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면 그런 부분들이 작용하게 되지 않을까? 공순호에 대한 증오와 조동진에 대한 애증. 보장된 JK의 안주인이라는 자리마저 차버릴 정도로, 이성적 계산마저 저버리게 만들 어떤 끓어오르는 감정이.

가족이 아니니까. 가족인데 가족이 아니니까.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니까.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이나 양심 따위 욕망과 바꿔버린 단지 함께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을 뿐인 관계니까.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탐욕과 계산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것이 파열을 일으킨다.

마침내 한지훈이 김인숙의 실체에 다가가고 있다.

“김여사가 변한다면, 이 한지훈이라는 인간을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한 거라면, 그때 내가 느끼는 분노는 공회장님의 증오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깊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부여잡고 싶은 것,

“세계일주항공권, 지구 어디에도 갈 수 있는. 김여사 도망가지고 한 것 농담 아니었잖아요? 나는 김여사 가자면 언제든 O.K. 그림 좋게 끝내준다고 그랬잖아요?”

의심이 깊어질수록 더욱 김인숙을 믿고 싶어한다. 김인숙을 믿고 싶어한다는 것은 더욱 김인숙을 의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실에 김인숙과 엄기도(전노민 분)가 함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엄기도의 목소리에 이내 발길을 돌리는 것처럼. 진심으로 김인숙을 믿어서라기보다는 단지 엄기도의 목소리가 자신의 발길을 돌려주기를 바래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김인숙도 안다. 느낀다. 미묘하게 달라진 한지훈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자신을 대하는 한지훈의 표정을 보면서. 그녀는 조급해 한다. 한지훈의 그런 변화를 그녀가 모를 수 없다.

“JK에 밟혀 처참한 모습으로 심판대에 오르고 싶지 않아요. 그런 모습으로 지훈이한테 단죄받고 싶지 않아요.”

그것은 그녀의 자존심이다. 그녀의 가장 고귀한 존엄이며 자아다. 자신의 죄에 대해 떳떳하고 싶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떳떳하게 한지훈으로부터 심판받고 싶다. 동정도 아닌, 연민도 아닌, 그 죄 자체로써. 그 죄 자체로써 당당하게 한지훈과 마주하고 싶다.

차라리 조니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타협할수도 양보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속이고 묻고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한지훈에 대해서는. 어쩌면 한지훈이란 그녀의 죄인 동시에 그녀가 인간이던 시절 두고 온 아련한 향수와도 같은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돌이키고 싶은. 그래서 그녀는 한지훈 앞에 가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녀가 되고 싶었던. 그녀가 진정으로 자신이기를 원했던 바로 그런 모습으로.

한지훈이란 그녀의 양심이다. 그리고 존엄이다. 다른 사람과는 타협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 없다. 그것은 한지훈이 요트 위에서 함께 도망치자고 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며 한 그녀의 말과도 통한다.

“이것이 내가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그것은 그녀의 또 하나의 죄의 증거일 서순애(김혜옥 분) 앞에서 내보인 그녀의 고백과도 관계가 있다.

“나, 나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도 놓지 못하는 것. 그것은 아들 조병준(동호 분)과 한지훈. 그러면 어째서 조니는 아닌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히 그려질 것이다. 그녀가 미국으로 떠나고 조니를 낳게 되는 과정. 그것은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과정이었을 터이니. 조니가 죽은 것은 그러한 과거로부터의 단절이며, 그래서 더욱 그녀는 아들 병준에게, 그리고 한지훈에게 집착한다. 한지훈에게 단죄받는 자신의 모습에 집착한다. 인간으로서의 증명. 바로 그것을 위해서.

엄기도의 김인숙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사랑? 아니면 연민? 인형을 안고서 배달을 가는 김인숙의 어색한 하이힐을 보는 그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신이란 상당히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에. 낡고 헤어진 하이힐과 그녀가 걸어가야 했던 굴곡진 삶,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엄기도의 애잔함. 얽히고섥힌 감정과 운명들.

사건의 윤곽은 드러났고 이제는 과거를 거스를 차례다. 과연 무엇이 있는가?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사연이 자리하고 있는가? 왜 그랬어야 했는가? 김인숙과 한지훈 사이의, 과거 지금의 그들의 운명을 결정했던 그 이야기들에 대해서.

가끔 생각한다. 너무 멀리 가는 것이 아닌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일 텐데. 하지만 작품이란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고 나면 관객의 것이다.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인간의 욕망과 그리고 존엄에 대해서.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재미있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드라마라는 게 그런 것 아니던가? 다만 재미있게 보고 즐겁게 즐기고 나면 무언가 치미는 향기가 있을 것이다. 되새김하고 싶은.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 싶은. 좋은 드라마란 바로 그런 드라마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일 게다. 좋은, 가치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쉽다면 청운거사와 한지훈에게서 반복되어 쓰인 '아우슈비츠'라는 메타포. 너무 작위적이다. 서로 전혀 상관없는 두 사람이 비슷한 비유를 들어 상대를 설득하려 한다?  그것은 개인의 경험과 성향과도 관계가 있다. 설사 우연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르게 설정했어야 했다. 어색한 부분이었다.

힘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올올이 풀어지며 제각각 흩어지려는 어색함과 산만함이 보인다. 한국드라마제작의 현실일 것이다. 불안하고 두렵다. 마지막 끝나는 순간 웃는 내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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