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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15 08:03

빛과 그림자 "중앙정보부장 김재욱, 원로연기자 김병기에게서 관록과 연륜을 보다!"

승승장구하는 강기태, 그러나 위기는 소리없이 찾아온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확실히 한 시대 최고 권력자를 연기해 본 사람은 그 포스가 남다르다. 아주 어렸을 적 KBS에서 <지금 평양에선>이라는 반공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김정일을 연기했던 이가 다름아닌 <빛과 그림자>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욱을 연기하고 있는 김병기였다. 나중에 김정인의 실제 사진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전혀 닮지 않았었다. 김정일보다 더 김정일 같았다.

그냥 가지고 논다. 장철환(전광렬 분)이 사나운 승냥이라면 김재욱은 느긋한 범이다. 당장의 어려움이나 불안은 있어도 그것을 어지간해서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화나고 밉고 싫은 감정이 있어도 그조차도 속 깊은 곳에 감춘 채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다. 항상 웃는다. 큰 사람인 양 여유로운 모습을 연기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시린 독을 품은 독사가 꿈틀거리고 있다. 전형적인 소리장도다. 후흑이라 하던가? 진정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라는 실감이 난다. 바로 이런 것이 권력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강기태(안재욱 분)가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하긴 그래서 강기태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는 대중의 판타지를 담당한다. 그는 꿈이다. 성취다. 당연히 그는 올곧아야 하고 그늘이 없어야 한다. 강기태가 겪는 고난은 그가 정의롭기 때문이며 그가 승리하는 것은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강기태가 차수혁(이필모 분)과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버지의 일도 있지만 그가 굳이 김재욱의 도움을 거절하고 여전히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당당히 장철환과 맞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장에 힘이 없어도 비굴한 것은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 신세에서도 강기태는 당당하게 장철환과 맞서고 있었다. 그것이 장철환을 자극하여 도리어 강기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운이 따랐다. 하지만 결국 강기태의 올곧음에 이끌린 주위의 도움이 있어서였다. 유채영(손담비 분)이 강기태에게 반하고, 신정구(성지루 분)가 노상택(안길강 분)의 달콤한 제안에도 다시 강기태에게로 돌아오고, 한지평이 의형제까지 맺어가며 조태수(김뢰하 분)로부터 그를 보호해주는 이유일 것이다. 송미진(이휘향 분) 역시 그런 강기태의 바른 모습에 이끌린다. 만일 강기태가 김재욱 같았다면 어땠을까? 장철환이나 차수혁(이필모 분) 같은 캐릭터였다면 어땠을까? 보다 수월하게 성공과 복수에 다가갈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과 같은 통쾌함은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크게 성공하더라도 강기태는 바보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고 한심한 바보들이 올곧게 성공하는 모습을 바란다.

그런 점에서 강기태가 맞서야 할 적이란 더욱 선명한 악이어야 할 것이다. 김재욱 또한 강기태의 적으로 설정되어 있었다면 여유로운 모습 가운데 숨은 시린 독니를 선명히 드러내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장철환이 하는 일들을 김재욱이 대신 해야 한다. 장철환이 김재욱에 비해 애송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그는 승리해야 한다. 김재욱을 누르고 더 독한 악의로써 강기태를 괴롭혀야 할 테니까. 지금의 김재욱의 모습으로서는 강기태가 그와 맞서야 하는 당위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장철환이 좋다.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범보다는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짖어대는 승냥이 쪽이 자신의 정의를 과시하는데는 더 좋다.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정작 악역이면서도 <빛과 그림자>의 악역들은 음험함이 부족하다. 교활하다거나 비열한 느낌이 덜하다. 그냥 독하다. 그냥 나쁘다. 직구다. 좋게 말해 정직하고 보다 노골적으로 말해 단순하다. 한 눈에도 나쁜 놈들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럼으로써 강기태의 올곧음이 부각된다. 정면으로 부딪힌다. 재거거나 따지는 것 없이 서로가 가진 의지와 의지로서 정면으로 부딪히려 한다. 그 장철환마저도. 장철환이 아닌 김재욱이 적이었다면 드라마도 더 재미있어졌을 텐데.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철저하게 궁지로 내몰리며 파멸한다. 하기는 그런 단순함이 있기에 당시의 연예계라고 하는 소중한 컨텐트에 대해서도 디테일할 수 있다. 강기태와 장철환의 싸움이 너무 깊어지고 복잡해지면 주위에 대한 디테일을 잃을 수 있다.

다만 김재욱의 현재 위치가 1인자가 아닌 2인자에 불과하다는 점이 걸린다. 1인자는 자신의 힘과 의지로서 자신의 권력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2인자의 운명은 오로지 1인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여유를 부리기에는 장철환 역시 1인자가 보기에는 자신의 충실한 수족 가운데 하나다. 치명적인 배신이라도 하지 않는 한 어차피 누가 2인자의 자리에 오르든 다를 것이 없다. 김정일이었다면 상관없을 여유가 김재욱이기 때문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강기태가 너무 잘나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이대로 끝날 드라마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 그렇게 길들여져 있는 걸!"

한국 드라마에서 유독 관계가 중요시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혜빈(나르샤 분)의 노래가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작 일선의 PD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인정과 이익에 이끌려 결정한다. PD들과 얼굴을 익히고, 다시 PD들에게 로비를 통해 호감을 사고, 노래가 좋은 것은 그 다음이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그 다음이다. 가진 바 재능이나 컨텐츠보다는 인간관계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유상준(김용건 분) 단장이 정작 돈에 이끌려 곡을 쓰지는 않는다면서도 태연히 곡비 이외의 돈을 강기태에게 요구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굳이 돈을 바라고 음악을 만들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인정 또한 돈으로 계량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돈을 요구할 수 있다. 인정에 이끌려 곡을 쓰고, 역시 인정에 이끌려 돈을 요구하고, 그것을 또 스스럼없이 내주고. 그런 점에서 철저히 비즈니스적으로 해결하려는 강기태의 모습은 야박해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기태 역시 철저히 비즈니스의 논리로써 기획사를 운영하기에는 아직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과연 이혜빈의 음반이 히트해서 벌어들인 저 많은 돈 가운데 이혜빈의 몫은 얼마가 될까? 유상준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관행상 강기태가 아주 기분이 좋으면 보너스로 얼마간 넣어줄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기획사나 음반사의 몫이다. 음반은 가수가 돈 벌자고 내는 것이 아니었다. 가수가 돈을 버는 것은 개런티이고 음반은 기획사나 음반사가 갖는다. 유상준의 몫 또한 따라서 없다. 다음곡 곡비나 더 비싸게 책정될 수 있을까. 그런 시대였었다. 참 오래된 시절이다.

최성원(이세창 분)이 대박을 터뜨렸다. 하필 시나리오를 써왔는데 그 내용이 이정혜(남상미 분)과 유채영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이미 남자주인공과 사랑하는 사이인 지고지순한 여름여자 이정혜와 그녀로부터 남자주인공을 가로채려 하는 팜므파탈의 라이벌 겨울여자 유채영, 원래의 시나리오를 유채영의 제안으로 인해 고치게 되면 나온 우연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시놉시스에 대해 듣고 있는 이정혜와 유채영의 표정이 흥미롭다. 더구나 유채영. 그녀는 살아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영화를 해 보고 싶다.

조금 더 짧은 시리즈였다면 이 부분만 따로 떼어 이중구조로 만드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이미 서로 사랑하고 있는 연인 강기태, 이정혜 커플과 강기태를 사랑하는 이정혜의 라이벌 유채영, 그리고 그들 사이를 그대로 담아낸 듯한 영화, 현실에서의 강기태와 이정혜, 유채영의 관계가 영화속 관계와 오버랩되며 이중적 구조를 갖는다. 결국 현실의 이야기와 영화속 이야기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면서 하나의 결말로 수렴하는 과정은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벌써 유채영의 표정에서 그런 의지가 보인다. 영화를 통해 이정혜를 이겨보겠다.

정작 상대를 자극하고자 보낸 초대장을 받고서도 역공하듯 당당히 찾아온 장철환에게 축사를 요구하는 모습에서 강기태의 대범함과 사업가로서의 역량이 보인다. 제아무리 적대관계라도 장철환이라면 누구나 아는 실세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자리에서 거절할 수 없는 요구로 장철환마저 이용하여 자신의 힘으로 삼고자 한다. 역에 역으로, 다시 역에 역으로, 중정 요원의 방문과 김재욱과의 조우로 반전은 반전을 이룬다.

가장 흥미로웠다. 강기태가 장철환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그 초대장을 받고 장철환이 찾아오고, 그 장철환에게 강기태가 축사를 요구하고, 차수혁의 계획에 의해 중정 요원이 찾아와 협박하고, 그 순간 다시 김재욱이 나타나고. 도리어 마지막 순간 장철환이 궁지로 내몰리고 만다. 물론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강기태가 다시 한 번 위기에 몰리기 위해서라도 장철환은 살아야 한다. 이대로 순조롭기만 하다면 드라마는 재미없어진다. 우여곡절이 있어야 드라마는 재미있어진다.

하여튼 바로 이런 것이 노장의 힘이라는 것일 게다. 흠뻑 빠져든다. 김병기도 김병기거니와 전광렬의 탐욕스런 사나운 짐승의 모습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것이다. 사나운 독기를 드러내면서도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웃는다. 그 또한 권력의 한가운데에 있다. 멋지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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