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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6.04.23 16:54

[권상집 칼럼] 일단 뛰어! 실사판 런닝맨 이창명의 도주 활극

이창명의 부적절한 상황 대처보다 더 부적절한 비상식의 관행화

▲ 이창명 ⓒKBS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우리는 종종 상대와 대화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심리적으로도 지각 방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리한 여건을 어떻게 해서든지 외면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포함,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상황이나 여건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종종 하게 되는 거짓말을 상대는 너무나 뻔하게 간파한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지각 방어의 오류는 언제나 그 말을 내뱉는 사람은 상대가 다 속을 것이라고 믿고 말한다는데 있다.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과거 신정환의 뎅기열 거짓말, 김상혁의 음주와 관련된 웃지 못할 희대의 거짓말이 시리즈로 또는 역대급이라는 이름으로 네티즌들의 조롱을 받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정치인의 말을 절대 믿지 않는다.”라고 강조했지만 대중들 역시 정치인뿐만 아니라 연예인, 방송인들의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 이번 이창명의 도주 활극에 대한 그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만 해도 쓴 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세상에 자신의 자동차를 그렇게 박살내고(정확히 말하면 자동차는 자신 소유가 아니라 법인의 소유이나 유령 법인이기에 이창명의 것으로 봐도 무방) 대전까지 그 야밤에 달려가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새삼 놀라울 뿐이다. 에어백이 터져 나오고 자신의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아팠던 사람이 휴대폰의 전원도 꺼진 채로 대전까지 달려 갔다? 이런 내용을 시나리오나 대본으로 써서 영화 또는 드라마로 제작하려고 한다면 단번에 투자사로부터 차디찬 욕설을 들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 같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20시간을 넘어 경찰 조사에 임하기 위해 나타난 그의 모습에서는 뒤에서 교묘히 조언을 해주는 변호사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경찰 및 전문가들이 언급했듯이 보통 16시간이 지나면 음주 여부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하루 가까이 그가 신비주의적 행태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이다. 24시간 동안, 차량을 박살내고 곧바로 현장 보고는 하지 않고 급하게 뛰어가서 병원에서 CT 촬영을 하고 다시 곧바로 급하게 대전까지 달려간다? 총선을 전국적으로 지휘하는 당 대표도 그렇게 촉박하게 또한 비합리적으로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20시간 넘어서 나타난 이창명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다만, 이창명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변명을 하는 것도 그 업계에서 이상한 건 아니다. 이미 2010년 배우 권상우가 놀라운 수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벗어났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6년 전, 주차된 여러 차량을 들이받고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자신을 쫓아오는 순찰차까지 들이 받고 그는 현장에서 도주했다. 차량의 소유주가 권상우라는 점을 확인했음에도 경찰이 체포하지 않고 시간을 끌자 2010년 당시에도 과연 ‘누가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또는 ‘경찰은 왜 알고도 못 잡는가?’라는 비난이 쇄도했었다.

결과적으로, 권상우는 수많은 음주운전 의혹을 뒤로 하고 “갑자기 경찰이 따라와 놀라서 달아났다”는 희대의 어록을 남긴 후 ‘사고 후 미조치’라는 가벼운 벌금형을 선고 받고 곧바로 드라마 출연을 강행했다. 끝내 그가 음주운전을 했는지는 결국 밝히지 못한 채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고 말았다. 당시 사건을 두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음주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앞으로 사건 현장을 도피하고 며칠 지나서 조사를 받는 등의 악용 여지가 크다.”며 걱정의 눈길을 보낸 게 불과 6년 전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아무 조치 없이 경찰이 사건을 종결하니 이창명도 분명 이러한 유사 사례를 검토하고 벗어날 전략을 수립한 후 20시간이 지나 경찰에 출두했는지 모른다.

음주운전, 도박 등을 일삼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셀프디스 하면서 웃음 코드로 이를 활용해서 재기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이미, 탁재훈과 이수근 등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셀프디스를 바탕으로 방송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이창명 사건 관련 댓글에서도 “라디오스타나 SNL 등에서 셀프디스로 활용할 소재가 늘어났으니 이창명에게도 이번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의로운 판결, 공정한 심판 같은 드라마에서나 나올만한 키워드를 또 한번 이곳에 쓰며 공인의 자성을 촉구하는 소리를 쓰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적어도 상식에 입각한 사안 처리를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백윤식은 “대중은 개돼지이기에 몇 번 시끄럽게 떠들고 이내 조용해질 것이다.”라는 식으로 대중을 조롱한다. 영화 대사를 보고 부아가 치밀어 오른 사람이 많았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조롱하고 비난했던 공인들과 기업들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다시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방송의 조명이 꺼지고 이내 “대중은 역시 개돼지가 맞았어”라고 혹시라도 그들이 생각한다면 너무 불쾌한 일 아닐까?

이창명 사건은 현재 단순한 음주운전, 뺑소니 등을 넘어 유령법인 등 탈세와 페이퍼 컴퍼니의 문제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일단 뛰어서 그 현장을 벗어난 후 성공한 이들이 적지 않기에 단순히 이창명에게만 모든 화살을 돌리기도 우습다. 이창명의 도주 활극보다 더 안타까운 건 그들을 관대하게 대하는 일부 기관의 시선과 태도가 더 비상식적이라는 데 있다. 댓글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과연 일반인이었다면 20시간이나 잠적할 수 있었을까?” 힘없는 사람에게 엄격하고 무자비한 칼날을 들이대는 반면 힘있는 사람에게는 유독 관대한 비상식의 관행화가 끊임없이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고착화된 슬픈 현실이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계열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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