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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08 09:04

샐러리맨 초한지 "진시황 회장의 실명과 의도, 왕이 불충한 신하를 골라내려 하다!"

전근대적인 봉건적 관계가 너무나 당연하게 익숙하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권력이란 외로운 것이다. 언제 누가 자신의 자리를 노릴 지 모른다. 항상 경계하고 의심한다. 가족도 없다. 친구도 없다. 동지도 없다. 모두가 적이다.

과연 백여치(정려원 분)가 최항우(정겨운 분)나 모가비(김서형 분)처럼 실력과 야심을 겸비한 재원이었다면 진시황(이덕화 분) 회장은 그녀를 가까이 두려 했을까? 그녀를 믿고, 그녀를 의지하고, 그녀를 위하고, 만에 하나 백여치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래서다. 진시황이 굳이 실명을 연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백여치의 옷에 묻은 작은 조각을 직접 손으로 집어 떼어내는 장면이란 결코 연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심지어 자신이 눈이 먼 사실을 알고 있는 외손녀 앞에서 굳이 그와 같은 번거로운 연기를 연습까지 해가며 보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우연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제까지의 앞을 보지 못하는 진시황의 모습이란 의도된 연극이 아니었을까? 도대체 어째서?

한 마디로 믿지 못하는 것이다. 혹시나 배신하지 않을까? 혹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모르게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틈을 보인다. 그들로 하여금 마음껏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도록. 이를테면 삼십육계에서 말하는 상옥추제일 것이다. 다락으로 올라가게 한 뒤 사다리를 치운다. 자신의 빈틈을 노리는 불충하고 불순한 무리들을 이 기회를 통해 걸러내려 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다지 드물지 않게 보이는 장면들이다. 초나라의 장왕이 무려 3년을 암군으로 행세하며 진정한 충신과 모리배를 가려냈다는 불비불명의 고사나, 동생 노부유키와 그 무리들의 반란을 유도하고자 짐짓 병을 칭했던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가 바로 그런 예들이었다. 조선의 태종이 세자인 양녕대군에게 양위할 뜻을 드러냄으로써 외척인 민씨 일족을 제거할 빌미를 잡고, 역시 조선의 선조가 임진왜란을 맞아 의주로 파천한 뒤 여러차례 양위소동을 벌여 신하들을 단속한 것도 그런 경우들이었다. 왕이 틈을 보이면 반드시 그것을 이용하려는 무리가 나타날 것이고 그들이야 말로 불충한 무리들일 것이다.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다른 신하들에 대한 경계로서 삼는다.

문제는 과연 이러한 것들이 현대사회에서도 유효한가? 배신이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의리에 대한 것이다. 친구 사이에 우정을 배신했다거나, 가족간에 천륜을 저버렸다거나, 그런데 기업의 경영자와 그 임직원 사이에서도 그러한 가치나 논리가 적용되어질 수 있는가? 기업은 사유물이 아니고 기업의 임직원은 경영자 개인의 신하가 될 수 없다.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어디까지나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받는 쌍무적 계약관계 아래 있다. 서로에게 요구되는 계약서상의 역할만 충실히 한다면 그 이상을 해야 할 의무도 없고 요구할 권리도 없다.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된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자기가 맡은 일만 잘하면 더 이상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런데 굳이 의심하고 경계하고 그래서 심지어 번거롭게 연극까지 하고 있고. 정히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차라리 공적인 기구와 규범을 통해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다. 공식적인 감사를 통해 적발하고 엄정한 규범에 따라 징계하고.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일을 꾸며가며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회사며 회사의 임직원이며 모든 것이 회장 개인의 사유물이라는 사고인 것이다. 진시황의 뜻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진시황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장량(김일우 분)처럼.

그야말로 진시황이란 왕이다. 천하그룹이란 진시황이라고 하는 군주에게 속한 그의 나라다. 천하그룹에서 일하는 모든 임직원이란 진시황에게 속한 그의 신하들이며 백성들이다. 천하그룹 산하 천하메디 인천공장의 공장노동자들을 공권력까지 동원해 잔인하게 진압한 진시황 회장이 정작 유방(이범수 분)이 해직된 노동자들을 모야 팽성실업이라고 하는 회사를 세웠을 때 그저 흥미롭다는 반응만을 보이고 있던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비록 자신의 손으로 잔인하게 진압해 몰아냈어도 그들은 진시황 회장의 직원들이며 그의 백성들이다. 하기는 그러니까 굳이 회사를 나가 이미 다른 일자리를 찾은 사람들마저 과거의 인연으로 끌어모아 회사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회사란 개인과 개인의 쌍무적 결합이 아닌 인정에 의해 엮인 유기체다. 마치 전통시대의 가부장적인 국가관을 연상시킨다. 기업이라고 하는 가족에게 있어 아버지는 누구고 어머니는 누구일까? 누가 자식이 되는 것일까?

일을 제대로 못하면 해고된다. 회사에서 더 이상 필요가 없다면 당연하게 잘려나간다. 회사가 필요해서 노동자다. 대신 노동자 역시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있다. 시혜를 받는 입장이 아니다. 보살핌을 받는 처지가 아니다. 단지 그동안 회사에 기여한 부분이 있기에 그 만큼의 보장을 회사에게 요구할 수 있다. 굳이 경영자의 인정에 매달리거나, 회사의 온정에 이끌릴 이유 따위는 없다. 자본은 차갑다. 자본에는 인정이 없다. 계약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대등할 수 있는 것이다. 인정에 이끌리는 관계에서 대등함이란 있을 수 있는가?

아무튼 덕분에 진시황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된다. 아니 새로운 것도 아니다. 천하그룹 계열사 공장에서 공장의 비품을 사용해 개발된 제품이다. 그 권리는 따라서 온전히 천하그룹이라고 하는 기업에 속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천하그룹이라고 하는 기업의 이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시황 개인이 아닌 천하그룹에 투자한 주주들과 천하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모두의 이익과도 직결된 것이다. 그런데도 단지 개인적 인정에 이끌려 유방에게 넘겨주려 한다. 유방에게 넘겨주고 심지어 거기에 개인적으로 투자까지 하려 한다. 백여치가 유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면 개인적인 인정에 이끌린 것이고, 투자에 따른 이익을 노렸다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빼돌린 것이다. 역시나 기업을 사유물로 여기고 있는 진시황 회장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경우들일 것이다. 그런데 비서인 모가비나 중역인 범증이며 소하나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진시황이 왕이라면 그 왕의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다.

유방이라고 사실 진시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유방이 자신의 고향후배인 번쾌(윤용현 분)를 대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그가 직장상사일 때도 후배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더니,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개인적 관계를 이용해 그를 등치려 한다. 진시황 회장의 인정에 기대하는 모습이나, 인정에 이끌러 천하메디 인천공장 직원들을 다시 끌어모으는 모습이나, 연설에서도 인정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의 사고방식도 극히 봉건적이다. 그의 세계 역시 개인의 인정에 의해 엮여지고 있다. 차이라면 진시황은 왕이고 유방은 백성이라는 것이랄까?

기업이라고 하는 국가다. 그리고 경영자라고 하는 왕이다. 임원이라고 하는 신하와 직원이라는 이름의 백성들이다. 주주는 귀족들이었을까? 드라마를 위한 작위적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잘 어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한 느낌을 갖게 한다. 경영자란 왕인 것일까? 노동자란 경영자의 인정에 기대는 신하이고 백성인 것일까? 기업이란 그러한 인정에 이끌린 집단인 것일까? 음모와 음모가 난무하고 충성과 배신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야말로 시대를 잊게 만든다. <초한지>라고 하는 제목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것은 <초한지> 시대의 이야기다.

어째서 이제 겨우 몇 달 회사일을 경험한 백여치가 진시황 회장의 후계자가 되는가? 천하그룹쯤 되는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회장의 외손녀인 백여치와의 정략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능력있는 자가 경영권을 맡는다. 최고경영자로서 그 능력을 입증한 이가 최종적으로 적합한 자리에 앉는다. 상식일 테지만 드라마에서는 상식이 아니다. 더구나 백여치가 이제껏 드러나지 않은 자신의 재능을 내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냥 판타지이기를. 그저 드라마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설정이기를. 혹은 작가의 의도가 개입해 있지 않을까? 반전을 기대하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우려스럽다. 차라리 자신의 실력으로 천하그룹을 차지하겠다고 하는 최항우의 자신감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들린다. 최항우 역시 상당히 봉건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지만 그래도 해외유학파다운 합리성을 보인다.

보고 있으려니 답답하다. 그런데 그것이 또한 익숙하다. 너무 당연하게 보아오던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것들이 걸린다. 기업이란. 경영자와 노동자란. 사용자와 고용인이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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