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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유채영의 비극,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안타까운 그녀의 진심..."

유채영의 강기태에 대한 진심에서 그녀에게 닥칠 비극을 예감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그런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마저 내던진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스스로 여성이라고 하는 사실마저 이용해 자신을 수단으로 삼아 이용한다. 그리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떠나간다. 떠나가야 한다. 그것을 사랑과 희생이라 부른다.

보는 내내 답답했다. 어쩌려는 것일까? 일단 아직까지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이정혜(남상미 분)이다. 아마도 여주인공인 이상 이정혜와 남주인공 강기태(안재욱 분)가 마침내 이어지고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고 마는 유채영(손담비 분)는 어쩌려는가?

물론 노상택(안길강 분)과 고실장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사실은 그들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강기태에게로 날아가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노상택과 고실장이 있는 한 그녀는 마음대로 사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강기태를 위해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한 채 오히려 해만 될 뿐이다.

그런데 이제 노상택의 사주를 받은 신정구(성지루 분)는 빛나라쇼단의 단원들을 이끌고 강기태를 배신하고 노상택에게로 가 버렸고, 심지어 전국구 깡패인 조태수(김뢰하 분)마저 자신의 일을 방해한 강기태를 찾아나서고 있었다. 더 이상 쇼단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제 조태수에 의해 목숨마저 위협받게 생겼다. 더욱 마음이 급하고 절실해진다. 어떻게든 강기태를 살려야 한다. 당장에 강기태를 구해 자신의 집에 숨겨놓고 겨우 얻은 힘을 이용해 궁정동 마담을 찾아가 장철환(전광렬 분)을 만나 차수혁(이필모 분)을 통해 강기태의 목숨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유채영의 진심이 강기태에게 전해질 수 있겠는가? 전통적인 이야기구조에서는 정조야 말로 여성의 가치 그 자체였다. 주인공의 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에게 순결한 여성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죽거나,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묵묵히 떠나거나, 어찌되었든간에 그녀는 주인공의 곁에 남아 있어서는 안되었다. 현대적인 이야기구조에서라면 더욱 강기태가 좋아하는 상대가 이정혜라는 것이 걸린다. 아무리 희생이 고맙고 미안해도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지 못한다. 유채영이 강기태의 곁에 남게 되는 순간 그녀는 뜻하지 않게 두 간절한 연인의 사이를 방해하는 악역이 되고 만다. 어느 쪽이든 유채영의 마음은 보상받지 못하기 쉽다. 하기는 그래서 유채영은 하필 강기태가 위기에 놓이기 전에 그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정혜의 짐을 덜어주려 그녀의 선택은 한 발 빨라야 했다. 그래도 그녀는 강기태에게만은 오롯이 진심이다.

차라리 유채영이 자기만 아는 독한 캐릭터였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녀의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조차 이기적인 목적에 의한 선을 넘어서는 행위였다고. 만일 그렇다면 그녀에 대한 동정과 연민조차 어느 정도는 상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정도에 따라 충분히 그녀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혀 강기태와 이정혜라는 주인공 커플에 영향을 주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떨쳐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나 착하고 순수하고 솔직하다. 심지어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이정혜에 대해서조차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한때는 그녀를 질투하고 미워도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그녀에 대해 직접적인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다. 이래서야 강기태가 그녀의 진심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일방적인 희생으로 끝나기 쉬운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래서는 설사 유채영이 끝내 강기태에 대한 배신감과 모멸감에 악역으로 돌변하더라도 그녀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강기태와 이정혜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이전처럼 순수하게 몰입하기 힘들다. 온전히 강기태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겪어야 했던 일과 그녀가 강기태를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에 비추어 그녀의 마음을 강기태가 일방적으로 거부당한다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의 감정 마저 생기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그런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들이 유채영에게 닥치지 않겠는가. 죽거나, 다치거나, 도저히 강기태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거나.

유채영의 캐릭터가 너무 커 버렸다. 그저 서로 좋아할 뿐인 강기태와 이정혜의 관계보다 오히려 강기태와 유채영과의 관계에 더 서사성이 있다. 더 애절하고 더 극적이다. 더 강렬하고 더 안타깝다. 오히려 전혀 재미없이 지루하기까지 한 이정혜와의 관계에서보다 유채영과의 관계에 더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사랑이란 단지 진심만으로 충분하지만 드라마란 진심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드라마에는 드라마가 필요한데 그 드라마가 유채영에게 있다. 결국 이정혜가 여주인공이기 위해서는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로든 그녀는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안타까운데 더 안타까워진다. 무심하게 외면하고 떠나는 강기태를 보는 유채영의 애처로운 눈길에서 더 큰 비극을 예감하게 되는 이유다. 손담비라는 배우를 주목하게 된다. 캐릭터가 가장 확실하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 앞서는 이정혜를 야단치는 장면에서 심지어 통쾌하기까지 했었다.

아무튼 신정구의 말처럼 강기태의 인복은 타고났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여복을 타고났다. 이정혜야 현재로서는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빅토리아의 사장 손미진(이휘향 분)이나 유채영이나, 더구나 궁정동 마담 역시 강기태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최악의 위기에서도 손미진의 도움으로 일어나고, 유채영의 도움으로 마침내 목숨까지 구하고 있었으니. 강기태를 위해 유채영은 여성으로서의 자존심까지 내던졌다. 그럼에도 잘난 강기태는 무심하기만 하다.

과연 강기태에게 신정구란 어떤 의미였을까? 신정구에게 유성준(김용건 분)의 존재가 갖는 의미가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강기태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스승과 같은 존재다. 그로 인해 쇼비즈니스에 발을 딛었고, 그에 의지해 지금까지 헤쳐나올 수 있었다. 단순히 신정구의 쇼단 단장으로서의 그동안의 경험과 실력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안심이 되었던 것이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정에 약한 강기태인 만큼 그만큼 더욱 신정구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은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당장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조차 신정구의 배신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 만큼.

신정구가 유성준과 만난 것이 바로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유성준을 만나며 신정구는 초심을 돌이킨다. 현실의 이익과 자신이 지켜야 할 원래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당장은 노상택에게 이끌리지만 결국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누구보다 강기태의 그러한 진심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신정구 자신일 것이므로. 욕심에 눈이 멀어 강기태를 배신했지만 대가 약할 뿐 신정구는 그다지 독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독하지 못해서 배신하고 만다. 사람은 독해서도 악해지지만 독하지 못해서도 악해지는 법이다. 사람이 갖는 비극이다.

어쨌거나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연도가 다시 조정된다. 베트남전쟁까지 배경으로 나오고 있고 했으니 70년대 초반이거나 중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난주 배경음악으로 나온 알스튜어트의 'The Palace Of Versailles'나 이번주 장철환과 차수혁의 대화에서 언급된 박동선 사건으로 보아 한미관계가 한창 최악을 달리던 1978년 이후 유신말기가 아니었을까. 중앙정보부장 김재욱(김병기 분) 역시 그런 점에서 납득이 된다. 김재규와 CIA 관련설은 10.26과 관련한 매우 유력한 음모론 가운데 하나였다.

과연 '어르신'이 죽고 장철환의 이후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일단 실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에서 그가 차지철이 아닐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살아남아 5공화국까지 이어지며 강기태의 악연으로 남을 것인가? 드라마에 한 바탕 폭풍이 몰아칠 것 같다. 적이 더욱 강해지거나, 아니면 주인공 강기태가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되거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때 시작되지 않을까.

보이느니 결국 유채영이었다. 강기태는 누워 있고, 이정혜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고,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 것은 오로지 유채영 뿐이었다. 그럼에도 결코 보상받지 못할 그녀의 진심이 예감되어 더욱 눈길이 가고 있었다. 강기태가 싫어지려 한다. 이정혜가 미워지려 한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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