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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2.05 10:25

불후의 명곡2 "전설 송창식 2탄, 이렇게 노래 안에서 하나인 우리..."

'송창식처럼 부를 수 있으면 그게 최고일 텐데 경연에서 모창을 할 수 없으니까' 공감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확실히 홍경민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송창식 이전에도 없고 송창식 이후에도 없다. 송창식 위에도 없고 송창식 아래에도 없다. 송창식은 그저 송창식일 뿐이다. 송창식의 노래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송창식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들었다. 송창식의 노래를 송창식이 불러야 한다.

필자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노래꾼일 것이다. 그 감성, 그 기교, 오로지 송창식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 악보의 음계를 넘어서 음과 음 사이를 채우는 무언가가 있다. 비우고 채우고 당기고 늦춘다.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누가 불러도 송창식의 노래는 송창식이 불러야 맛이 난다.

하지만 또한 그렇다고 경연인데 송창식을 모창하는 것도 그렇다. 후배로서 대선배 앞에 자신의 역량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고 평가받는 자리일 것이다. 송창식을 뛰어넘기 위해서가 아니다. 송창식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보여주고 평가받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송창식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나비이고, 신용재이고, 홍경민이고, 이정이고, 지오이고, 제아이고, 성훈이다. 경쟁하는 것이 아닌 오롯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준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송창식이라는 인물의 깊이가 드러난다. 필자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넓이이고 깊이다. 그것을 연륜이라 하는 것일 게다. 지혜라 부른다. 필자는 여전히 송창식에 갇혀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송창식은 송창식 자신마저 뛰어넘어 가수들의 노래를 순수하게 즐기며 듣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 한참 어리고 부족하구나. 편협하고 졸렬하다.

세상에는 좋은 음악과 더 좋은 음악만이 있다고 한다. 모두는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려 음악을 한다. 곡을 쓰고, 편곡을 하고, 연주를 하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단지 그 최고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최선인가. 그러나 결극 청자의 입장에서 먼저 다가가 이해하며 듣는다면 세상에 안 좋은 음악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지혜다. 이해하는 것. 그리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오로지 음악을 즐긴다.

후배들이 최선을 다해 선배를 위해 무대를 꾸며 보여준다. 선배와 청중과 시청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꾸며 보여주고 있다. 굳이 평가할 필요가 있을까? 비교고 판단할 까닭이 있을까? 나비는 나비이고 신용재 또한 송창식이 아니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뿐. 오히려 자기 노래이기에 더 애착이 있을 텐데도 그런 것조차 없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인을 사랑한다. 음악을 하는 후배와 음악을 즐기는 모두를 사랑한다. 송창식의 얼굴에서 웃음을 제외한 주름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런 무대였을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하기는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한 선배가수들치고 불편하다거나 불쾌한 표정이나 기색을 내비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청자 입장에서야 누가 더 좋았고 어떤 무대가 별로였다며 평가를 내리고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정작 원곡자인 선배들은 오히려 감사히 무대를 즐기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것이 <불후의 명곡2>의 무대였다.

축제다. 잔치다. 선배와 후배가 한 데 어우러지는. 평소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든 선후배들이 한 자리에서 서로 어우러지는. 존경하는 선배의 무대에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린의 표정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잘 어울리고 있었는가. 오히려 같은 가수이기에 느끼는 그 깊은 느낌을 대기실의 가수들 또한 청중과 시청자와 함께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경연이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선배가 있고 후배가 있고 노래와 무대가 있는 한 마당 축제, 잔치 분위기였다. 흥겨웠다.

정말 좋지 않은가? 음정이 어떻고 박자가 어떻고, 노래의 원래 감정이 어떻고, 노래를 잘했느니 무대가 어땠느니 그런 심각한 말은 거의 오가지 않는다. 오디션 자리가 아니다. 누가 살아남고 떨어지는 살벌한 자리도 아니다. 오히려 농담이 오간다. 지난주는 송창식을 닮았다는 린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지고 한가하게 농담을 나누더니 이번주에는 신용재가 글쎄 송창식을 닮았다는 이야까지 나오고 있다. 신동엽과는 감옥에 갔던 이야기로 공감대를 나누고, 이정에 대해서는 그의 짧은 바지가 화제가 되고 있었다. 성훈의 피아노실력도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었다.

'나비소녀'가 원래는 '나비처녀'였구나. 신용재의 무대를 보고서는 편곡을 따라해보고 싶다 말하고 있었다. 경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선배 앞에서 후배들이 선보이는 재롱잔치 같지 않은가. 서로 모여 함께 정담을 나누는 자리와 같았다. 가수니 무대는 당연히 따라온다. 정이 오가고 진심이 오간다. 그저 부담없이 즐겁기만 하다. 그러다가 칭찬이라도 듣게 되면 얼마나 좋은가?

지난주에 소냐에 이어 이번주에는 홍경민이 계를 탔다. 아니 계 정도가 아니라 로또다. 존경하는 대선배가 자신의 무대를 듣고 공연을 직접 보고 싶다 말한다. 하나의 무대만이 아닌 무대 전체를 보고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다고 말한다. 허리가 90도로 굽혀지는 것이 단순히 선배에 대한 예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순간 가수가 아님에도 홍경민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성훈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흥미롭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흥미롭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결국은 같은 음악을 하는 음악인으로서 성훈의 무대에 관심을 보인 것이 아니겠는가. 잘했다 훌륭했다 하는 평가가 아닌 순수한 관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칭찬보다 더한 인정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훌륭한 무대였다.

나비의 '나비소녀'는 굳이 송창식이 '나비처녀'라는 원래의 제목을 들출 필요 없이 제목 그대로의 분위기를 아주 잘 전달하고 있었다. '나비소녀'에서 '나비'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나물캐러 갔다가 나물은 하나도 캐지 못하고 빈바구니로 돌아오게 했을까?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가슴에 달고, 머리에 장식하고, 봄의 소녀를 설레게 만든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려서부터 품어온 의문이었고 그에 대한 답을 나비가 주었다. 송창식이 확인시켜주었다. 봄은 역시 사랑의 계절이다. 실제 사랑은 않더라도 사랑에 설레며 사랑의 꿈을 키운다. 소녀가 여자가 되어간다. 아주 흥미롭고 쉽게 이해되어지는 좋은 해석이었고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스윙리듬의 편곡이 매우 흥겨웠다.

신용재의 '왜불러'는 조금 감정이 넘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기는 70년대와 2000년대의 감수성은 다르다. 그때는 남자는 자신의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것을 남자답다고 그랬었다. 지금은 그보다는 보다 자유롭고 솔직한 감정을 더 중요시한다. 제아의 '사랑이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넘치기는 했지만 그때처럼 양보하고 참고 드러내지 않는 당시의 감정은 지금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이를 먹어가며 한결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제아의 감정이 고스란히 노래에 담겨져 있었다. 사랑에 대한 희열과 함께 불안과 초조가 느껴진다. 운명과도 같은 사랑이기에 더욱 그녀의 안에서 격정이 요동친다. 절절하다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을 게다. 송창식의 원곡은 70년대에 나왔고 그들은 2010년대에 그 노래를 그들의 감성으로 부르고 있었다.

솔직히 홍경민의 경우는 조금 오버라 보았다. 아니 아니다. 70년대의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가 민족과 국가였다. 고도성장기 조국이라는 말은, 그리고 민족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을 울리던 그 시대의 보편의 가치였었다. 다만 원곡이 보다 희망적이고 진취적이라면 홍경민의 노래는 보다 엄숙하고 비장했다. 아마 송창식이 홍경민에게 운동권이 아니었느냐 물은 이유였을 것이다. 80년대 운동권의 비장함이 홍경민의 노래에는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거부감의 이유였을 것이다.

엄숙과 비장이 애국심과 만나 좋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예가 그다지 없다. 엄숙하면 경직되고 비장하면 구속된다. 경직과 구속은 맹목으로 이어지는 첩경이다. 필자가 홍경민의 무대를 보며 무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불편함을 느낀 이유였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오히려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노래 없이 오로지 태극기만을 보여주는 후반의 퍼포먼스는 그런 필자마저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어떻게 해도 필자 역시 한국인일 터다. 김구라의 말이 맞다. 선동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무대 경험이 많다. 이래서야 홍경민에게 투표하지 않으면 그것이 비애국이 되어 버리겠다.

이정은 목소리가 상당히 가늘다. 미성인데 어째 노래가 주는 환희보다는 슬픈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원래 R&B라는 장르 자체가 슬픔이라는 감정에 최적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원곡이 주는 사랑에 대한 기쁨과 환희, 그리고 감사함이라는 감정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조금 더 담백하게 불렀으면 어땠을까? 송창식은 노래를 부르며 항상 웃는다. 필자의 내공이 짧아 노래를 잘한다는 이상의 장점을 찾기 힘들었다. 웃으며 듣고 싶은 노래가 우울해졌다. 아쉬웠다.

지오에 대해서는 사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목소리가 상당히 매력적인 걸 알 수 있었다. 트로트스러우면서도 트로트와는 다른 독특한 고급스러움이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노래를 잘한다. 아직 노래의 깊은 맛을 표현해내기에는 감정의 깊이가 부족하지 않은가 싶기는 하지만,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스킬과 컨텐츠가 매우 좋다. 감미로우면서도 사람의 감정을 긁어줄 수 있는 목소리다. 차라리 발라드나 댄스보다는 보다 고급스러운 트로트를 공략해 보는 것이 어떨까? 탁월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귀기울여 듣게 만드는 목소리이고 노래였다. 즐겁게 잘 들었다.

제아는 말했듯 그녀만의 감성으로 '사랑이야'라는 노래를 소화해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제아라고 하는 한 여성의 노래였다. 그녀의 솔직한 감정을 담은 노래였다. 그 순간만큼은 송창식의 노래가 아닌 제아의 노래라 할 수 있었다. 기교라는 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러나 어느새 그녀의 인터뷰와 어우러지며 무대에 공감하며 즐길 수 있었다. 노래란 결국 이야기이며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그녀 역시 상당히 훌륭한 부대가 아니었을까? 충분히 노래를 느낄 수 있었다.

성훈은 과연 최고라 할 만했다. '맨처음 고백'이라는 노래 자체가 수많은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것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했을 때 '혼란'이 된다. 내면에서의 혼란이란 바로 망설임으로 이어진다. 어찌할까? 고백할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놔 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기쁘고 슬프고 두렵고 화나고 안타까운 감정이 한 순간에도 수십번씩 교차하며 지나간다. 첫사랑의 고백을 하던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것을 매우 세련된 편곡과 무대매너로, 무엇보다 탁월한 가창력으로 소화해내고 있었다. 원곡과 비견할 만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모든 경연과 평가가 끝나고 프로그램의 말미에 '우리는'이라는 노래와 함께 흘러나오던 송창식의 옛모습과 송창식 자신과 후배가수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소회였을 것이다. 마냥 좋아하는 송창식과 그만큼이나 감사해하고 감격해하는 후배들. 어쩌면 청중이란 그조차도 축하해주는 하객이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넘어 선배와 후배가 만난다. 공간을 압축해 선배와 후배가 한 무대에 선다. 노래는 그를 위한 매개다. 그 말에 동의한다.

"이렇게 노래 안에 하나인 우리..."

그래서 음악인이라는 것이겠지만. 음악팬이기도 할 것이다.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기억과 기억을 잇고, 추억과 추억을 잇고, 감동과 감동을 잇는다. 세대도 하나로 아우른다.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지금의 젊은 세대들. 음악이 있어 모두가 하나다.

또 한 가지 반가웠던 것이 정말 오랜만에 보는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의 생전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직 건강하던 무렵 이주일이 송창식을 부르고 송창식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사람은 갔지만 이름은 남는다. 사람은 갔어도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남는다.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되어질 이다. 이주일. 코미디언. 내게 웃음을 주던 이.

다시 강조해 말하지만 나는 송창식을 무척 좋아한다.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고 그 위에도 아래에도 좌우에도 없다. 송창식은 오로지 한 사람 뿐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리고 그의 노래들을 훌륭히 소화해 부른 젊은 후배가수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들의 노력과 정성이 하나하나 무대를 통해 느껴지고 있었다. 하기는 그들 역시 이미 가수일 터다. 프로 음악인들일 것이다.

홍경민과 이정의 번외대결은 <불후의 명곡2>라고 하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보여줄 것이다. 브아솔과 브아걸이 마침내 2라운드 마지막 대결에서 맞붙었다. 음악에 대한 진정성도 최고지만 웃음과 재미를 위한 노력도 빠뜨릴 수 없다. 대기실에서는 김구라가 출연자들을 골리고 무대에서는 신동엽이 출연자들을 가지고 논다. 관계가 만들어지고 스토리가 쓰여진다. 역시 부담은 없다. 진지하지만 그러나 심각하지는 않다. 진심이지만 그러나 엄숙하지도 않다. 즐겁게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워낙 좋아하는 노래들이라 가만 무대만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는 것. 따라부르고 싶어 입이 들썩들썩했었다. 어디든 가면 항상 즐겨부르던 노래들이었다. '고래사냥'은 그야말로 세대의 구분이 없을 것이다. 음악의 힘이다. 그것을 보았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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