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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4.01 09:08

100분토론 - 오디션프로그램 열풍의 이유!

공정한 경쟁에 대한 판타지!

 
왜 한국의 대중들은, 아니 세계의 대중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여러 방송국에서, 수도 없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대중적 이슈가 되며, 높은 시청율과 상업적인 성공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째서?

하기는 한 번 쯤 다루어질만한 소재이기는 했다. 벌써 우리나라에만도 <슈퍼스타K>를 필두로 <위대한 탄생>, <신입사원>, <코리안 갓 탤런트>, <꿈을 캐스팅하라 - 기적의 오디션>,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2>등의 전통적인 오디션은 물론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와 같은 기성가수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까지 이 순간에도 수도 없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있고 기획 중에 있으니 말이다. 아직 시작도 않은 프로그램이나 <신입사원>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하나같이 높은 시청율과 대중적 이슈를 몰고다니는 프로그램들이다. 과연 어떤 이유에서 한국의 대중들은 이와 같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결국은 화제성일 것이다. 보고 나서 어떤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뜻일 테니까. 가장 인상 깊게 보았다는 것은 그것이 그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들이 이슈가 되고, 어떤 것들로 화제를 삼는가. 가장 뜨겁게 가장 크게 이슈가 되었던 사안들을 살펴보면 그 근사치의 답에 이를 수 있지 않겠는가.

<슈퍼스타K>에서도, <위대한 탄생>에서도, 그리고 가장 최근의 <나는 가수다>에서도, 과연 어떤 내용들이 가장 크게 가장 뜨겁게 이슈가 되었었는가? 누가 더 잘생겼다? 누가 더 노래를 잘 한다? 누구의 사연이 더 감동적이다? 누구의 캐릭터가 가장 재미있다? 혹은 이번에 생방송에서 누가 붙고 누가 떨어졌다? 사실 <나는 가수다>에서조차 누가 1위를 하고 7위를 하고 하는 것보다 더 크게 이슈가 되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공정성.

그렇다. 공정성이다.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항상 불거지는 문제이면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화제. 분명 붙었어야 했는데. 분명 살아남았어야 하는데. 아니 도저히 붙을 실력이 아니었는데. 도저히 저 사람이 살아남아서는 안 되는데. <나는 가수다>에서도 심지어 가장 선배인 김건모가 후배인 가수와 연예인들의 반발과 제안으로 재도전의 기회를 갖게 되자 그로 인해 아예 인터넷이 폭발하고 있었다. 부당하다. 불공정하다. 배신행위이다. 심지어 한국사회의 병폐다. 특권이다.

<슈퍼스타K>에서도 누가 보아도 실력과 재능이 있어 보였던 김보경과 우은미, 현승희 등이 떨어졌을 때 심사기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위대한 탄생>에서도 정작 붙어야 할 사람이 붙고 실력이 영 부족한 사람들이 떨어졌을 때 - 특히 이은미 멘토스쿨에서 오히려 실력이 부족해 보이는 권리세가 한결 낫게 부르는 듯한 이진선과 박원미를 떨구고 생방송에 진출하면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었다.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었다. 시청율을 위해서 제작진이 이은미를 사주해서 비주얼이 뛰어난 권리세를 살려냈다. 더 이상 <위대한 탄생>을 볼 의미가 없다.

<나는 가수다>에서도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시는 <나는 가수다>를 보지 않겠다 말하고 있었다. 다른 이슈들이야 그러려니 넘겨도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나면 프로그램의 존재의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무슨 뜻인가? 그만큼 사람들이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데 있어 공정성을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다.

오디션이란 경쟁이다. 누가 떨어지고 누가 살아남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항상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상금과 상품과 그리고 흔치 않은 기회들. 바로 참가자들이 가지고 싶고 쟁취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 보상을 향해 서로 뒤엉키며 경쟁하고 떨구고 살아남는 과정들이 시청자들에게도 긴장과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전제하는 것이 바로 공정함.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현실은 불공정하다. 불공평하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조금만 더 현실이 공정했다면. 공평했다면. 나에게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공정하게 경쟁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경쟁에 대한 신화이기도 하다.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기회.

어쩔 수 없이 현대사회란 경쟁사회다. 모든 사람들이 경쟁에 내몰린다. 보다 위로. 보다 앞으로. 남들보다 위로. 남들보다 앞으로. 끊임없이 경쟁하고 그런 가운데 누군가는 도태된다. 아마 가장 앞에, 혹은 가장 위에 선 몇몇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도태된 낙오자일 것이다. 콤플렉스라는 외상이 영혼 깊숙이 새겨진다. 그것은 열패감이며 좌절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믿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의 장을. 경쟁을. 오디션이란 바로 그러한 대중의 의식, 혹은 무의식의 투사라 할 수 있다. 최소한 저 자리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하게 공정한 룰에 의해 기회를 부여받고 평가되어질 수 있다. 마침내 승리와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

최근 <위대한 탄생>에서 노지훈과 관련해서 인터넷상에 비난여론이 폭주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어떻게 이미 음반도 낸 적이 있고 거대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까지 한 적이 있는 사람이 <위대한 탄생>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가? 그것은 마치 다른 참가자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슈퍼스타K> 출신의 허각이 초심논란에 휘말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던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사회의 약자의 모습을 그에게서 보았기 때문이었으니까. 항상 순수해야 하고 순결해야 한다. 그에게 씌워진 굴레다.

현재 <위대한 탄생>에서도 그래서 가장 크게 팬덤을 이루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조선족 출신의 백청강이다. 결코 한국사회에서 주류가 될 수 없는. 심지어 외모마저 잘생겼다기에는 한참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은미가 그에게 고기를 사주고 싶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며 양정모가 싸가지고 온 배를 받아먹는 모습에 어떤 귀여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약자에게 이끌린다. 김태원의 멘토스쿨이 '외인부대'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크게 이슈가 되었던 것도 하나같이 우리사회의 주변에 머물고 있는 듯한 모습들에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것은 곧 우리네 소외된 이웃이며 소외되어 있는 바로 자신이기도 하다.

<놀러와>에서 방시혁이 말한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에서 재능이 있고 가능성이 있는 음악엘리트라면 거의 기획사에 소속되어 연습생으로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오디션프로그램까지 나올 정도면 그러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기회가 주어졌어도 잡지 못한 나머지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래서 항상 이슈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겪었고,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시청자와 공감할 수 있는 코드이기도 하다. 결코 경쟁사회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 시청자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었다.

하긴 그래서 오디션프로그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브리티시 갓 탤런트>에서도 그래서 결국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외판원 출신의 폴 포츠와 데이트 한 번 해 본 적 없다는 땅딸한 수전 보일이었다. 그들의 노래도 노래려니와 그 노래실력에 ‘그럼에도’를 붙이게 만드는 어렵고 우울한 이야기들이 감동을 배가했던 것이었다. 그런 것을 의도적으로 끄집어내고 드러낸다. 오디션프로그램이 흥행하는 매뉴얼이다.

다만 문제라면 과연 경쟁이란 공정한가? 하지만 원래 경쟁이라는 자체가 불공평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모두가 빠르다면 경쟁할 필요가 없다. 모드가 힘이 세다면 힘을 겨룰 필요가 없다. 경쟁의 공정함이란 주어진 조건 안에서의 공정함이다. 김태원이라는 멘토 앞에서, 이승철이라는 심사위원 앞에서, 대중이라는 다수 앞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는 것. 그러나 항상 내가 경쟁할 수 있는 요구 아래서만 경쟁할 수는 없다.

사실 오디션프로그램에서의 경쟁이라는 것도 오디션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조건 아래에서의 경쟁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바. 심사위원이 보고자 하는 바. 바로 거기에서 시청자와 오디션 프로그램이 충돌하는 것이다. 시청자가 바라는 오디션에서의 공정함이란 그런 것들을 초월하는 것인데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니. 자신을 도태시킨 현실의 경쟁과 마찬가지로 너무 불공정하고 불공평해 보인다.

해외의 경우는 모르겠고 우리나라에서 항상 오디션프로그램과 관련해서 공정성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 바로 그래서다. 그것이야 말로 오디션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일 테니까. 오디션에 대한 판타지 -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경쟁에 대한 판타지를 투사하려 하는 결과가 어쩔 수 없이 몇몇 심사위원들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어질 수 없는 오디션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사회에서는 심사위원에 대해서조차 TV에 출연하는 이상 위에서 내려다보려는 성격이 강하다 보니.

어쨌거나 핵심은 그것이다. 판타지. 그것은 모든 대중문화 컨텐츠가 만들어지는 동기다. 소비되는 이유다. 어떤 판타지인가? 대중들이 오디션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것. 공정한 경쟁. 공평한 기회. 소외된 이들도 마침내 기회를 얻고 승리를 쟁취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 그런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다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오디션만의 짜릿함일 것이다. 오디션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경쟁은 공정한가? 오디션이라고 하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판타지처럼 오디션이란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의 자리이며 경쟁의 무대인가? 판타지는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디션에서 우승했다고 그에게 바로 성공의 기회는 보장되는가? <슈퍼스타K>에서 우승한 서인국과 허각의 지금이 그러하듯.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그럼에도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오디션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것일 게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마 한동안 오디션 붐은 쉽게 꺼지지 않으리라 예상해 보는 이유다. 그렇게 현실의 가혹한 경쟁속에 사람들은 잠시 도망칠 자리를 찾고 있다. 잠시 쉬며 위로받을 수 있는 그곳을. 설사 그것이 허구이고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어째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리 인기이고 화제가 되는가? 그것을 바라니까. 현실이 그것을 바라도록 만드니까. 그렇게 개인들이 떠밀리고 있으니까. 어쩌면 우울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꿈을 꾸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히 3월 31일 방영한 MBC의 <100분토론> 에서 김태원은 역시 토론프로그램에는 맞지 않는 게스트였다. 박칼린은 한국어에 있어 어휘구사에 문제를 드러냈고, 김태원은 마치 콘서트에서 자기 음악을 연주하듯 자기 세계 안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급급했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신해철과 탁현민 교수 정도가 어느 정도 토론이 되고 있을 뿐. 뜬구름잡는 듯한 이야기들도 적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남는 것이라면,

“미리 걱정한다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과정일 뿐이다. 오는 대로 맞아들이면 된다.”

결국은 신해철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일 것이다.

“운영만 잘하면 그렇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핵심일 것이다. 결국은 대세라는 것은 필연을 의미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어떤 계기로 그리 된 것이다. 그것을 억지로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의미인가? 어떤 문제가 있는가? 어떻게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현재는 그 과정의 한가운데인 것이다.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면 그다지 좋지는 않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것에는 그럴만한 필연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왜 오디션인가? 오디션프로그램인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필자 나름의 이해이고 결론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렇다. 좋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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