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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의 드라마톡] 시그널 14회 "현재란 거짓과 기만의 누적, 묻힌 진실을 쫓다"

선량하고 성실한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공범들을 위해

▲ 시그널 ⓒtvN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시그널.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하면 그때부터 사슴은 말이 된다. 원래 묵이라 불리던 생선을 임금이 은어라 하니 은어가 되었다가 다시 묵이라 하니 도루묵이라 부르게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말하곤 한다.

"어린 놈이 버릇없이!"

그러면 그 순간부터 내용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얼마나 논거가 타당하고 논리가 정교한지. 그 내용이 얼마나 보편적 가치에 비추어 옳고 가치가 있는지. 너는 버릇없는 놈이다. 지금 네가 하는 말과 행동은 버릇없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바로 권력이라는 것이다.

잘못하는 것은 항상 힘없는 누군가다. 죄를 짓는 것도 벌을 받는 것도 가진 것 없는 비루한 누군가일 것이다. 힘있는 자들은 결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죄를 짓지도 벌을 받지도 않는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과 죄마저 결국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고 만다. 그럴 힘이 있다. 그럴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곧 그 사회의 규준이 된다. 법이 되고 정의가 된다.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모두는 살아간다. 인주시의 경제를 지배하는 인주시멘트처럼. 그렇게 만들고야 만다.

그렇게 거짓과 진실은 쌓이고 모여 현재를 만들게 된다. 모두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러나 어차피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된다. 문제없이 살아가는 현재야 말로 현실의 가장 강력한 증거다. 그것이 선이다. 그것이 정의다. 그것이 진실이다. 죄를 지었어도 여전히 당당하고, 죄를 짓지 않았어도 죄인이 되어 처벌받아야만 한다. 방관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현재에 대한 긍정이야 말로 모두에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한 사람만 희생시키면 모두가 전처럼 아무일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픽션이기는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피해자가 가정도 이루고 자신의 행복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박해영(이제훈 분)의 형 박선우(찬희 분)를 범인으로 모는 증언을 했던 피해자 강혜승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녀도 살아야 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을 테니까. 지금도 박선우에게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차마 그를 위해 증언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남편과 딸까지 있는데 자신의 일상을 부수면서까지 세상과 맞서 정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설사 자기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모두가 잘못이라 하면 잘못이 된다. 죄인이라 하면 죄인이 된다. 그것을 감당해야만 한다. 

분명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었다. 피해자와 범인들 자신은 물론 경찰과 그들의 부모, 심지어 지역사회의 거의 전부가. 아이들 돈이나 빼앗는 양아치조차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침묵했다. 굳이 자신이 나서서 말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오히려 자신에게 모든 불이익이 돌아오게 될 테니까. 인주시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인주시멘트다. 인주시의 많은 이들이 인주시멘트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고, 또 더 많은 이들이 인주시멘트에 고용되어 일하는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품을 팔며 살아가고 있다. 그 단단한 생존의 구조로부터 자칫 외면당할 수 있다. 구조안에 편입되지 못한다는 것은 소외이고 곧 죽음이다. 누구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평범한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다.

경찰마저 당장 자신의 눈앞에 놓여진 이익을 외면하지 못한다. 고단하고 힘든 현실은 경찰이라는 사명과 정의감마저 잠시 잊도록 만든다. 모두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 무고한 한 학생이 범인이 되어 처벌받고 끝내는 죽임까지 당한다. 그 죽음마저 철저히 잊혀진다. 세상의 정의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게 지켜진다. 그것을 정의라 믿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간다. 과거와 소통하며 그 진실을 밝혀낸다. 어쩌면 사건보다 더 추악하고 지독한 인간이라는 본질이었을 것이다. 특정한 몇몇 개인만을 탓하기에는 처음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누구이든 그것을 은폐한 구조 자체에 대한 환멸을 더한다. 오히려 진짜 범인은 아버지와 삼촌을 배경으로 왕처럼 행세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던 소년은 외면속에 죽음마저 감춰지고 말았다.

마침내 차수현(김혜수 분)이 박해영이 가지고 있고 과거 이재한(조진웅 분)이 가지고 있던 무전기의 비밀을 알게 된다. 과거와 소통한다. 15년 전 과거의 이재한과 무전으로 통신한다.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많은 사건들을 그렇게 해결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진실마저 바뀌고 있었다. 이제 유해까지 발견되어 더이상 세상에 없다고 여기고 있던 이재한과 함께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현재를 바꾸고자 한다. 이재한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칼에 찔린 몸으로 박해영의 무전을 받고 급히 인주로 달려가고 있었다. 15년 전 박선우는 사건의 진실을 밝힐 중요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죽음에서 의심스러운 다량의 신경안정제가 발견된다.

차라리 담담해진다. 화도 나지 않는다. 슬프지조차 않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란 이처럼 부조리하고 모순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보다 더 지독하고 이보다 더 끔찍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살아간다. 아무렇지 않게. 때로 웃으며, 때로 슬퍼하고 화내면서. 비극들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아무일없이 우리들의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까. 그것들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진실이라 믿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가.

차수현의 개입은 또하나 변수다. 박해영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 또한 순탄치 않다. 장기미제전담팀이 미흡하나마 하나씩 단서들을 찾아내고 있다. 핵심은 과거다. 과거를 바꾸어야 한다. 언제까지? 어디부터? 모두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무거워지는 이유다. 드라마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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