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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26 10:28

난폭한 로맨스 "내일로부터의 배반, 겨우 공놀이나 하는 주제에..."

스포츠 스타를 주인공으로 배우들 자신들의 이야기인 유명인의 현실을 풀어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그러니까 반말도 못해... 진짜 좋은 애야! 딱 보면 알지!"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에서 주인공 M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지만 그래도 태어난 아이의 발가락이 자신과 닮았다. 위로이며 안도다.

사람은 이유가 있어 결론을 내리기도 하지만 먼저 결론이 있고 이유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 때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해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나오게 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나는 틀리지 않았다. 더구나 그로 인해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경우 그래도 최소한 동기와 과정에 있어서 만큼은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 문제 없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을 때 사람이 더 집요해지고 가혹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다못해 거짓으로라도 자신이 옳다는 증거를 확인하고 싶다. 하다못해 발가락이 닮은 것이라도 찾아냄으로써 스스로 납득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당사자로 부족하면 그 주위까지 샅샅이 뒤져 다만 하나라도 찾아내려 그리 애를 쓰게 된다. 항상 고문하는 사람이 잘못 아는 경우는 없다. 단지 고문당하는 사람의 입에서 바른 대답이 나오지 않을 뿐이다.

안타깝다면 그러한 사실을 고재효(이희준 분) 역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색이 기자다. 언론인이라면 어느 사회에서든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그만한 분별은 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박무열(이동욱 분)을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질투에서 비롯된 근거없는 원망과 증오로 인해 지레 박무열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는 것을. 그래서 굳이 사건이 일어난 술집의 마담을 찾고 그를 통해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런 거추장스러운 사실확인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언론인 고재효의 양심이며 비극이다. 그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는 기자이며 또한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인이었던 것이다.

고민한다. 그러나 사실 결론은 내려져 있다. 박무열은 싫지만 그러나 야구는 싫지 않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사무치도록 좋고 그립다. 그리고 그는 기자다. 야구전문기자다.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한 가지다. 기자로서 진실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야구인으로서 야구를 위하는 것. 목동야구장 마운드에서 진동수(오만석 분)에게 녹음기를 건네는 고재효의 모습은 스산하도록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는 일에 대해 고재효는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다.

"내일이 온다는 걸 어떻게 그렇게 철석같이 믿을 수 있지?"
"재능을 보는 눈에는 질투만 있는 것이 아니야!"

내일이란 오늘을 살아감으로써 맞이하는 것이다. 원래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다 보니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오늘에 충실할수록 더욱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오늘에 충실할수록 더욱 내일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더 이상 내일을 기대할 수도 기다릴 수도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순간 그 내일이 사라져 버린다면.

"야구를 할 수 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오늘 이 순간에 멈출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도 내일은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내일이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육신의 죽음이기도 하고 영혼의 죽음이기도 하다. 오지 않는 내일로 인해 누군가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일부를 그 오늘에 두고 오기도 한다. 어느새 그 오늘은 과거가 되어 있다. 과거에 사로잡힌 망령이다.

아직도 그 순간을 꿈꾼다. 내일을 꿈꾸던 순간을. 내일을 기다리던 그 순간을. 그리고 그 내일이 사라지던 순간을. 박무열에게서 그 내일을 본다. 자신이 갖지 못한 내일이다.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내일이다. 고재효가 진심으로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진동수는 박무열을 위해 헌신적일 수 있다. 자기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내일이지만 박무열의 재능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대신해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타인을 통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하면서도 편리한 기능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자신이 고호가 될 수는 없지만 고호가 그려낼 명작들을 지켜낼 수는 있다. 박무열의 내일은 진동수가 갖지 못한 소중한 내일이다. 아마도 오늘이 멈춰버리는 그 순간의 충격이 다르기 때문일까?

진동수는 포기할 수 있었다. 체념할 수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진동수의 오늘은 자연스럽게 멈춰버린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오늘이 시작된다. 그에 비해 고재효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기 전에 어느 한 순간 타의에 의해 내일을 빼앗기고 말았다. 상실감은 영혼에 각인된다. 그래서 박무열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자신의 오늘을 부정하는 서윤이는 더 용서할 수 없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내일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내일을 믿고 맞이할 수 있다는 것. 야구선수로서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더 이상 경기에 뛸 수 없게 된 상황에서도 박무열은 야구를 하기 위해 야구를 할 수 있는 다른 나라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어디라도 좋다. 야구만 할 수 있다면 세계 어디라도 상관없다. 그의 내일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스스로 믿고 그것을 쟁취하려 하기에 그에게는 내일이 있다. 말하지만 내일이란 오늘을 살아감으로써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맞이해가는 것이다. 진동수 역시 그래서 야구선수로서의 내일은 포기했지만 다른 선수들의 내일을 위한 오늘을 선택한다. 매니저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무튼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드는 생각이 어쩌면 드라마 자체가 배우들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프로야구선수이고 배우이지만 근본적으로 그 본질은 같다. 대중을 상대로 대중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대신 그로부터 부와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 항상 대중들에 노출되어 그들로부터 소비되어진다. 유명인의 숙명이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온갖 욕망과 감정들이 그들을 중심으로 엉켜든다. 증오와 질투와 혐오의 감정까지도.

"박무열 안 나온 세 경기 재미없었어!"
"박무열 있으나 없으나... 미운 놈은 또 생길 테고!"
"나는 박무열보다 맞은 놈이 더 싫던데!"

싫어하는 재미로 굳이 경기를 챙겨보고, 굳이 아니어도 다른 미운 놈이 생겨날 테고, 이미 어떤 이유로든 미운 놈이 생겨나 있다. 그것은 사실 증오조차도 아니다. 단지 배설이다. 미워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미워하고 욕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것이 하필 야구선수다. 혹은 연예인이다. 안티도 팬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된다. 오히려 팬보다 더 적극적으로 더 성실하게 집요하게 행동에 나서는 것이 바로 안티들인 때문이다. 팬은 유명인을 통해 기쁨을 얻고, 안티는 유명인을 통해 배설의 쾌감을 얻는다. 이시영(유은재 역) 역시 상당히 안티들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았던 연예인이기에 그 순간 무척 공감하며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깟 야구 좀 한다고 50억씩이나 받는데 나눠쓰면 좋잖아요? 겨우 공놀이나 하는 주제에..."

연예인에 대해서도 실제 쓰이는 논리 가운데 하나다.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댓가를 누리고 있다. 일종의 자기모멸이다. 스포츠 선수든 연예인이든 스타에 대한 대중의 열광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아니 스타에 대해 열광하는 대중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한심하고 하찮은 자신에 대한 혐오이고 멸시다. 내 처지가 이런데. 서윤이의 분노도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서 좋은 직장을 얻어도 프로야구선수의 연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연예인의 수입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이 비참하게까지 여겨진다. 그래서 더욱 상대를 비하하게 된다. 유명인에 대한 비하는 그러한 자기모멸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고재효가 굳이 박무열을 궁지로 내몬 이유도 그것이다. 어째서 자기에게만 그런 불행이 닥쳤는가? 지금에 만족하지 못한다.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현재를 허깨비로 만든다. 내일을 부숴버리려 한다. 순수하게 그 재능을 인정하고 그 재능이 주는 기쁨을 인정했다면 그는 진동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순수하게 그들로부터 얻어지는 기쁨을 인정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누리는 댓가를 질투하여 증오하기보다 그조차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높은 연봉을 받을 때 팬으로서 자신도 무척 기쁘지 않은가? 내가 그로부터 얻는 기쁨이 비로소 인정받은 것 같다.

아무나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고, 운이 따라야 하고, 당연히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그 자리를 간절히 바라고 꿈꾸지만 그것이 허락되는 것은 단지 몇몇에 불과하다. 그 수많은 꿈들 가운데 배반당하지 않은 몇몇이다. 그 수많은 오늘 가운데 비로소 내일을 맞이한 아주 소수의 몇에 불과하다. 희소가치가 있다. 그래서 대중을 그들에 열광한다.

이미 그들은 대중의 영웅이다. 그들에 이입하여 자신을 투사하고 그로부터 만족과 기쁨을 얻는다.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대중 스스로 인정하고 확인해준다. 그래서 스타다. 그들이 누리는 모든 것은 그에 대한 댓가다. 그러한 댓가로서 그 정도의 인기와 부와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 과연 부당한 것인가? 대중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스타가 아닐 것이다. 스타란 자체가 그 증명이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유명인의 숙명일 것이다. 기쁨이란 욕망이다. 충동이고 본능이다. 그것이 충족됨으로써 사람은 기쁨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원망하고 증오하여 그를 괴롭히는 것 또한 인간이 기쁨을 얻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팬이 되어 기쁨을 얻고, 안티가 됨으로써 또한 그를 대상으로 기쁨을 얻는다. 개인이란 사라진다. 인격 역시 사라진다. 전혀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러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음도 안다. 그래서 더욱 유명인들에게는 높은 수입과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충분히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비호감인 스포츠스타를 통해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의 놓인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보여지는 욕망을 이야기한다. 순수한 꿈과 그를 향한 열정, 그리고 회한과 분노와 질투, 서윤이 역시 그렇게 좌절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꿈을 향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했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보았을 때 그 또한 분노가 되고 증오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다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가려는 사람과 멈춰 주위를 돌아보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할 것이다. 박무열은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고 서윤이는 주위를 보는 사람이다. 진동수는 앞으로 나가려 하고 고재효는 아직도 머뭇거리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유은재와 박무열의 러브라인이 본격화된다. 아직까지는 유은재의 일방적 짝사랑이다. 그러나 산에서 조난당한 유은재에게 손을 내밀 때 꿈으로부터 조난당한 박무열 역시 유은재가 내민 손을 잡은 것이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가운데 유은재만은 믿어주었다. 자신마저 포기한 상황에 유은재만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와 주었다. 사랑의 감정 까지는 아니지만 우정과 같은 우호적인 감정이 생겨났을 수 있다. 이미 두 사람의 거리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박무열의 옛사랑 강종희(제시카 분)이다.

굳이 지금 시점에 여전히 박무열이 잊지 못하고 있는 옛사랑 강종희가 등장하는 것부터가 유은재와 박무열의 감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투하고 좌절해야 한다. 고민하고 갈등해야 한다. 반드시 상대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로맨스에서 라이벌의 존재란 그런 역할이다. 유은재의 감정을 벼리고 박무열의 감정을 일깨운다. 비로소 둘 사이의 로맨스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 물론 김태한(강동호 분) 실장과 김동아(임주은 분)의 관계도 흥미롭다. 김동아는 어느새 김태한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조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김동아와 같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나 추리물을 보았으면 싶지만.

기대한 이상이다. 처음에는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코미디와 드라마가 따로 놀고 있었다. 드라마의 격정이 코미디의 웃음 속에 전혀 녹아들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등장인물들을 연민하면서도 마음껏 웃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하지만 그것을 웃음으로 바꾸는 낙천과 긍정이 있다. 더욱 재미있어진다. 특히 이시영의 몸을 던지는 연기는 이동욱의 섬세한 내면의 갈등과 어우러지며 드라마의 빛과 그림자의 양면을 이룬다. 입체를 이룬다.

초반 스타트만 좋았다면. 경쟁작 <해를 품은 달>에 기선을 빼앗긴 탓도 크다. 유사한 스타일의 작품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제하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주제의식도 좋고 디테일도 훌륭하다. 배우들의 연기와 매력 역시 만족스럽다. 재미있다. 이 한 마디면 족하다. 좋다.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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