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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24 07:55

나는 트로트가수다 "트로트라고 하는 장르에 대해 생각하다"

대중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어쩌면 먼 트로트를 돌아본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작년 2011년 MBC의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가수 하춘화가 출연해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트로트로 장르를 한정짓는가? 성인가요도 아닌 단지 가요일 뿐이다. 십분 동의했다. 지극히 옳다. 과연 트로트란 하나의 장르로서 특정될 수 있는 대상인가.

원래 트로트라는 말은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유행하던 폭스트로트라고 하는 춤곡에서 유래되었다. 트로트의 비칭인 뽕짝 역시 폭스트로트 특유의 홀수박자에 액센트가 들어가는 4/4박자 리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경쾌한 4박자 리듬에 전통적인 5음계의 멜로디가 더해진 것이 최초의 트로트, 트로트라는 명칭은 해방 이후 일본의 엔카와 분리되면서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은 4박자의 트로트 리듬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트로트는 새로운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분화해간다. 이를테면 <나는 트로트가수다>에서 최진희가 불렀던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역시 전통적인 트로트에서 벗어난 스윙리듬을 택하고 있었다. 최희준의 '하숙생'과 같이 미국의 스탠다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노래들도 있었고, 남진과 같이 미국의 로큰롤의 경쾌함을 전통가요의 멜로디로 녹여낸 이도 있었다.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은 셔플리듬의 재즈의 냄새가 진한 노래였다. '오동동타령'처럼 민요의 가락을 차용하기도 하고, '아리조나 카우보이'에서처럼 컨트리를 도입하기도 했다. 70년대 후반에는 춤곡인 고고의 리듬과 록의 사운드를 결합한 트로트고고가 유행했다. 80년대 이후로도 디스코나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가 트로트에 녹아들고 있었다. 과연 이제 와서 트로트라는 단지 하나의 장르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가.

물론 트로트라 정의할 수 있는 일련의 음악적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달리 '뽕'이라 일컫기도 하는 어떠한 느낌이다. 이를테면 트로트만의 특유의 넘기는 비브라토일 것이다. 알앤비의 애드립과는 사뭇 다른 삼키는 소리다. 하이라이트에서 밖으로 내지르는가, 아니면 그것을 안으로 삼키는가. 전통가요에서 흔히 말하는 구성지다거나 목청이 좋다는 것은 바로 이때의 비브라토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장르로서보다는 스타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탱고며 차차차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구현되고 있는데 그것을 단지 하나의 장르로 한정짓기는 무리다. 당장 <나는 트로트가수다>에서 문주란이 부른 '나야 나'만 하더라도 트로트라는 장르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가요다.

그저 전통적인 대중의 감수성을 담아낸 단지 '가요'일 뿐이다. 그래서 트로트 가수 가운데서는 굳이 트로트라는 장르를 이야기하기보다 '가요'를 한다고 보편의 단어로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포크며 알앤비며 록이며 모두 장르지만 그로부터 벗어난 대중의 보편적 코드가 바로 한국형 스탠다드, 가요인 것이다. 그리고 이 가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트로트다. 정확히는 트로트를 정의하는 '뽕'일 것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히트곡에는 이 '뽕'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뽕'은 이른바 '가요'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한국의 스탠다드다.

그러면 어째서 트로트를 굳이 '가요'라고 하는 보편의 개념으로 부르는가? 그것은 노래방이나 사람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 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불리고 가장 많은 호응을 받는 것이 바로 이 트로트라 불리우는 '가요'들이다. 출발이 춤곡이었으니 리듬이 경쾌하고, 그러면서도 가사는 직설적이고 구슬프다. 아마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 가운데 마음껏 오버해 불러도 되는 유일한 장르가 트로트일 것이다. 다른 장르에서였다면 김연자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무대는 지나치게 감정이 오버된 촌스러운 무대였겠지만 트로트에서는 가장 드라마틱하게 노래를 표현해낸 훌륭한 무대일 수 있다. 태진아의 '뜨거운 안녕'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마저 노래를 표현하는 한 훌륭한 수단이 된다.

트로트의 기교란 바로 그를 위해 존재한다. 굴리고 꺾고 떠는 모든 기교가 감정을 극대화하여 전달하는 한 가지에 최적화되어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이야기처럼, 듣는 청중 자신의 이야기처럼 각종 기교를 통해 감정을 증복하여 전한다. 물론 그냥 막 감정을 내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삼키는 소리가 존재한다. 트로트가 갖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진한 감성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마치 동요와도 같은 삶의 모든 감정을 담아낸 순수한 소리다.

그래서 때로 트로트의 가사나 멜로디는 유치하다는 말도 듣는다. 누구나 쉽게 듣고 따라부를 수 있게 단순하다. 대신 그 단순함에 감정을 싣는다.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한껏 자신의 감정에 몰입해 듣고 따라부르다 보면 한 순간 가슴이 후련해지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한국 대중의 소리이며 솔직한 원초적 감성이다. 한국대중가요를 정의하는 '뽕'이 트로트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사람이라면 대부분 이 '뽕'을 좋아한다. 그래서 '뽕끼'다.

여기에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내공부터가 보통이 아니다. 과거 가수들이 주로 서던 밤무대는 전통적인 트로트와 더불어 해외의 세련된 팝이 함께 연주되고 있었다. 일단 트로트 가수로 분류되고는 있지만 그래서 당시 밤무대에 섰던 가수들 상당수는 트로트만이 아닌 팝에도 매우 능숙하다. 한국의 트로트가 이토록 세련되게 분화되고 진화되어 온 이유였다. 가수 스스로 체화한 음악의 폭이 매우 넓다. 그것이 트로트라는 한 장르에 녹아든다. 같은 트로트라는 장르를 부르지만 그럼에도 7명의 가수들이 각기 서로 다른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 이유다. 트로트가 갖는 매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김연자가 있는 반면, 스탠다드한 가창력을 여지없이 뽐낸 설운도도 있는 것이다. 문주란은 모던한 스탠다드 팝의 감수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찌되었든간에 이미 '트로트'란 그러한 대중가요의 한 부분을 일컫는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원래의 폭스트로트 리듬과도 전혀 상관없다. 어떠한 리듬과 멜로디를 사용하든 대중이 바라는 그 구성지고 찰진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는 소리가 바로 트로트다. 그래서 트로트에서 유래한 뽕기는 한국대중음악을 정의하는 한 단어가 되고 있었다. '뽕끼'의 '뽕'은 한국 대중의 감수성 그 자체인 셈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제목도 <나는 트로트가수다>다.

<나는 가수다>로 인한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서도 공중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실력파 가수들의 무대를 볼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이제는 명절이면 <나는 트로트가수다>라고 하는 번외편이 있어 역시 새로운 감흥을 선사한다. 문주란이라고 하는 가수를 전혀 알지 못하던 세대들에게까지 들려줄 수 있었다. 필자가 다 뿌듯해졌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존의 트로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과거의 버라이어티 쇼무대를 연상케 하는 다양한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트로트란 춤곡이며 트로트가 대중과 처음 만난 곳은 유랑극단의 쇼무대였다. 바로 '가요'의 원점이었다. 막내 박현빈과 가요계의 원로인 문주란과 최진희가 함께 한다. 정말 멋지다.

설연휴 유일하게 챙겨본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후회없이 만족했다. 편곡도 무대도 세련되었고, 그러면서도 트로트가 갖는 깊은 맛을 잊지 않았다. 내공이 두드러졌다. 천의무봉. 어떤 노래도 마치 자기 노래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해 부른다. 그야말로 최고의 설선물이었다.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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