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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2.11 06:12

[김윤석의 드라마톡] 리멤버 아들의 전쟁 17회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남규만이 지다"

검사 채진경과 인간을 선하게 정의롭게 만드는 동기

▲ 리멤버 아들의 전쟁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리멤버 아들의 전쟁. 1950년대 당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던 어느 재판의 판결문을 응용해 보았다.

"법은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만을 지켜준다."

어쩔 수 없다. 법이란 도구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법을 믿지도 법에 기대지도 않는데 법이 먼저 찾아가서 사정까지 헤아려가며 지켜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마냥 무섭다고 숨고, 남들이 알까봐 움츠리고, 수고롭고 번거롭다며 지레 포기하고, 그러고는 어차피 안되는 일이었다며 스스로 납득해 버린다면, 그런 상태에서 법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스스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용기였다. 의지였다. 바로 인간의 존엄이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바로 양심에 있다. 양심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판단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고귀한 의지다. 무엇으로부터도 훼손되거나 강제당하지 않으며 오롯이 주인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진다. 설사 그로 인해 어떤 고통과 피해가 돌아오더라도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솔직해지고 당당해지려 한다. 바로 남규만(남궁민 분)이 어설프게 실수한 부분이었다. 오히려 남규만으로 인해 소극적이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증언에 나서고 만다.

하기는 스크린이나 모니터 너머의 인간이란 원래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써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창조되어 관객의 목적을 위해 해석된다. 모든 것을 상호가 아닌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 굳이 작가가 작품속 캐릭터와 소통하며 작품을 만들지도 않고, 관객이 작품속 캐릭터와 교감하며 작품을 이해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일정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조건과 자극에 약속된 반응을 하도록 정의된 도구에 불과했다. 자신을 투사하는 대상이었고, 자신의 의도를 강제하는 객체였다. 남일호에게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지는 의미였다.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거나 교감해 본 적이 없었다. 동등한 인격이란 없었다. 대등한 존재란 없었다. 당장 아버지 남일호(한진희 분)와의 관계부터 일방적이기만 했다. 인간 남규만이란 없이 오로지 아버지의 아들이자 기업을 물려받을 후계자로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의지가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일찍부터 그것을 학습하며 그렇게 자신의 주위를 정의해 왔다. 모든 인간을 도구로서만 대하라. 비난 고용인들에 대해서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자신 역시 이미 자신을 위한 도구였다. 그런데 그런 남규만의 세계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하고 판단을 하는 개인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토록 제멋대로였으면서도 정작 아직까지 한 번도 안수범(이시언 분)을 진심으로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것도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서 돈을 받는 이상 안수범은 결코 자신을 배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두는 인간이었다. 아닌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전직부장검사 홍무석(엄효섭 분)에게 존엄이란 결국 현실에 작용하는 힘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다른 사람의 것을 빌리면 된다. 자신의 뒤에 있는 누군가의 부와 권력이 곧 자신의 존재와 가치가 된다. 누군가는 돈을 위해, 누군가는 권력을 위해, 누군가는 사회적 신분을 위해, 혹은 당장의 고통이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그럼에도 끝끝내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자신의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 형사 곽한수(김영웅 분)가 홍무석의 협박에도 오히려 전에없이 의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보다 더 소중하고 더 절실한 무엇을 곽한수는 지켜야 했다.

그것이 여전히 불안하게만 보였던 재판의 결과를 갈랐다. 직접 남규만이 찾아가서 협박까지 했었다. 홍무석이 자신있게 피고측 증인으로 불러 법정에 세우고 있었다. 남규만의 앞에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증인을 보았었다. 이인아(박민영 분)가 찾아갔을 때도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다시 상황을 비틀기에는 남은 분량이 얼마 없었다. 역시나 기대대로 증인은 남규만의 협박과 유혹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로부터 모욕받고 능멸달한 자신의 존엄과 가장 가까운 친구를 연민하며 돕고 싶어하는 자신의 양심이었다. 법은 그들의 편에 있었다. 아무리 부패한 법관도 명백한 법적 사실마저 부정하지는 못한다. 무색무취하다는 것이 그런 점에서 강점이 된다.

인간을 선하게 정의롭게 만드는 것은 비단 인간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만이 아니다. 인간 자신의 이기와 욕망이 인간을 선하게 정의롭게도 만든다. 채진경(오나라 분)을 의심했던 것을 반성한다. 어쩌면 이마저 작가가 의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더 높은 곳을 바라고 당시 부장검사이던 홍무석과 손잡고 남일호의 지시를 따랐었다. 하지만 홍무석이 내사를 받던 도중 도망치듯 부장검사 자리를 그만두고 일호그룹으로 간 순간 더이상 검찰 내에서 그의 이용가치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사로서 채진경의 욕망은 오로지 검찰 내부에 있었다. 검사로서 누구보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에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일호그룹이라는 굴지의 대기업마저 훌륭한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 검사라는 신분이 채진경 자신의 이기와 욕망을 사회적 선으로 정의로 바꾼다. 더 크고 순수한 이기와 욕망이 그보다 작고 사소한 유혹을 이긴다.

그러나 역시 순조롭게 풀려가는가 싶더니만 여기서 덜컥 서진우(유승호 분)의 병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만다. 어쩐지 사건현장에서 박동호(박성웅 분)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들이 너무나 쉽게 쏟아져 나온다 싶었다. 당시 석주일(이원종 분)이 차안에서 칼에 찔리며 반항한 흔적이 있더라는 국과수 소견까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증거들을 흘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일호의 지시로 박동호를 살인미수범으로 만들려던 것치고 현장에 대한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하기는 아직 석주일도 죽지 않았는데 만에 하나 깨어나서 다른 말이라도 했다가는 모든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의도된 허술함이거나, 아니면 진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거나. 어쨌거나 서진우가 그동안 확보한 증거들로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가려는 순간 서진우의 병이 상황을 반전시키고 만다. 재판의 결과를 떠나 서진우에게는 이미 비극이 예고되어 있다. 승리의 통쾌함마저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예고편은 보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다. 반전은 역시 가장 마음놓고 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찾아와야 맛인 것이다. 채진경을 제외하고 거의 기대한대로 진행되고 있다. 서진우의 병은 깊어지고, 그에 비례해서 남일호와 남규만을 목표로 한 서진우들의 포위망은 단단해져만 간다. 마지막 일격만 남겨두고 있다. 딱 적당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진우의 병의 진행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게 남는다. 바로 앞까지 왔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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