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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2.07 09:10

[김윤석의 드라마톡] 시그널 6회 "말 한 마디의 무게와 인간의 가치, 부조리를 말하다"

차마 들려주지 못한 대답 "그래도 20년이나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 시그널 ⓒtvN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시그널. 갓 한 달 된 새끼고양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대로 조금만 힘을 주면 이 녀석은 죽겠지? 이 가는 뼈는 부러지고, 이 보드라운 살은 짓이겨질 것이다. 두려웠다. 자칫 나의 실수로 인해 하나의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약자란 그런 것이다. 호랑이야 맘먹고 힘주어 때려도 오히려 내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개미는 단지 엄지손가락 하나로도 충분하다. 아니 물에 빠진 개미를 살리겠다고 건지는데 조금만 손에 힘이 들어가면 짓눌려 죽어버리고 만다. 고작 말 한 마디다. 그 말 한 마디에 새삼 없던 증거까지 발견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로 죄인이 되어 딸까지 잃고 무려 2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만다. 그래서 20년 뒤의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화조차 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또 누리고 있기에 그만큼 더 많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기에 그것을 정상참작해서 더 적은 책임만을 지우려 한다.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굴지의 대기업 경영자라면 그만큼 한국 경제에 대한 더 큰 책임을 가져야만 한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사라면 그만큼 한국 사회에 대한 더 큰 책임을 지워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던가. 심지어 국민들 자신조차 그동안 한국경제와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기에 처벌을 경감하는 것이 옳다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한 사회적 지위와 힘을 가진 사람의 말은 증언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의 말은 단지 개소리일 뿐이다. 너무나 사실이라 아픔조차 느끼지 않는다.

지금도 기억한다. 정확히 언제인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날 누군가 필자에게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말했을 때 필자는 오히려 그 사람을 비난하고 있었다. 아무리 농담을 해도 말이 되는 농담을 해야 한다. 어떻게 멀쩡한 다리가 한순간에 내려앉을 수 있는가. 사실이었다. 고작 TV뉴스로 사고를 지켜보고 있었던 자신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나중에야 들었었다. 필자의 동생 역시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몇 십 분 차이로 그 다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비현실이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아마도 과거의 유명한 사건을 통해 현재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보다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당시 법원에서도 그래서 당시 시공사와 감리회사, 담당공무원 등 관계자들에 대해 공동정범의 이론마저 크게 훼손해가며 이례적인 전원유죄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그것은 단지 관행으로 누려왔던 일상적인 약간의 이익에 불과했을 것이다. 늘 해오던 것처럼 얼마간의 이익을 남겨 서로 나누어 먹었던 것이 하필 그같은 크나큰 사고로까지 이어지고 말았었다. 하지만 법리적인 반론조차 결국 그들의 행위가 이처럼 끔찍한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사소한 거짓말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참혹한 비극이었다.

절박한 동기까지 더해진다. 바뀐 과거로 인해 2015년 오경태(정석용 분)는 살인자가 되었고 박해영(이제훈 분)의 상관 차수현은 오경태가 만든 함정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았다. 되돌려야 한다. 차라리 미제로 남겨두었더라면 없었을 희생을 최대한 원래대로 되돌려야만 한다.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오경태의 딸 오은지(박시은 분)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더이상 죽지 않아도 되었을 차수현도, 그녀를 살해한 오경태도 더 큰 비극과 죄악으로부터 구해야만 한다. 

다행히 20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어 수사공조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었다. 과거의 이재한(조진웅 분)은 몸으로 뛰어 아직 남아있는 사실들을 찾아내고, 미래의 박해영은 미래이기에 알 수 있는 진실들을 과거로 전하고 있었다. 마침내 바뀌기 전에도 무려 20년 동안이나 미제로 남아 있었던 1995년의 절도사건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경찰의 잘못된 수사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고 또한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오경태와 오지은 부녀의 말에 그 단서가 있었다. 아마추어이고 면식범이다. 탐정과 범죄자는 원래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과연 어떻게 과거의 진실을 밝힐 것인가. 마침내 밝혀진 과거의 진실이 어디까지 현재를 바꿀 것인가.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드라마의 끝에 박해영으로부터 20년 전 이재한에게 전해졌다. 차수현을 살려야 한다. 오경태가 더 큰 비극을 겪게 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이 된 진범을 잡아야 한다. 더불어 한영대교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진 책임도 물어야 한다. 몇몇 특정한 개인이 아닌 이 사회의 구조이고, 이 사회가 지나온 역사였다. 현실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개입으로 역사가 바뀌고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마저 죽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항상 얼굴을 마주하던 자신의 상관 차수현이었다. 무게를 더한다. 절박하고 비장하다. 다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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