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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18 12:39

빛과 그림자 "여걸 송미진의 맹수를 다루는 방법, 거스르지 않고 길들이다."

중정 김부장과 장철환의 대결, 그 결과에 강기태의 앞으로가 달렸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야만이란 욕망이다. 도덕이나 규범으로써 다스려지지 않는 욕망이다. 노상택(안길강 분)의 사주를 받고서도 노상택을 배신한 채 송미진(이휘향 분)이 던져주는 이익만을 챙기고 마는 조태수(김뢰하 분)처럼. 노상택도 원래는 같은 부류였을 터다. 야만을 지배하는 것은 공포와 탐욕이다.

송미진은 그것을 안다. 그리고 야만의 세계에는 야만의 세계에 어울리는 룰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한 번 약세를 보이게 되면 그는 먹잇감이 될 뿐이다. 먹잇감이 되어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상대에게 뜯어먹히고 말 것이다. 또한 그들 세계의 룰을 무시하려 한다면 그들과 공존은 불가능하다. 끝임없는 전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송미진이 굳이 중정 김부장(김병기 분)의 도움을 빌지 않고 조태수가 바라는 바를 순순히 들어준 이유였다. 어찌되었거나 조태수는 명동과 무교동을 장악한 주먹이다. 그것은 낮의 거리와는 다른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오랜 룰이었다. 오로지 강한 자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지배한다. 오로지 강한 자만이 모든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래서 조태수는 강자가 되었다. 강자가 되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지배하려 한다. 그런데 그것을 거스르려 한다는 것은 밤을 지배하는 규칙 자체를 무시하고 도전하려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자칫 밤 전체와 싸워야 하는 수도 있다.

물론 중앙정보부의 힘이면 어지간한 조직폭력배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눌러버릴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폭력에 의지해 살아가는 야만의 세계의 존재인 만큼 그들 또한 폭력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앙정보부의 힘은 낮의 세계에 통하는 힘이다. 밤의 세계에는 밤의 세계에 어울리는 힘이 있다. 송미진이 설사 조태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밤의 법에 따라 그를 이긴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그러나 밤의 법을 무시한다면 결국 그들의 세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송미진이 하는 일의 성격상 그들과 완전히 등을 돌리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만 그렇더라도 얕잡혀서는 안된다. 그들이 하자는대로 일방적으로 휘둘려서는 안된다. 하나를 내놓으면 둘을 요구한다. 둘을 내놓으면 셋을 넷을 요구한다. 탐욕에는 끝이 없다. 선을 그어야 한다. 자신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히려 조태수가 요구한 이상으로 과감하게 내놓는 이권은 그녀가 가진 힘이다. 어차피 업자의 손을 통해야 하는 술과 물품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조태수에게 내놓되 선언하는 것이다. 만일 여기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지금 자신의 앞에 놓인 이익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다. 대신 송미진의 보복은 그녀의 룰이 통하는 노상택을 향한다. 그것은 또한 조태수가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과연 여걸이라 할 것이다. 그저 뒷배가 좋아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아닌 것이다.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안다. 어떻게 싸우고 어디에서 싸워야 하는가도 안다. 조태수와 같은 무리를 다루는 법도 안다. 조태수는 사나운 야생짐승이다. 당장 사납게 으르렁거리다가도 먹을 것이 있다면 그리로 정신을 판다. 물론 먹을 것을 다 먹고 배가 고파지면 사람도 잡아먹는다. 노상택이 그렇게 물렸다. 그렇게 유도했다. 제대로 강기태(안재욱 분)의 뒷배가 되어 준달까?

아무튼 중정 김부장의 정체는 그래서 오리무중이다. 연말 10대가수왕의 계보를 이야기하는데 1970년 펄시스터즈 이후 3년 내리 남진이 가수왕의 자리에 올랐다 말하고 있다. 하기는 이정혜(남상미 분)과 양태성(김희원 분) 역시 끝물에 베트남을 갔다오고 있었다. 얼추 예상하기로 남진이 3년 내리 가수왕이 되고 난 이듬해인 1974년이 아닐까? 그런데 1974년에 중앙정보부장이라면 신씨성을 쓰는 신직수였다. 하기는 장철환부터가 가상의 인물이다. 아마 장철환의 모델이 되었을 사람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는데 그와는 세부적으로 많이 다르다. 결국 허구였을까?

다만 그 모델이 김형욱인가 김재규인가에 따라 이후의 전개가 전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김형욱이라면 강기태의 수난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김재규라면 최소한 유신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든든한 뒷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더불어 역사에 대한 정당성도 손에 넣을 수 있다. 장철환이 굳이 자존심을 굽혀 가며 차수혁(이필모 분)을 불러 김부장을 상대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부분에서 혹시나 김형욱이 아닐까 하는 짐작도 하게 된다. 차수혁과 강기태가 장철환과 송미진을 사이에 두고 요정에서 마주치는 장면에서 역시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하기는 이듬해 일어날 대마초파동과 곧 이어질 가요정화운동을 위해서라도 장철환과 같은 이가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미 장철환은 예고하고 있었다. 불순하고 불온한 것들은 모두 쓸어버리고 그분의 심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만 남겨놓겠다고. 그를 위해 쇼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다만 역시 과연 1974년인가는 워낙 드라마에서 굳이 언제인가를 밝히려 하지 않으니 추측으로만 남을 뿐이다. 강기태의 봄날은 아직 멀기만 한 것일까? 드라마는 꽤 장편을 예정하고 있다. 험난한 앞길이 예고된다.

머리수에는 장사가 없다. 세상에 독불장군이란 없다. 폭력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강기태는 영웅이 아니다. 단지 주먹 좀 쓰는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 건달도 아닌데 굳이 싸움 잘해서 무엇할까? 다만 강기태가 조태수의 패거리에게 몰매를 맞는데 위험을 무릎쓰고 달려든 이정혜와 지켜만 보고 있던 유채영(손담비 분)의 모습은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 유채영은 자신을 우선해 지킬 수밖에 없지만 이정혜는 자신마저 내던질 수 있다. 그 한 걸음이 결국 두 사람의 앞날을 결정지을 것이다. 이런 건 또 너무 친절하다.

손진영(홍수봉 역)의 목소리가 드라마에 너무 잘 어울린다. <위대한 탄생> 때도 느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오랜 구성짐같은 것이 있다. 최신의 대중가요의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올드팝이나 트로트를 부를 때는 그 진가가 드러난다. 드라마 가운데 가장 현실과 밀착해 있는 부분이다. 외모와 어울리는 목소리가 드라마에 리얼리티를 살린다. 참 잘한다.

결국 정치싸움이다. 권력의 향배가 개인의 인생까지 좌우한다. 불행한 시대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근대의 시민사회였을 텐데.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개인의 삶까지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그것이 되지 않던 시대일 것이다. 정의로운 권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권력을 따라 눈을 돌린다. 고개를 돌린다. 몸이 따라 돌아간다. 그리 살아갈 수밖에 없다. 김부장인가? 장철환인가? 그것이 또한 강기태와 차수혁의 운명을 결정한다. 슬프게도.

비극과 낭만, 지나고 났더니 폭력조차도 추억이더라. 그러나 당시를 사는 사람에게 그것은 비극이고 절망이었을 터다. 그 경계를 절묘하게 밟는다. 권력이 두려워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이정혜와 현실에 치이며 자신을 잃어가는 유채영, 강기태는 고단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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