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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12 16:10

해를 품은 달 "과연 이훤과 허연우가 살았던 드라마속 시간은 언제일까?"

드라마속 단서를 통해 실제의 역사와 비교하여 유추해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나오는 가상의 조선임금 성조(안내상 분)와 그의 아들 이훤(김수현 분), 물론 허구다. 하지만 워낙에 자료가 풍부하고 상세한 조선이다 보니 몇 가지 드라마상의 단서만 가지고도 그들이 살다간 연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의외로 그 시기는 매우 좁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는 왕실 전용 무속관청인 성수청(星宿廳)이 중요한 한 단서일 것이다. 성수청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성종과 연산군, 중종에 걸쳐 대략 10여 차례 그 이름이 등장한다. 주로 성수청을 폐지하라는 사대부들의 상소와 관련해서인데, 그러나 성종 8년조의 기사에 보면 이미 조선이 건국할 때부터 성수청이 존재해 왔음을 성종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있다. 조종조, 즉 태조와 태종 때부터 있었던 것인데 자기가 없앨 수 없다.

성수청의 이름이 기록에서 사라진 것은 중종반정 이후 공신들의 힘이 왕권을 넘어서고 있을 무렵이었다. 중종 1년 성수청을 폐하라는 상소가 올라온 뒤 성수청의 이름은 사라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바로 중종반전이 일어난 계기였던 연산군조의 기사를 보면 연산군 자신이 직접 성수청 무녀들에 대한 잡역을 폐지할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성수청이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기사일 것이다.

성수청은 오로지 왕실만을 위해 봉사한다. 왕실만을 위해 복을 빌고, 재앙을 막으며, 온갖 무속적인 주술과 제의를 담당한다. 그에 비해 성리학이란 유학자를 위한 논리다. 무도하다 여겨지는 만큼 왕권강화에 관심이 많았던 연산군으로서 성수청을 중요하게 여겼을 법하다. 실제 연산군조의 다른 기록들을 보면 연산군 자신이 상당히 미신이나 주술 등에 관심이 많아서 그로 인해 신하들과 충돌하는 내용이 곧잘 나오고 있기도 하다. 신령한 힘을 빌어서라도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의 입지를 튼튼히 하고 싶다. 그리고 중종반정 이후 성수청은 바로 폐지되고 만다.

즉 성조와 그의 아들 이훤이 실제인물이라 가정했을 때 아무리 늦추더라도 그 즉위년을 성수청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상 성수청이 폐지되는 중종 1년 이후로는 늦출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하한은 중종 즉위년으로 정하고 상한은 언제일까? 그 답은 여주인공인 허연우 자신에게 있다. 허연우의 아버지 허영재(선우재덕 분)의 관직이 다름아닌 홍문관 대제학이다. 홍문관은 세조에 의해 폐지된 집현전을 대신해서 성종 9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역시 성종 9년 이전에는 홍문관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상한 역시 성종 9년 이후로 한정된다.

그런데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조금 엉뚱한 결론이 나온다. 성종 9년과 중종 1년 사이 조선에는 단 한 사람의 왕밖에 없었다. 왕이되 왕이 아니었던 이, 누구보다 왕처럼 살았으되 끝내 왕인 것을 부정당했던 왕이다. 누구였을까? 연산군이다. 하필 성수청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연산군조가 그 사이에 딱 걸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훤은 연산군이었던 것일까?

시대적 배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드라마상의 인물들은 누구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을까? 이 점이 필자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의성군의 죽음은 정적인 대윤 윤임을 제거하기 위해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손자로 성종의 3남인 계성군의 양자로 입적되어 있던 계림군을 역모로 몰았던 사건과 닮아 있다. 이 일로 윤임은 제거되고 윤원형은 외척으로써 조정의 모든 권력을 손에 틀어쥐게 된다. 하필 윤대형의 이름마저 윤원형과 닮아 있다. 대비가 외척과 손을 잡고 조정을 농단하려 드는 자체가 조선사상 몇 없었던 일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한 사람이 드라마로도 여러차례 만들어진 바 있는 문정왕후 윤씨다.

이를테면 명종에게는 순회세자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12살의 어린 나이로 일찍 요절했다. 성조 역시 그다지 오래 살지는 못한 모양이다. 아마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명종의 서형제이던 덕흥군의 차남으로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잇게 되는 선조의 경우 외척을 비롯 이제까지의 훈구파를 일소하고 사림을 대거 등용하는 일대 조선사의 혁명을 이루게 된다. 순회세자가 제대로 성장해 임금이 되었다면 이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이 시기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드라마의 모델이 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시기 성수청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 등 세부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아주 같다면 그것은 픽션이 아닐 것이다.

하긴 그렇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힌트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이훤의 아버지인 왕이 죽고 나서 받게 되는 묘호인 성조였다. '조'는 공이 있고 '종'은 덕이 있다. 원래 묘호 가운데 '조'는 왕조를 처음 연 창업군주에게나 바쳐지던 것이었다. 그러나 명의 성조 영락제와 조선의 세조가 각각 기존의 왕을 힘으로 몰아내고 새로운 정통을 세우고 있었고, 조선의 선조와 인조의 경우는 각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함으로써 '조'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영조와 정조는 고종이 익종 - 즉 효명세자의 양자로써 왕위에 오르고 황제로 즉위했기에 추존되어 '조'라 칭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성조는 어떤 공이 있어 '조'가 된 것일까?

다시 말해 성조야 말로 드라마상의 가상의 왕조의 개창자라 할 것이다. 성조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훤에게로 이어진다. 따로 병자호란과 같은 큰 변란을 맞아 그것을 극복한 예가 없다면 성조의 '조'는 조선사상 기록에도 없는 독립된 왕조를 연 개창자로써 주어진 묘호라 할 수 있다. 어디에도 없는 오로지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왕조. 이보다 더 확실한 힌트가 어디 있을까? 나름의 작가의 친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하나의 재미였을 것이다.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의 조선을 비교해 본다. 과연 가상의 조선은 실제의 조선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을까? 실제의 조선이라면 언제쯤에 해당할까? 재미를 더욱 높여준다. 아, 이런 시대였구나. 훈구파가 왕권을 넘보고 그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이 왕권과 결탁하던 무렵, 그 치열하던 역사의 한가운데 이훤과 허연우라고 하는 어린 연인들이 있다. 애닲은 운명적 사랑이 있다. 그것을 본다.

언제였을까? 그리고 누구였을까? 무의미해 보이지만 실제의 역사를 통해 각자의 놓인 처지와 역할을 떠올려 보게 된다. 굳이 설명이 따르지 않더라도 드라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순수가 비극이 되던 시대, 격동의 한 가운데 그들이 있다. 애처롭지만 행복한 결말을 기약하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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