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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10 14:23

브레인 "동승만의 맹목과 이강훈이 분노하는 이유..."

동승만이 이강훈이 될 수 없는 가엾은 이유에 대해서...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사실 의료과실을 제대로 증명하기가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김상철(정진영 분)이 생각하고 있던 수술과 실제 이강훈(신하균 분)이 집도한 수술의 내용이 사뭇 달랐다. 그렇다면 김상철이 옳은 것인가? 이강훈이 옳은 것인가? 누군가는 잘못한 것일까? 누군가는 틀린 것일까?

결국은 둘 다 김상철과 이강훈이라고 하는 두 사람의 의사가 의사로서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느쪽이 더 적합하고 성공적인 판단이었는가는 수술의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판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던 당시에는 동기라는 측면에서 둘 중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가 힘들다.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 종사자에 있어 보다 직업적인 엄밀함이 요구되는 것일 게다. 동기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전혀 아무런 동기상의 문제가 없더라도 그가 가진 전문가로서의 지식과 기술에 한계가 드러났을 때 그 결과는 무척 치명적일 수 있다. 당장 의사로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아무리 옳은 판단을 했어도 의사로서 자신의 역량이 부족했다면 그 판단이 사람을 죽인다. 만일 항공기 조종사라면 그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검찰은 잘못된 사람을 용의자로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게 될 것이고, 판사는 무고한 이에게 형벌을 내리는 대신 진정 죄가 있는 자를 풀어주게 될 지 모른다. 동기만 좋으면 다 좋은 것인가?

비단 전문직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직업이란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해주고 그에 따른 댓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 일이 부실하다. 그 일이 충분치 못하여 필요한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한다. 심지어 손해까지 끼치게 된다. 그런데도 단지 동기가 선량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까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최선이 아닌 최고만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일 것이다. 직업으로 만나는 대상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동기의 선량함이 아닐 것이다. 인간적인 선량함이나 성실함을 바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게 도움이 되는 것. 그가 가진 지식과 기술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의사라면 사람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하고, 경찰이라면 범인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 판사라면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인 선량함이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로 인해 입게 될 피해를 생각한다면 가장 선한 것은 가장 직업에 충실한 지식과 기술 - 역량을 갖추는 것일 게다. 가장 유능한 자가 가장 선량하다.

결코 착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강훈이 어느새 사람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기회주의적이고, 더구나 무례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강훈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드라마 안에서도 이강훈을 추앙하고 존경하는 사람마저 있다. 의사로서 뛰어나니까. 의사로서 적합한 판단을 내리고 타당한 결과를 내놓으니까. 그에 비하면 그의 개인적인 인성따위 전혀 아무 상관이 없는지 모른다.

최선이 아니다. 최고다. 이강훈은 항상 자기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판단만을 내리려 한다. 그것이 그의 최선이다. 그것은 그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집도한 환자가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치료에 있어 자신의 판단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설사 수술장면이 녹화된 동영상이 공개되더라도 그로부터 자신의 수술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는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우연이었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사고였다.

그러나 동승만(이승주 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강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다. 항상 주위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주위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미성숙한 그로서는 전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경지다.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믿는다. 그것이 최고라 여긴다. 전혀 의심없이 그 한 가지만을 보고 나아간다. 물론 그로 인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지게 될 것이다. 그만한 각오를 가지고 치료에 임한다. 이강훈이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며 책임을 물으려 하는 환자의 가족이나 학과장보다 자신을 위해 수술장면을 은폐하려 한 동승만에 분노하는 이유였다. 동승만이야 말로 자신을 의심하고 부정하려 했다.

동승만은 관계지향적 인간이다. 관계를 전제로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관계가 정의한다. 권위란 그런 점에서 절대적이다. 김상철은 모든 면에서 이강훈보다 위에 있다. 조교수인 이강훈에 비해 교수이고, 의사로서의 명성 또한 이강훈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동승만은 자신보다 높은 이강훈에게 절대 복종한다. 이강훈이 천하대학병원을 떠났을 때는 서준석(조동혁 분)을 찾아가 그에게 복종했다. 따라서 그가 보고자 하는 세계에 있어 보다 높은 권위의 김상철을 거스르고자 하는 이강훈은 매우 위태하고 불안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보다 높은 권위이기에 당장 따르기는 하지만 그 부분이 못내 의심스럽고 미덥지 못하다.

동승만이 이강훈을 존경하고 따르면서도 그를 믿지 못해 의심하고 마는 이유였다. 아니 대부분의 과잉충성을 보이는 아랫사람이란 그런 부류들일 것이다. 아무리 실력을 쌓고 지위가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러한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 가장 높은 위치에 이르게 되더라도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된다. 항상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그로부터 자신의 판단을 구하려 한다. 주위의 동의가 있을 때, 혹은 주위의 다수에 맞춰 결론지을 때 가장 미덥고 마음이 놓인다. 물론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지지 않는다. 이강훈의 수술장면을 지웠듯 자신이 수술한 내용도 얼마든지 기억에서 삭제할 수 있다. 나쁜 것은 그러한 판단을 내리게 한 누군가이지 자신이 아니다. 그러한 기록과 기억이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그 근거만 사라지고 나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참으로 가련한 인생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게 책임지기를 싫어한다. 스스로 판단과 행동에 책임지기를 그렇게 싫어한다. 그래서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책임을 떠넘기고 의지하려 한다. 나중에는 탓을 돌리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권위가 발생한다. 그로부터 권력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차라리 복종하고 비난한다. 차라리 굴종하여 그에 책임을 돌린다. 항상 누군가의 그림자에 숨어 자신을 가리고 그것을 편안하게 여긴다. 그야말로 나를 대신해 영광을 누리고 나를 대신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 흔히 그런 것을 두고 처세가 좋다고 말한다. 영리하게 살아간다 말한다. 아마 상대가 이강훈이라는 바보가 아니었다면 그의 그런 선택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참 바보같은 남자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온갖 이기와 독선과 아집을 내뱉으면서 그러나 결국 그것을 감추려 하지 않기에 그에 따른 모든 책임마저 자기 자신이 짊어진다. 조금의 틈만 보이면 그를 물어뜯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러나 그는 그러한 자신을 결코 감추지 않고 드러낸 채 정면으로 부딪혀 싸워나간다. 타협이란 없다. 굴종이란 없다. 적당히 끝내는 법도 없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 혼란스러워하는 가족들 앞에서 수술하면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는 의사로서의 판단을 말할 수 있는 올곧음이 바로 거기서 나온다. 같은 기회주의적인 모습이라도 항상 주위에 의지하려는 동승만과는 달리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고 의지하려는 올곧음이 이강훈이라는 남자의 본질일 것이다. 아무리 기회주의적인 속물의 모습을 보여도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속물이지만 가장 순수하고 올곧은 속물이다.

김상철의 이상이 마침내 실체를 드러냈다. 수막종이라는 뇌에 생긴 종양이었다. 그것이 그를 솔직하게 만들었다. 이강훈이 말한 것처럼 그가 오래도록 억눌러 온 솔직한 자신을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자제심없이 이기적이고 폭급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다. 이성이란 그러한 자신의 본능적 충동을 억누르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란 그러한 본능적 충동과의 충돌이며 갈등이다. 인간은 누구나 위선적이다. 오히려 그러한 두터운 위선의 갑옷이야 말로 김상철의 선에 대한 강박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지금의 김상철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꺼풀이 벗겨졌을 때 과거의 김상철의 모습이 드러난다. 한없이 나약하고 아이처럼 겁먹고 있는, 그야말로 아이처럼 천진하게 자기를 감출 줄 모르는 모습이.

역시 이강훈의 올곧음이 드러나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강훈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기도 한 김상철의 그러한 상황을 그저 좋게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상철의 불운이고 불행이지만 그것을 그저 기쁨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서준석의 상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질투하고 원망하던 서준석이지만 그러나 서준석에게서 발견한 이상을 그는 지나치지도 그렇다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도 않는다. 의사로서 붕대로 감은 서준석의 손이 어쩐지 의심스럽고 서준석의 말이나 행동이 평소와 다른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서준석에게 모욕이 되고 상처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물론 이강훈이 서준석을 진심으로 원망하고 증오했다면 그와 같은 절호의 기회를 결코 놓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준석을 찍어누르고 그 위에 올라서려 했다면 그는 지켜보기보다 서준석의 상처를 들추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이강훈의 서준석에 대한 적의는 제동이 걸린다. 이강훈이라는 인간이 갖는 미학이다. 그 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할 때 이강훈은 후자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욕심과 전혀 상관없는 단지 한 개인에 대한 증오이며 배설일 뿐이다. 그 거리가 절묘하다.

아무튼 참 많이 유치해졌다. 원래 이강훈은 이렇게 유치한 사람이었을까? 원래는 상당히 유쾌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알콜중독과 그리고 죽음, 어려서부터 혼자서 세상과 맞서 싸워 온 시간들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절박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간절한 소망이 그로 하여금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도록 각박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조교수가 되고 나니 그나마 간절하던 한 가지는 해결된 셈일까? 윤지혜(최정원 분)에 대한 태도도, 짐짓 동승만에게 기회를 주는 인자함도 세뱃돈을 받아 주머니가 푸짐해진 어린아이의 관대함을 닮았다. 그래봐야 이내 다시 절박한 상황이 돌아오니 원래의 이강훈으로 돌아오지만. 귀엽다. 오랜만의 - 아니 드라마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느껴보는 평안이고 여유일 것이다.

다시 판단을 되돌리게 된다. 장유진(김수현 분)과의 관계는 한결 진지해졌다. 장유진도 진지하고 이강훈도 진지하다. 그러나 윤지혜와의 관계는 장난스럽다. 사랑이란 유치한 것이다. 진심으로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면 사람은 유치해진다. 거리가 사라진다. 가식도 사라진다. 그에 비하면 장유진에 대한 이강훈의 진심은 정중한 만큼 거리가 느껴진다. 그렇게 장난스럽게 끝나는가? 진지함이 서로에 대한 진지한 감정으로 발전하는가? 조교수가 되고난 다음 보여진 이강훈의 유치함이 생각을 달리 하도록 만든다. 이강훈이 가장 유치해질 수 있는 것은 윤지혜 앞에서다.

과연 윤지혜일 것인가? 장유진일 것인가? 서준석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한 가지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서준석은 그 붕대를 풀게 되리라는 것일 게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의사로서 홀로 우뚝 서게 된다. 붕대를 푸는 순간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의사 서준석으로써 홀로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강훈의 옆에서 이강훈과 나란히 서게 된다. 조금 생뚱맞기는 하지만 그동안 소외되었던 서준석에 대한 훌륭한 선물일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김상철 앞에서 이강훈은 의사가 될 것이다. 철저히 의사가 되어 자기를 증명해 보일 것이다. 해피엔드일까?

이강훈과 김상철, 이강훈과 서준석, 이강훈과 동승만, 이강훈과 윤지혜, 모든 중심에는 이강훈이 있다. 사실 매우 기형적인 드라마다. 오로지 이강훈 뿐이다. 오로지 이강훈을 중심으로만 모든 관계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신하균의 힘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무책임은 아닐까? 하기는 미니시리즈란 이강훈을 담아내기도 부족한 분량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대미를 바라보는데 과연 이강훈 말고 무엇이 있을까. 그래도 만족스러운 것은 이강훈이 그리 매력적인 인물이었으니까.

어느새 풀어져 버린 분위기가 불길하다. 너무 여유롭다. 너무 드라마가 되어 있다. 원래 이런 드라마가 아니었다. 집요하도록 치열하고 답답하도록 격정적인 드라마였다. 헤실헤실 풀려 웃음짓는 이강훈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단단히 조이고 반전을 예감한다. 그 예감은 이제까지 없었던 가장 치열하고 가장 격정적인 반전이 될 것이다. 이강훈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서준석은? 김상철은? 윤지혜는? 장유진은? 조이기 위해 풀어준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어느새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서운한 마음이 있다. 물론 드라마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새로운 감동과 재미가 필자를 매료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의 몰입은 거짓이 아니지 않은가. 충실하며 만족스럽지 않은가. 아직 오지 않은 최고의 순간을 위해. 즐겁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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