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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28 07:18

나는 가수다 - 그 처절한 아름다움의 현장에서!

나는 가수다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제정로마가 들어서기까지 로마의 시민들은 로마군단의 핵심으로써 숱한 정복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로마제국이 지중해세계를 제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잦은 전쟁은 로마시민들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켰고, 정작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는 로마의 시민들은 경제적 기반 없이 황제가 베푸는 배급에 의존해 연명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콜로세움은 특별히 생산활동도, 그렇다고 더 이상 스스로 무장하고 전장으로 나갈 수도 없는 로마시민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유흥의 일환으로써 베풀어졌다. 맹수들이 싸우고,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로 유명한 검투사 노예들이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기독교도들이 맹수에 물어뜯겼다.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경기들이 단지 로마시민들의 히스테리를 막기 위해 열리고 있었다.

3월 27일 일요일 165분동안 특별편성되어 방영된 MBC의 버라이어티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문득 떠올린 것이다. <나는 가수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서로가 동료이고 선후배사이다. 경쟁은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적대적이지는 않다. 마치 축제처럼 서로 응원하고 북돋우며 서로의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고 감탄하는 것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경쟁이기에 그 가운데 누구 하나는 떨어져나가야 한다. 그 긴장과 두려움, 불안.

문제는 과연 이 가운데 어느 것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둘 다 공평하게 보면 좋겠지만 결국에 어느 한 가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가수들이 만들어내는 색다를 무대를 마치 축제처럼 가수들과 더불어 즐길 것인가? 아니면 가수들이 서로 경쟁하여 한 사람을 떨구어내는 서바이벌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인가?

결과는 이미 나왔다. 지난주 김건모가 7위를 하고 탈락이 결정되었을 때 이소라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그가 존경하는 선배이며 애정을 갖는 동료가수이기 때문이었다. 3월 27일 방영분에서도 이소라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평가로 판단하기엔 너무 아깝다. 그것은 <나는 가수다> 최종무대에 서기까지, 그리고 무대 뒤에서 가수들이 보인 모습에 비추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서로를 존경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서로를 아끼는데 7위를 하고 떨어졌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냉정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가식이고 거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그것을 용납지 않았다. 용납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갖 하지 못할 말까지 동원해가며 출연자와 제작진을 비난하고 욕했다. 결국에 PD까지 경질되었다. 데뷔 20년차의 출연가수는 노래를 하다 말고 손을 떨고, 웃음을 책임져야 할 예능인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잃었다. 그만두라 말하고, 아예 프로그램을 폐지하라 다그치고, 출연자와 제작진의 인격마저 부정되고 무시되었다. 과연 대중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백지영이 무대 위에서 아예 머리가 하얗게 비어 버렸을 때. 전에 없이 가수들이 무대 뒤에서 긴장과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심지어 7위를 하고 탈락하는데 오히려 그것을 해방이라 말한다. 과연 축제였다면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하는데 해방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이전까지 <나는 가수다>에서의 7위라는 것이 운이 나빠서도 당할 수 있는 경우였다면 지난주 김건모가 그렇게 두들겨맞고 지금에 이르러 <나는 가수다>에서의 7위란 떨어져야 하는 당위다. 못했다. 부족하다. 당연히 떨어져야 한다. 본무대에 서는 순간 더 이상 <나는 가수다>는 음악인의 축제가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대중을 위한 서바이벌이다. 투쟁이다.

더 치열하게. 더 처절하게. 그리고 자문위원으로 나선 뮤지컬 음악감독 장소영씨가 말한 비장함. 마치 콜로세움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 노예들처럼. 맹수에 찢기던 기독교도들처럼. 잔인하게 그렇게 찢기우고 짓밟혀 내팽개쳐지기를. 김건모 쯤 되는 가수가 7위를 하고 다시 한 번의 기회를 부여받았을 때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끝까지 김건모의 몰락을 보겠다. 대신해서 김건모에 대한 온갖 인신공격과 비방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프로그램을 유쾌하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이번주 들어 재미있었다 감동이다 하는 것이 더 불편한 것이다. 지금의 모습이 그들이 바라는 것일까? 지금의 저 불편하게 다그치듯 노래하는 모습이 저들이 바라던 것이었을까? 그렇게 내몰고, 그것을 다시 서열화하고, 반드시 한 사람을 떨어뜨리고. 그러고서 만족하자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였을까?

정엽이 부른 <잊을게>도 평가단의 투표결과 7위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결코 나쁜 무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록넘버인 <잊을게>를 정엽스러운 R&B로 훌륭히 소화해 불렀다는 점에서 나는 높은 점수를 준다. 아름다웠고 듣기에도 훌륭했다. 평가단이 가장 낮은 평가를 했다고 가장 가치없는 낮게 평가되어질 무대이고 노래였는가?

그러고 보면 순위프로그램을 폐지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다시 부활시키려 할 때 순위프로그램 자체를 반대하던 목소리들이 있었다. 순위프로그램에서의 순위가 과연 음악의 순위인가? 대중적으로 더 인기가 있고 순위프로에서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것이 음악적 가치를 담보하는 것인가? 순위프로에도 들지 못하고,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없는 음악들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단 한 사람이 좋아서 듣는 음악이더라도 가치가 있다.

대중이 음악을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것이 오만이고 무례일 수 있는 이유다. 음악은 아티스트와 개인 대중과의 상호적 관계다. 대중이라는 집단이 아닌 그것을 듣는 개인, 혹은 팬과의 상호적인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작 1천 장의 앨범조차 팔지 못해도. 순위프로그램에는 이름조차 올려보지 못해도. 공연을 해도 객석이 텅텅 비었어도. 그러나 그 음악을 판단하는 것은 그 순간에도 직접 댓가를 지불하고 품을 팔아 음악을 소비하는 개인들이라는 것이다. 정엽의 노래가 가장 듣기 좋았더라는 사람들의 의견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나는 가수다>를 우려의 눈으로 보던 일부 음악인들의 우려가 현실화되려 한다.

축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축제처럼 그저 가볍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축제의 일환으로 유쾌하게 즐기다 꼴찌가 되어 떨어졌다. 그렇다면 관용도 기대해 볼 수 있었겠지. 제작진의 서툰 편집이 문제를 키운 것도 있지만 동료로써,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에 대한 예우로써, 그 재능과 실력을 아는 사람으로써,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는 당연한 마음까지 부정하려 해서야 더 이상 축제일 수 없다. 그것이 눈물을 그렁이며 감동하며 들으면서도 내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물론 음악에는 치열함이 필요하다. 모든 대중문화에는, 창작에는 치열함과 간절함이 필수적이다. 어느 정도는 비장해야 할 테고. 어느 정도는 처절해야 할 테고. 그러나 그것은 내면에서 우러난 동기여야지 어떤 외부에 대한 공포여서는 안 된다. 음악은 자유로울 때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 와중에도 진심으로 무대를 즐길 수 있었던 가수들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진정 가수다.

원래는 <나는 가수다>에 무척 호의적이었다. 취지가 좋았었다. 어느새 <나는 가수다>를 통해서 대중음악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노래 잘 부르는 가수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럼으로써 지금의 침체된 대중음악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보자. 하지만 지금 이 대로라면. 차라리 한 달 동안 결방하기로 한 것이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다. 이대로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가수다>의 음원발매에 대해서도 사실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다. 아마  이게 2주에 한 번 나올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그렇다. 그리고 역시나 시청율이 높은 예능을 통해 발표된 것이어서인지 화제성도 높다. 나오면 바로 음원차트 상위 석권이다. 2주에 한 번씩 이 모양이면 다른 가수들은 어떻게 될까? 그렇지 않아도 홍보도 제대로 못해보고 묻히는 음악이 태반인데, 더구나 <나는 가수다>에 나올 정도면 이미 기득권이다. 과연 정상인가?

음반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 자칫 왜곡된 음반시장을 더욱 왜곡시킬 수 있다. 조금 더 세심한 준비와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만 살아남는다면 그것도 문제 아니겠는가. 원래의 취지를 다시 떠올리라. 그것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윤도현이 부른 백지영의 'Dash'는 충격이었다. 이소라가 부른 박정현의 '나의 하루'는 원곡과 다르게 상당히 이소라스럽게 고급스럽게 해석되고 있었다. 김범수가 부른 이소라의 '제발'은 왜 김범수가 노래 잘하는 가수로 항상 첫손에 꼽히는가를 보여주었다. 박정현의 부른 김건모의 '첫인상'은 김건모의 원곡이라는 것을 잊게 박정현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었다. 백지영이 부른 김범수의 '약속'은 섬세한 감정의 선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고, 김건모가 설욕하듯 부른 정엽의 'You are my Lady'는 왜 정엽이 김건모에게 그 노래를 권해주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뻔한 노래 바꿔부르기가 아니라 서로의 개성이 더해지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그 탈태의 순간이. 정작 듣는 원곡의 주인들도 새로운 감동이었겠지만 하나같이 탁월한 음악인들이기에 듣는 사람도 감동이었다. 오죽하면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돌아섰을까. 바로 그런 것들이 음악의 힘이다.

그러나 역시 이런 불편한 무대는 싫다. 물론 그러면서도 다시 방송을 시작하면 보게 될 것이다. 불편한 것은 불편한 대로. 그들이 들려주는 수준높은 음악이 좋으니까. 아름다운 음악이란 영혼의 양식이다. 영혼을 깨끗하게 맑게, 그리고 풍부하게 살찌우는 것이다. 오랜 음악들. 새로운 음악들. 단지 느끼는 한 가지 불만일 것이다. 이대로는 안 좋다. 한 달 뒤를 막연히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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