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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06 13:20

난폭한 로맨스 "박무열의 불륜, 유은재의 연민을 위한 반전을 예감한다!"

유은재는 단지 박무열과 사랑하기 위해 보디가드가 되었을 뿐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우연과 오해, 갈등,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연민이다.

우연은 만남을, 그러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운명일 것이다. 우연으로 만나고, 오해로써 얽히고, 갈등하며 부딪힌다.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계기가 필요하다. 반전이다.

어딘가 모자른 캐릭터에게서는 남다른 장점을 새삼스레 보게 된다. 너무나 완벽한 캐릭터에 대해서는 그의 허술한 점을 본다. 혜택받은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그의 어려움을 보고, 화려하게만 보이는 이면의 외로움을 보게 된다. 결론은 안타까움이다. 안쓰러움이다.

동정은 불쌍한 것이다. 불쌍하다는 것은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어떻게 해주었으면 하는 기대에서 비롯된 아쉬움이 없다. 단지 기준에 미치지 못하니 가엾고 도와주고 싶다. 거기에는 어떤 결과도 보상도 기대하지 않은 일방적인 선량함만이 있다.

그러나 연민은 다르다. 연민은 인정을 전제한다. 아니 정확히는 동일시다. 상대는 나와 같다. 나와 전혀 다르지 않다. 단지 모자르다. 못미친다. 아주 조금이 부족해서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에 대한 안달이다. 조금만 손을 내밀면. 조금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면. 결과에 대한 기대가 있다. 보상에 대한 기대도 어렴풋이 있다. 도와주는 의미가 있다. 보살펴주는 보람이 있다.

물론 현실에서 동정이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다. 다만 로맨틱 코미디다. 유쾌한 것이다. 즐거운 것이다. 웃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행복한 판타지다. 그런데 막연히 동정받고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상대에 대해 관객은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동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조각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함으로써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고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자신을 이입하며 그 행복에 공감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 웃을 수 있다. 온달이 장군이 되어야지 여전히 바보인 채로라면 던지 평강공주를 동정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연민이 필요하다. 그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를 마냥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를 위한 단계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단계다. 오히려 친구보다 더 가까운 것이 원수다. 연인보다도 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적일 것이다. 친구라도 가리는 것이 있다. 연인이기에 꺼리는 것이 있다. 그러나 원수라면 감추는 것이 없다. 적인데 굳이 체면차리거나 꾸밀 필요도 없다. 솔직하게 있는 자기 자신으로 서로에게 부딪혀간다. 적의를 드러내며 서로에게 부딪히는 가운데 그러한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더욱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인정하게 된다.

아마 박무열(이동욱 분)이나 유은재(이시영 분)에게 있어서도 서로가 가장 솔직할 수 있고 따라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박무열과 유은재 자신들이 아닐까? 제아무리 제멋대로인 박무열이라 할지라도 아무곳에서나 그렇게 가리거나 감추는 것 없이 행동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박무열 앞에서 유은재도 마음껏 응석부리듯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 박무열과 유은재가 서로에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찾아온 스캔들.

불륜은 아닐 것이다. 다만 현재 박무열이 처한 상황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확실히 충격적이다. 유명프로야구선수가 다른 남자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 더구나 그 남자는 그가 가장 마음으로 신뢰하고 있는 친한 선배다. 인간에 대한 배신이다. 아니 인간에 대한 부정이다. 동정은 할 수 있을지언정 연민은 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적 판단의 선을 넘어간다. 그런 남자를 과연 유은재는 시청자의 용인 아래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계기에 불과하다. 어째서 배우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서로 사랑에 빠지는가? 팬들이 그들을 사랑하는데 어째서 그들은 더 매력적인 다른 배우들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가? 사랑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에 상처입고 사랑에 괴로워하며 때로 울기도 한다. 그것은 가능성이다. 이미지화된 스타의 모습에서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이성의 모습을 본다. 배우는 바로 상대배우가 아닌 관객 자신과 사랑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제멋대로이던 박무열이었다. 성격도 나쁘고 자신에게도 함부로 대한다. 더구나 증오스럽기 그지없는 자기팀의 우승을 저지한 상대팀의 스타선수다. 그것이 유은재에 있어 박무열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완고하여 조금의 의심도 흔들림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런 앞에서 박무열의 남자의 모습을 하고 사랑으로 인해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말 그대로 남자 박무열이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안쓰러운 손을 내밀어주고 싶은 얼굴로.

그리고 그것은 보디가드라고 하는 윤은재의 지금의 위치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있어 박무열을 협박하고 위해를 가하려 하겠는가? 현재 드러난 동기로는 자기 팀의 우승을 저지당한 블루시걸즈의 팬 유은재와 그 가족의 원말을 제외하고 그것밖에는 없다. 질투란 인간이 갖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그것이 배신감과 어우러진다면, 더구나 거기에 열등감과 상실감마저 더해진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다만 그러나 그것이 실제가 되어 버린다면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유쾌함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남자의 부정으로 인해 심지어 범죄가 기도되고 그것이 진실로 밝혀지면서 모두가 상처입는다. 이것은 스릴러나 서스펜스에 어울리는 설정이다. 너무 무겁고 심각하다. 우울하고 거슬린다. 단지 그러한 설정들은 박무열과 유은재가 보다 서로에 가까워지고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 계기로만 쓰일 수 있으면 좋다. 그것이 로맨스코미디의 방식이다.

오해일 것이다. 어쩌면 서로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인 부정은 없지만 정신적인 교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신뢰하는 선배를 배신할 수는 없다. 남편을 배반할 수는 없다. 그것이 갈등을 빚는다. 상처를 내고 아픔에 괴로워하도록 만든다. 연민이 생긴다. 오죽했으면. 하필이면. 그것은 선을 넘지 않은 데 대한 긴장이기도 하다. 그 긴장이 질투와 증오를 통해 표출되고 해소된다. 들끓던 격정 만큼 모든 것이 해결된 이후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난 하늘처럼 투명할 것이다.

비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스릴러나 서스팬스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유은재는 단지 사랑을 하기 위해 보디가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위험으로부터 박무열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토록 증오스러운 박무열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끔 되도록 그의 보디가드가 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과정은 필요하다. 들떠 있던 코미디를 현실로 안착시키고, 과장되이 떠다니던 감정들을 서로에게 밀칙사키는 과정이. 비일상의 파격이 일상의 상식에 와 닿는다.

아무튼 상당히 정석적이다. 꼬아서 말하면 너무 정석적이다. 밀실에 함께 갇히고, 서로 툭탁거리며 익숙해지고, 그리고 또다른 오해로 인한 반전까지 있다. 이제는 연민하게 된다. 연민하며 그와의 거리를 더욱 좁히게 된다. 박무열은? 박무열은 과연 유은재에게서 무엇을 보게 될까?

유쾌하다. 재미있다. 다만 아쉽다면 결과가 너무 보인다. 결과에 대한 흥미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어떻게 예정된 과정을 맛깔나게 밟고 갈 것인가? 바로 그것이 필력이다. 연출력이다. 연기력이다. 의외로 꽤 어려운 길을 가려 하고 있다. 어지간히 해서는 잘 표도 나지 않는다.

배우로서의 매력은 한예슬이 위다. 그러나 캐릭터의 매력은 유은재가 위다. 얼마나 작가의 텔링과 감독의 연출이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이시영에게 유은재를 녹여냈다. 역시 <스파이명월>을 의식하게 된다. 잘 만든 드라마와 실패한 드라마의 차이다. 흥미롭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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