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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1.06 13:47

부탁해요 캡틴 "전문직 드라마, 그러나 항공기 조종사의 첨예함이나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다."

항공기 조종사라는 중심없이 드라마가 난잡하고 산만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세상에는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있고, 반드시 잘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김윤성(지진희 분)이 한다진(구혜선 분)을 야단치며 한 말이다. 칵핏에는 최선은 필요없다. 최고만이 필요하다.

당연한 것이다. 여객기에는 수백명의 승객이 탄다. 조종사의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 수백명의 사람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일에 있어 약간의 실수란 단지 개인의 미숙함일 수 있다. 그러나 수백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약간의 실수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는 용서못할 죄악일 수 있다. 자기가 부족해서 혼자 어떻게 되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단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된 다른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사실 그런 첨예함이야 말로 전문직드라마를 보는 이유일 것이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인가 어떤가 하는 느슨한 기준이 아니다. 누가 더 착하고, 누가 더 정의롭고, 누가 더 도덕적이고, 아니 바로 그 착하고 정의롭고 도덕적인 기준이 곧 그가 가진 전문가로서의 능력이다. 지식과 판단이다. 이를테면 병원이고 의사다. 그런데 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지만 곧 죽을 것 같은 사람도 문제없이 살려내는 의술을 지니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누구보다 선량하고 성실하지만 어떤 환자도 그에게 마음놓고 목숨을 내맡길 수 있다. 누가 더 선한가? 누가 더 정의로운가?

의사라면 과연 환자를 살려낼 수 있는가? 없는가? 검찰이라면 과연 어떻게 용의자를 찾아내고 범죄사실을 밝혀내어 법정에서 그를 처벌받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애널리스트라면 어떻게 고객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가의 여부로 그 선악이 가려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개인으로서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고객이 맡긴 돈에 손실을 입히면 그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첨예함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난가를 두고, 즉 누가 그 세계에서 정의인가를 두고 충돌하고 대립하며 경쟁한다. 아주 작은 차이로도, 그러나 그것이 한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 무고한 한 사람을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고, 혹은 놓칠 수 있었던 용의자를 체포하여 처벌받게 할 수 있다. 어쩌면 놓칠 뻔했던 이익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그같은 첨단의 드라마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일 터다.

한다진과 같은 열혈캐릭터는 사실 넘치도록 많다. 카페에서 싸우고, 편의점에서 싸우고, 고깃집에서도 싸운다. 자신의 정의감에 취해 회사 안에서도 싸우고 소리지르고 눈물짓는다. 그러나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서 피해보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 한 사람 뿐이니까. 아니 만일 한다진에게 부양가족이라도 있다면 그 또한 무책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주위에 민폐를 끼치고 자신은 직장마저 잃게 된다면 남은 가족은 어쩌란 말인가? 하물며 여객기 파일럿이다. 수많은 생명과 막대한 가치를 책임지고 움직이는 조종사다. 그녀의 그같은 행동은 적절한가?

역시 1회에 이어 이번에도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로 오금저리는 내용이었다. 아내가 사고로 죽고 거의 혼자 집에 남겨두는 아이가 눈에 밟혀 제대로 비행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서 계속 부조종사가 조언을 해주는데 전혀 엉뚱하게 비행기를 조종해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고 있다. 과연 그런 조종사에게 비행을 맡겨야 하겠는가? 아무리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나중에라도 다시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때는 어쩔 것인가?

김윤성이 옳다. 장대영(손현주 분)도 옳다. 도저히 비행이 감당이 안된다면 포기하는 것이다. 조종사로서의 자존심따위 상관없다. 자식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도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로 인해 승객들이 위험할 수 있다.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화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것은 자존심 이전에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조종사로서의 의무이며 정의다. 그런데 그런 당장 문제있다고 여겨지는 조종사를 눈물로 돌려세우고 인정으로써 다시 조종석에 앉게 만든다. 아니 심지어 그 아들을 위해 수백명의 승객을 싣고 하늘을 날고 있는 가운데 규정을 벗어나 무언가 해주자 조르고 있다. 인간적으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조종사로서는 도저히 믿고 맡길 수 없는 사람이다.

그가 진정 전문가이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면 동정이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연민이라는 것도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늘을 날 수 있는가 없는가. 마음놓고 승객과 화물들을 맡길 수 있는가 없는가? 그래서 항공사 입장에서도 조종사들에 적지 않은 연봉과 처우를 제공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그들을 존경하며 동경한다. 명예가 주어진다. 그런데 그것을 단지 인정으로 바꾸어 동정하고 연민하고 애원하고 감동하며 각성한다. 하늘 위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생각해 보라. 안전운행이 최우선인데 인정에 이끌려 안달하고 사정한다. 차라리 부적격이라 여기고 단호하게 자를 수 있었던 김윤성이 더 인간적이고 도덕적일 수 있었던 이유다. 그에게는 직업에 대한 책임이 있다. 자기가 맡은 책임에 대한 자각이 있다. 그로 인한 엄격함이 있다.

인간적인 따뜻함은 있다. 그러나 전문직이 갖는 치열함이 있다. 느슨하게 사람을 감싸고 다독이는 인정은 있는 반면, 칼날위를 걷는 듯한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과연 이것은 항공드라마인가? 아니 항공드라마가 맞기는 할 것이다. 검찰이 직업인 주인공이 나와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려 다니며 사랑에 빠지기도 하듯, 조종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나와 마음껏 자신의 선량함과 다정함을 과시하며 오지랖을 보인다. 당연히 드라마도 그렇게 빠지게 된다. 어느새 무책임한 이모로 말미암아 엄동설한에 빚쟁이들에 쫓겨 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한다진의 가련한 처지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항공기 조종사이기보다는 어려운 사정을 간직한 단지 착하고 씩씩하고 성실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드라마가 난잡해진다. 하늘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치열함이 아닌, 그러한 치열함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서의 첨예한 갈등이 아닌, 결국에 인간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그렇다 보니 동정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사정이 나오고, 비밀에 가려진 사연들이 보여지게 된다. 항공기는 별개다. 조종사라는 직업도 그다지 상관없다. 그것이 문제다. 항공사와 조종사는 드라마의 중요한 배경이고 소재다. 항공기 조종사라고 하는 주인공의 직업은 드라마를 결정짓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이 흔들리고 있으니 나머지라고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겠는가?

항공기 조종사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하기는 어떤 직업이 안 그럴까? 감정에 휘둘려 쉽게 욱하고,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인정에 이끌려 호소하고 깨닫게 하고, 인정을 위해 중요한 업무중에 예외를 두려 한다. 어떤 직업이었어도 문제는 불거진다. 다만 그 문제가 더 커지느냐? 아니면 고만한 정도로 끝나느냐? 승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얼마나 살떨리는 드라마인가? 저런 조종사들이 조종하고 있는 비행기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

역시 캐릭터의 미스다. 다른 직업이었다면 한다진과 같은 열혈캐릭터도 어느 정도 용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 열혈캐릭터라 할지라도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장소를 알고 행동한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직으로서의 첨예함이 없다. 첨예한 기술에 대한 치열한 추구가 없다. 집요함도 냉철한 책임도 그 무엇도 없다. 선량하다. 정의롭다. 성실하다. 열심히 한다. 열심히만 한다. 인간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그다지 그녀가 조종하는 비행기에는 타고 싶지 않다. 조종사로서의 한다진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다. 승객의 입장에서 이입해 보았다. 한다진이라는 조종사가 조종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한다진이 다시 끌어당긴 장대영의 경우도 비행기가 안전하려면 그 아들의 주위부터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바닥임을 자부하며 과시한다.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김윤성이 마치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무튼 승객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가운 드라마가 아닐 것이다. 항공기 조종석에서는 저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조종사란 저와 같은 이들인가? 호러물일 것이다. 소름이 돋는다. 무섭다.

항공기 조종사란 없다. 단지 인간과 인정이 있을 뿐. 승객도 없다.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부탁해요 캡틴>은 과연 어떤 드라마인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답이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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