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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2.31 08:22

특수사건전담반TEN "모성이라는 이름의 신, 비극도 되지 못하고 구원도 되지 못하다."

진부한 모성과 모성의 대결, 메시지가 들리지 않도록 지루하고 지겹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설마 이렇게 진지하게 간절한 마음이 되어 드라마를 보기도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그것만은... 그러나 <특수사건전담반TEN>은 끝내 그런 필자의 바람을 외면하고 말았다.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밀려들던 허탈함이라니. 실망조차 아니었다. 허무였다.

감동이란 충격량에 비례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항상 듣던 그대로라면 어느새 지루해지고 지겨워지는 것이다. 분명 저쯤에서 기른 어머니 정희연(배민희 분)은 딸 문채원을 구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낳은 어머니 임유경(장소연 분)이 아이를 데리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담판을 지을 것이다. 정희연의 모성을 앞세운 간절한 호소에 임유경의 모성이 일깨워지며 모든 위기는 해소되고 아이는 안전하게 구출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이제껏 무시로 일관해 오던 시아버지(김기현 분)과의 갈등 역시 해결되어 어머니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니 좋지 않은가. 그런데 너무 뻔하다.

사실 2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었다. 하나하나 단서가 더해질 때마다 그 퍼즐의 조각들은 처음 시청자가 생각한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희연은 문채원의 생모가 아니었다. 납치범인 임유경이 원래 문채원의 생모였다. 아니 납치사건조차 아니었다. 유괴가 아니었다. 유괴범의 애인인 줄 알았던 임유경이 아이의 생모로 밝혀지면서 유괴범으로 여겨지던 유력한 용의자는 단지 아이를 찾고자 했던 정희연과 임유경 사이에서 그녀들의 사이를 이용하여 유괴사건을 꾸미고 돈을 받아내려 했던 브로커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7년 전 아이를 낳지 못해 다른 여자의 자궁과 난자를 빌려야 했던 한 엄마와 돈을 받고 자신의 자궁과 난자와 그리고 열 달 뱃속에서 기른 아이를 내주어야 했던 한 엄마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더구나 얼마전 임신했다가 유산한 임유경의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정하여 이후 아이의 생사조차 어찌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이어진다. 과연 사건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그러나 결국 마무리가 문제였을 것이다. 그렇게 정희연과 임유경, 그리고 그녀들의 딸 문채원 사이의 얽히고 꼬인 감추어진 이야기들을 풀어낸 것은 좋았는데 필자의 물음처럼 그것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고민을 했지만 방송이고 드라마라는 한계에서 타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성을 드러내었으니 모성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보자.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는 임유경은 아이를 위기에 빠뜨리고, 그런 임유경을 어머니로써 정희연은 찾아가 설득한다. 임유경의 어머니로서의 모성본능이 일깨워지며 사건은 모두 원만하게 해결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뻔하게.

차라리 보다 극적으로 참혹하면서도 처절한 이야기로 그려냈으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어머니 임유경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고 경찰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힘든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정희연은 다시 한 번 위해를 당한 상태에서도 딸 문채원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누구하나 웃지 못하는 처참한 상황 속에 과연 그렇게까지 이르게 된 모성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하지만 너무 쉽다. 돈으로 사고팔려 했던 모성이었다. 자궁을 빌려주고, 난자를 내주고, 그리고 초유조차 먹이지 못한 아이마저 넘겨주고 말았다. 7년을 잊고 살아야 했다. 아예 없던 아이인 양 영영 잊고 살아야 했었다. 그런데 겨우 다시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 아이마저 잃어버리고 오래전 기억을 일깨우고 말았다. 젖조차 물려주지 못하고 잊어야 했던 아이가 그녀의 영혼의 빈 자리로 더욱 깊숙이 들어오고 만 것이다. 그녀 자신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정작 그토록 그리던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는 아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조차 알지 못하여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말 몇 마디로 해소되는가? 그녀가 겪어야 했던 혼란과 고통이 단지 같은 엄마의 말 몇 마디로 눈물과 함께 씻겨내려갈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럴 것이면 세상에 아픔이라거나 후회라거나 하는 단어가 왜 있을까?

마치 비극에 한 발 담그려는데 어딘가 장치된 크레인이 목덜미를 잡아 끌어올리는 듯한 느낌이다. 모성마저도 돈으로 거래하려는 몰인간의 비극이 모성이라는 전형적인 키워드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다고 모성의 구원에 감격하기에는 이제까지의 이야기란 너무 어둡고 우울하다. 결코 모성이란 구원의 주체일 수 없다. 돈으로 사고팔고, 때로 성가셔하며 누군가에 맡기고, 그리고 자신의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일그러진 채 왜곡될 수 있는 모성이란 비극의 한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원인이면서 그 대안이다. 더하고 빼니 0으로 수렴하는데 그러면 도대체 이 드라마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말했듯 감동이란 충력량에 비례한다. 메시지란 감동에 비례한다. 과연 그러한 일그러진 모성은 무엇을 낳는가? 그 원인은 어디에 있고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가? 그러고 난 다음에 구원을 이야기해도 좋았을 것이다. 하기는 임유경의 비극이라기에도 임유경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나오지 않았다. 단지 그녀는 문채원을 낳은 대리모였고 생모였을 뿐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우울증을 앓게 되었는지, 얼마전 유산한 아이는 누구의 아이였는지, 그러나 정희연의 말 몇 마디에 일깨워지고 마는 그녀의 모성처럼 그녀는 단지 모성으로서만 존재하는 이였다. 아무런 이유도 사연도 없이 그저 문채원의 생모라는 캐릭터만을 갖는다. 어떤 메시지도 없다. 비극에 이르는 이유도, 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계기도. 어설프다.

아무튼 모성이란 얼마나 가련한 것인가? 열 달을 자신의 뱃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처음에는 미미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모든 행동을 아이가 지배하게 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엄마의 모든 것이 어느새 바뀐 몸 만큼이나 아이에 의해 변화되어간다. 그것을 아이와 함께 엄마는 느낀다. 자기가 직접 낳았으면 낳은대로, 낳지 못했다면 또한 낳지 못한대로, 그리고 아이는 그런 엄마에게 엄마라는 이유로 무한의 애정과 집착을 보인다. 엄마는 어떻게 해도 엄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엄마란 무엇인가?

미숙하다. 자기 배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느새 질투하며 거리를 느끼고 마는 정희원이나, 낳은 아이를 버렸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집착하며 어느새 엄마로서의 자신을 잃어가고 마는 임유경이나, 그런데 일그러진 모성으로 말미암아 비극으로 치닫던 것이 너무 쉽게 정상으로 돌아온다. 마치 답이 나와 있는 문제처럼, 아니 문제 자체가 답이었다.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닌 채, 비극도 아니면서 또한 구원도 아니다. 더하고 빼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 드라마도 남는 것이 없다. 도대체 이런 드라마를 왜 만든 것일까? 허무해지기까지 한다.

수사물이면 수사물에 어울리는 사건전개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특수사건전담반TEN>이 고수해 오던 자기만의 색깔이 있었을 것이다. 다정하지만 잔혹하다. 따뜻하지만 잔인하다. 동정적이지만 냉정하다. 사건은 사건, 결론은 결론이다. 범죄는 범죄 동기는 동기다. 여지훈(주상욱 분)이 그런 역할을 맡았다. 여지훈의 냉철한 이성과 백도식(김상호 분)의 범죄에 대한 집요함, 남예리(조안 분)의 온정적이면서도 필요할 때는 냉정해지는 태도도, 가장 상식적인 박민호(최우식 분)의 반응 역시. 그에 어울리는 것은 가슴이 싸해질 정도로 냉정하고 그러면서도 울컥하며 치미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이같은 뻔한 잘 들리지도 않는 연설이 아니라 말이다. 어쩌면 그리도 지루하고 지겨워지는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이 반응하지 않는다. 드라마 혼자서만 심각하고 진지하다.

역시 2부작 편성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동안 일주일에 한 회, 하나의 에피소드일 때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부족한 듯한 시간 만큼이나 더욱 내용있게 알차게 조밀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2부작으로 늘려 방영하면서 사이가 생기고 그 사이를 채우는 가운데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아마 2회가 아닌 1회로 끝맺었다면 잡다한 사족들이 배제되면서 보다 명쾌하게 분명한 결론에 이르지 않았을까. 공중파 수사물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무 길러지니까 밀도가 떨어진다. 메시지가 약해진다. 그러한 문제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동안 가장 놀라고 가장 실망한 에피소드였다. 납치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동안에는 무척 놀랐었다. 이 또한 꽤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해결에 이르러서는 결국에 호소하는 것이 인정, 그리고 모성이란 절대적 가치가 된다. 구원이 된다.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에 의지해 그로써 이야기를 끝매으려 한다. 이건 <특수사건전담반TEN>의 방식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너무 어정쩡한 것이다.

어쨌거나 남예리의 개인사정이 궁금하다. 그녀의 신상정보에는 그녀의 부모가 이미 죽었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남예리가 찾아간 엄마란 누구인가? 그렇다고 정희연과 임유경을 대하는 남예리의 모습을 보아서 그다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것 같지는 않다. 열쇠가 될까? 남예리의 팀장 여지훈에 대한 감정이 심상치 않다. 겨우 단서가 보였다. 남예리와 관련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무척 흥미롭다. 재미있다.

가장 재미없었다. 이것밖에는 안되는가? 그러나 이제까지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 있다. <특수사건전담반TEN>을 지탱하는 구성원들의 개성있는 캐릭터와 관계 역시 여전히 그대로다. 다만 이번 것은 많이 지루했다. 아쉽다. 다음을 기대해 본다.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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