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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12.01 07:09

[김윤석의 드라마톡] 육룡이 나르샤 17회 "삼한제일검 길태미, 오로지 그만을 위한"

잔혹할 정도로 압도적인 자신감과 자존감, 삼한제일검인 이유를 보여주다

▲ 육룡이 나르샤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육룡이 나르샤. 바로 이것이 홍인방(전노민 분)과 이방원(유아인 분)이 꿰뚫어 본 권력의 본질이었을 것이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다. 누구라도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자기를 죽일 수 없다. 수많은 병사들이 앞뒤로 길을 막아 포위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다수인 이성계의 병사들이었다. 모두의 삶과 죽음마저 오롯이 자신이 결정한다. 오로지 강자인 까닭이다.

삼한제일검 길태미(박혁권 분)를 위한 회차였을 것이다. 어째서 그는 삼한제일검인가. 도대체 삼한제일검이란 무엇인가. 길태미가 '이인겸(최종원 분) 따까리'라는 말에 발작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이기도 하다. 고려에서 제일이라는 것이다. 고려에서 누구도 자신의 위에 두지 않는 최고의 칼잡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두려워해야지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어야지 자신이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마지막 순간에조차 사람들이 길태미 자신을 홍인방 위로 인식한다 말한 것은 그의 숨겨진 본심이었을 것이다. 마음껏 권력이라는 칼을 휘둘러 보았다. 전혀 아무런 불만도 여한도 없다.

이성계(천호진 분)의 병사들이 저택을 포위하자 상황이 불리한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모두 죽일 것을 결심한다. 길태미가 이성계의 병사들을 피해 도망친 것도 자기가 잡히거나 죽을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돈인 홍인방을 걱정하여 그를 돕기 위해 몸을 빼낸 것이다. 최영(전국환 분)에게 체포되어 끌려가던 홍인방을 구하고도 함께 평택으로 가서 군사를 일으키자는 제안도 이성계를 죽이고 가야 한다며 거절한다. 동북면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의 가별초가 지키고 있을 텐데도 이성계를 죽이는 것을 맡겨놓은 물건 찾듯이 한다. 과연 삼국지에서 만인지적이라 일컬어지던 관우와 장비의 위용이 이러했을까. 자신을 쫓는 병사들을 죽이고, 한끼의 국밥을 먹기 위해 주막에서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고, 그리고 다시 자신을 모욕한 병사만을 집어 목을 벤다. 그 순간 그 자리에는 길태미 한 사람 뿐이었다.

무휼(윤균상 분)이 차마 길태미의 앞에 나가 시비를 걸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본능일 것이다. 아직 길태미는 무휼 자신보다 강하다. 기에서 눌렸다. 그런 길태미의 기를 꿰뚫고 이방지(변요한 분)가 등장한다. 길태미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최영도 이성계도 아니었다. 개경의 백성이고 개경의 거지들이었다. 그동안 이인겸과 홍인방과 길태미, 이른바 도방 3인방이라 불리우는 권력자들에 의해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무지렁이 민초들이었다. 비록 마지막 순가에조차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들의 힘이 비틀린 상황의 틈을 메우고 엇갈린 움직임의 선을 이어준다. 그 끝에 그들의 아들이고 오라비이고 아비였을 이방지가 앞에 나타난다. 동생 분이(신세경 분)가 백성들을 이끌고, 오라비 이방지가 백성들의 칼이 되어 원수의 앞에 나타난다.

홍인방의 말 그대로였을 것이다. 유아인의 연기가 너무 디테일하다. 작가의 대본이 지나치게 상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정도전(김명민 분)으로부터 난세를 살아가는 여러 유형들에 대해 듣고서 난세와 싸우는 자신을 그리며 도취된 표정을 짓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새로운 가면을 쓴다. 새로운 자신을 만든다. 그것이 진짜 자신이라 믿어 버린다. 이방원에게도 홍인방처럼 자신을 지켜줄 것이란 아무것도 없이 알몸으로 막막한 공포와 맞섰던 경험이 있었을까. 이제까지의 자신을 모두 던져서라도 간절히 지키고 싶고 절실하게 가지고 싶은 그런 것이 지금까지 있었었는가. 제아무리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이방원에게는 아버지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동북면의 실력자와 백전불패의 강병 가별초가 있었다. 아직은 자신을 지켜줄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온다면? 그에게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저주였을 것이다. 이방원의 안에 숨은 벌레를 일깨우는 주문이었다.

순간 착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손에 쥔 칼이야 말로 진짜 힘이라 여겼을 것이다. 상대의 목에 들이밀고 위협하여 무릎꿇게 만드는 그것이야 말로 진짜 권력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순군부를 손에 넣었다. 순군부의 병사들이 자신의 지휘 아래 있다. 왕만 자신의 손에 넣으면 된다. 왕과 그 주위만 확실하게 장악한다면 모든 것은 끝인 것이다. 이성계의 가별초만 먼저 힘으로 제압할 수 있으면 이성계에게로 갔던 명분도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왕만 손에 넣으면 모든 것은 자신의 뜻대로 풀려갈 것이다. 지나치게 사대부였던 자신을 의식하고 애써 부정하려 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왕궁으로 향하려는 이유와 그것이 의미하는바를 무심코 지나치고 만다.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조차 바로 눈치챈 그 사실을. 전제왕조국가에서 신하가 군사를 몰아 왕궁으로 향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이겠는가.

하다못해 아직 고려의 조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인겸에게로 가서 그의 힘과 권위를 빌리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왕명을 앞세우고서도 이성계는 이인겸의 앞에서 그를 체포하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나고 만다. 지금의 왕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평생 그를 보좌하여 국정을 책임져 온 공을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잡으러 온 이성계가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때문이었다. 무장으로써 최영이 있었다면 문신으로는 이인겸이 있었다. 하지만 홍인방은 이번에도 이인겸을 무시했고 결국 혼자서 왕궁으로 향하다 최영을 만나 그대로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만다. 그 순간에조차 이인겸을 의식하며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순군부의 병력이야 말로 이인겸의 명성과 영향력보다 더 위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인겸보다 더 위에 있다.

조민수(최종환 분)가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와 더불어 국정을 주도하며 이인임을 복귀시키려 시도했던 사실을 이렇게도 엮는다. 조민수야 말로 이인겸이 상황의 불리함을 인지하고 훗날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 마지막 수였다. 조민수가 홍인방의 가노를 매수했듯 홍인방과 길태미의 일파가 쓸려나가는 혼란스런 상황에 조민수를 최영의 무리로 집어넣는다. 도방에서 자신을 따르던 이들로 하여금 최영을 도와 이성계를 상대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영은 자신과 교감이 있지만 이성계는 단지 자신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여길 뿐이다. 앞으로 다시 되찾게 될 권력을 위해서는 당장의 작은 굴욕쯤은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명분을 잃지 않는 것. 장차 돌아오기 위한 명분을 다시 쌓는 것이다. 십수년을 최고의 권좌에 있었던 노회한 정객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에 비하면 홍인방이든 길태미든 아직 아이들일 뿐이다.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사실 다른 것들은 다 이 순간을 위한 배경을 제외한 나머지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더 센가. 누가 이 가운데 가장 센가. 고려에서 가장 강한 삼한제일검 길태미가 있었다. 그를 위협하는 젊은 무사 까치독사 이방지가 있었다. 무휼은 아직 한쪽 구석에서 구경만 해야 하는 처지다.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려던 순간 길태미는 그만 무사로서의 본능을 일깨우고 만다. 위협이 되는 놈은 누구라도 죽인다. 상대를 꺾고 자신이 여전히 최강임을 모두에게 증명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잠시나마 자신을 곤란케 했던 상대를 앞에 두고 이대로 등돌려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 살벌함이, TV화면으로도 느껴지는 살기가 벌써부터 대결의 결과에 설레게 만든다. 결과는 안다. 다만 아직 과정은 모른다. 이방지는 과연 당대의 삼한제일검 길태미를 꺾고 그 호칭을 가져갈 수 있을까.

분이에게는 역시 이런 역할이 어울린다. 비로소 '분이대장'이라는 호칭을 되찾았다. 무지렁이 백성들로 이루어진 결사의 연통들을 지휘하여 홍인방과 길태미, 이인겸의 주변을 탐색한다. 분이가 이끄는 연통들의 정보가 이성계의 병사들을 움직이게 한다. 연희(정유미 분)가 자일색이라는 이름으로 몸담고 있는 화사단도 연희의 설득으로 이성계의 편으로 돌아섰다. 사실은 불안하다. 굳이 정보조직이 둘이나 있을 필요는 없다. 강제로 납치된 아이들을 훈련시켜 권력자들만을 상대하던 화사단과 권력자에 의해 희생된 힘없는 백성들로 이루어진 분이의 연통, 과연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분이에게도 역할이 필요하다. 그동안 과정들이 보여지지 않아 뜬금없기도 하다. 비로소 한 마리 용이 마저 추가된다.

사실 말도 안되는 상황일 것이다. 서로를 역적이라 몰며 그것도 한 나라의 왕도에서 권력자들이 사병을 이끌고 서로를 공격한다. 왕도의 한복판에서 그 사병들에 의해 칼부림까지 일어난다. 누군가는 죄인이 되어 잡혀가고, 누구가는 권력을 쥐고 더 높은 자리에 앉는다. 차라리 통쾌하기보다 우습기만 하다. 그런 시절이 다시 없기를. 시대가 요동친다. 난세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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