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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2.29 09:37

나도 꽃 "아쉬운 완결, 흥미롭지만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한 이유..."

격정도 부족하고 디테일은 너무 짧았다. 미완의 드라마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결국 박화영(한고은 분)과 서재희(윤시윤 분)을 얽매고 있던 앙금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 그리고 믿고 의지하던 형의 죽음, 그 죽음을 방관했고, 그 죽음을 자신이 만들었다. 후회와 죄책감에 쫓겨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 죽음이 이제 그들을 용서해주려 한다.

확실히 압축해서 두 사람의 고민과 갈등을 해소하려면 이 이상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용서를 구하는 것보다 차라리 귀신이라도 찾아와서 용서해주는 것이 빠르고 편하다. 작가가 드라마의 주제 자체는 잊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차순경 차봉선(이지아 분)은 이미 많이 치유가 되었고, 이제는 박화영과 서재희의 차례다. 그것을 죽은 이의 혼령이 압축하여 대신해 준다.

조금 - 아니 많이 아쉽기도 하다. 어쩌면 드라마가 여러가지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애매하게 끝나고 만 이유일 것이다. 뭔가 끓어오르는 것이 필요하다. 치솟고 여기저기 부딪히는 그런 느낌이 필수적이다. 함께 격정이라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원망하고 그리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드라마란 그런 것이다. 그러한 격렬한 감정 가운데 일상의 감정을 일깨우고 미처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을 풀어낸다. 카타르시스라고 말한다.

그에 비하면 드라마는 아주 약간 조금씩 부족했다. 어쩌면 그것이 리얼리티일수도 있겠지만 차봉선이나 서재희나 너무 자폐적일 정도로 자기 안에 갇혀 있었다. 어필이 부족하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인물들이며 지금 현재 어떤 심리상태 속에 있는가? 기괴하게 일그러진 일상만이 존재할 뿐 그것을 정리해서 보여줄 수 있는 가시적인 특징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레옹에서 레옹이 선인장에 물을 주는 장면과 같은 것이다. 딸기우유 할아버지를 단지 위로하려 찾아가는 것만이 아닌 위로받으려 찾아가는 것으로 묘사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치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필요했다. 어떻게 차봉선은 치유되어가고 있는가? 서재희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가? 그것을 시청자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가까이 와닿을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었다.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사실적일 수는 있지만 드라마로서 시청자들에 너무 불친절했다. 상상력을 발휘하려 해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를 위한 단서가 필요하다. 시청자는 조금 단순하고 유치해도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드라마를 좋아하지 이처럼 등장인물들 자신들 만큼이나 다가가기 어려운 이야기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였다.

박화영의 경우는 그래서인지 제대로 묘사가 되어 있었다. 그토록 도도하고 오만하던 박화영이었다. 자기를 숨기며 철저히 우아하고 멋진 박화영이라는 여성을 연기하며 집착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서재희의 지시를 받아 자신을 가두었던 발레 팀장의 발등을 하이힐 굽으로 밟는다. 그리고 걸어가며 삐끗 넘어질 뻔한다. 이전의 그녀였다면 보이는 앞에서는 여전히 우아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으면서 뒤로 팀장에게 징계를 내렸을 것이다. 솔직해졌다. 그만큼 당당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다만 짧은 분량 때문인지 그 이상의 디테일은 없었다. 비로소 남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 만큼 그녀 역시 자유로워졌다는 방증 아닐까? 죽은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틈이 생기면서 죽은 남편이 불려왔다.

그런 반면 서재희는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는 어떻게 치유되고 있는가? 아니 치유되기는 했는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 그의 상처란 무엇인가? 그가 꽃이 되지 못한, 꽃이 되고자 발버둥치고 아우성친 이유란 무엇인가? 가장 설명이 부족한 캐릭터였다. 이것저것 이야기는 많은데 정작 드라마로 보여진 부분은 항상 어딘가 아쉬웠다. 드라마의 중심답게 그나마 차봉선은 이야기가 풍부했다. 어떻게든 끼워맞출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차봉선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다 길게 가자면 지금의 디테일로서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섬세하게 점차적으로 상처를 드러내며 상처를 치유한다. 설마 원래 16부작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을 정도로 드라마의 템포는 너무 느렸다. 정히 16부작으로 끝낼 생각이었다면 그에 어울리게 보다 격정적으로 두 사람과 두 사람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더 시청자가 보기에도 설득력 있고 직접 와 닿았을 것이다. 전략의 실패다. 그래서 고작 한 회 조기종영하는데도 한 절반도 못하고 끝내는 마냥 급하고 아쉽고 안타깝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로서의 실패다.

하기는 그나마 김달(서효림 분)은 박태화(조민기 분)와의 관꼐를 위해 설명으로 일관해야 했었다. 세상에 어느 러브스토리가 이랬다 저랬다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하고 정의하겠는가? 중간과정은 생략되고 결론만 있다. 결론이 내려지고 이유가 붙는다. 구차해 보인다. 어쩌면 원래는 이 두 사람의 몫의 이야기도 있었을지 모르건만 너무 급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밀착하지 않은 채 여전히 붕 떠 있다.

보다 강렬하거나, 아니면 보다 더 디테일하거나, 그러나 디테일은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그럴 것이면 이야기를 보다 압축해서 하나로 좁히는 쪽이 나았을 수 있다. 김달도 박태화도 성가시다. 너무 주위의 이야기가 많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말한 거처럼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채 너무 디테일하게 보여졌다. 자세히 보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다지 보편적인 드라마는 아니었다. 보통의 시청자를 위한 친절한 드라마는 더욱 아니었다. 차봉선 만큼이나 자폐적이었던, 그리고 서재희처럼 외곬적인 드라마였다. 결론 역시 차라리 치유되어 보통사람으로 보이기보다 그러한 상처입은 자신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까칠하고 여전히 배타적이지만 그런 차봉선과 서재희를 주위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준다. 차봉선의 까탈에 오히려 웃으며 그런 사람임을 긍정할 수 있는 엔딩이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 재미도 있었다. 현대인은 누구나 조금씩은 우울증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만큼 상처가 깊고 많다. 상처입은 영혼들이었다.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는 가련한 이웃들이었다. 다만 드라마로서의 재미에 있어서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아쉬움이 크다.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다. 그러나 그 이전에 충분히 과정을 가지고 풀어갈만한 구체적인 단서들이 보이지 않았다. 시청자와 동떨어져 혼잣말만을 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 역시 상처입은 자신인 듯하여 흥미롭기는 하지만 많이 부족하다. 아깝다. 마지막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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