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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2.24 20:37

뿌리깊은 나무 "김구라의 욕설헤프닝과 세종대왕의 위대함..."

"이 사람"과 "이 *끼"를 구분하여 표기할 수 있게 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 부분이다. 말소리 '가'를 글자로 쓰게 되면 '가' 하나다. 그러면 '가'란 오로지 그 하나 뿐인가? 세종대왕이 위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상 글자로 쓰기는 '가' 하나지만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는 모두 다를 수가 있다. 말소리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디지털이 아닌 연속된 아날로그인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란 '가'라고 하는 특정된 소리가 아니다. '가'로 표기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유사한 소리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가'라고 표기한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단지 '가'라는 글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 년을 고생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얼핏 '가'는 하나인데 그것을 굳이 글자로 특정하기가 어째서 그리 어려운가 하겠지만 그러나 그 수많은 '가' 가운데 하나를 특정하는 자체가 대단한 일인 것이다. 무수히 많은 유사한 소리들 가운데 '가'를 분리해내고 문자로서 특정하여 표기한다. '가'를 오로지 '가'로써 듣고 '가'로써 표기한다. 그야말로 하나의 기적일 것이다.

당장 우리가 한글로 '가'라 표기하는 발음 가운데에는 영어의 'GA'와 'KA'가 있고, 일본어의 'か'와 'が'가 있다. 모두 경우에 따라 한글로는 '가'로 표기되고 발음되어지는 소리들이다. 하지만 정작 영어권의 사람이나 일본인에게 같은 '가'를 발음시켜보면 상당히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미묘함이야 말로 외국어를 원어민처럼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외국인이 말하는 어색한 발음을 얼추 알아들을 수 있다. 그 대표값인 '가'로 수정해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값은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가'일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적잖이 오류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번의 헤프닝이 그런 경우다.

이번 김구라의 욕설 논란도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무수히 많은 소리의 스펙트럼 가운데 우연찮게 "저 사람"이라고 하는 원래 의도와 "저 새끼"라고 하는 의도가 서로 일치하게 되었다. 전혀 다른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러나 무수히 다양한 아날로그적인 소리의 스펙트럼 가운데에는 이와 유사하게 일치하는 경우란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그 소리를 듣는 장치, 스피커라든가 헤드폰의 상태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다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실제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뜻으로 말했는데 그것이 또 전혀 엉뚱한 뜻으로 들리는 경우가. '가'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가'가 아닌 '아'나 '라'로 들린다. 그래서 곧잘 오해가 벌어지고는 한다. 일상에서도 흔히 겪는 일들이다. 말하는 사람이 잘못해서도 듣는 사람이 잘못 들어서도 아니다. 서로 다른 '가'의 값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특정하기까지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로가 다른 '가'를 말하고 '가'를 듣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다.

별 것 아닌 헤프닝이다. 하필 김구라였기에 더 문제가 되었을 뿐인 한 바탕 소동이라 할 수 있다. 김구라는 '저 사람'이라 말했고, 그러나 김구라였기에 그 소리가 사람에 따라 '저 새끼'라 들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세종은 '저 새끼'라 불릴 수 있는 '저 사람'을 명징하게 'ㅈ'과 'ㅓ'와 'ㅅ'과 'ㅏ'와 'ㄹ', 그리고 종성 'ㅁ'으로 특정하여 표기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소리들을 들었고, 또한 얼마나 많은 소리들을 분석했으며, 그것을 또한 얼마나 치열하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고자 노력했는가? 그것이 곧 한글이다. 소리를 분리하고 특정하고 체계화한다. 그것이 바로 문자일 것이다.

그래서 또한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글자 만큼이나 사람들의 말소리도 하나로 특정된다. 하지만 정작 글자를 쓰고 있는 당사자도 모두가 같은 값을 글자로서 표기하는 것은 아니다. 'GA'도 'KA'도, 'か'와 'が' 역시 단지 그렇게 표기하도록 되어 있으니 '가'라는 공통된 표기를 가질 뿐이다. 그래서 착각하는 것이다. '가'는 모두 같다. 모두 같은 '가'라고 하는 한 가지 소리를 낸다. 그로부터 벗어나 있으니 전혀 다른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소리값은 달라도 '가'로 특정되어지는 모든 소리는 '가'로 표기된다. 그 모든 소리들이 문자로 표기되는 '가'다. 가장 흔한 오해의 이유다.

하여튼 덕분에 세종대왕의 위대함만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필 얼마전 세종대왕과 한글창제를 소재로 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종영되었기에 더 그렇다. 아니 그랬기에 문득 이번의 헤프닝과 한글창제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저 새끼'로도 들릴 수 있는 '이 사람'을 각각의 자모로서 '이 사람'이라는 한 가지 표기로 정리했다. 단 한 사람의 힘으로. 불과 십수 년의 짧은 연구를 통해서.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저 사람'이 '저 새끼'로 들릴 수 있어도 '이 사람'으로 표기된다.
 
아무튼 그냥 일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헤프닝이다. 만일 방송이 아니었고 서로 얼굴을 마주한 자리였다면 그리 되물으면 해결되었을 문제였을 것이다.
 
"너 지금 저 새끼라고 말했냐?"
 
그러면 말하겠지.

"저 사람이라고 했어. 봐봐. 저. 사. 람. 맞지?"

필자 역시 그런 경험이 적지 않다. 하지도 않은 말로 오해를 받고, 전혀 내가 하지 않는 말로 인해 비난을 듣는다. 때로 오해가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비슷하지 않을까? 전혀 다른 뜻으로 말해도 듣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언어란 문자처럼 특정되는 것이 아닌 때문이다. 연속된 어느 지점에서 오해로 이어지는 지점과 만날 수 있다.

전혀 다른 발음의 외국인도 그렇게 '가'를 발음한다. 정확히는 '가'를 듣고 표기할 수 있게 된다. 매스미디어라는 일방향소통이 가져온 오해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바로 정정할만한 기회가 없이 먼저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간 탓에 그리 또한 특정되었다고나 할까? 오해는 오해로써 굳어지고 확정된다. 역시 아주 흔한 현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오해는 불거지고 풀어진다. 그런 헤프닝이었다.

몸이 안 좋아 한참을 자고 일어났다. 일어났더니 한바탕 헤프닝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보이고 있다. 역시 사람이라는 존재를 특정하는 단어일 것이다. "격정". '가'가 '가'로서 특정되어 표기되듯 사람이란 "격정"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분주하고 치열하다. 에너지가 넘친다. 재미있다. 흥미 또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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