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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24 08:11

로열패밀리-인간의 증명? 인간의 상실?

아이러니의 교차점, 그리고 복선...

 

어쩌면 아이러니일 것이다.

“JK에 이득이 되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내 원칙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다. 식구들에게 원망도 많았을 거고. 이제는 내 가족이자 JK의 며느리야. 애썼다, 둘째야!”

3월 23일 MBC의 수목드라마 <로열 패밀리> 7회 방송분에서 마침내 김인숙(염정아 분)은 공순호(김영애 분)로부터 JK의 가족임을 인정받는다. 사람이 아닌 ‘저것’에서, 이름도 아닌 ‘K’에서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인정받고 가족으로써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역설이랄까? 정작 공순호로부터 인간임을 인정받고 난 뒤, 그러나 손윗동서인 임윤서(전미선 분)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JK패밀리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비로소 인간임을 인정받았는데 정작 그녀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욕망에 취해, 어느새 탐욕을 위한 도구이며 수단이 되어 버린,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괴물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하기는 김인숙과 임윤서와의 싸움은 그래서 상당히 상징적이다.

“전 그게 뭔지 궁금하지도 않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봤어요. 상처는 정보가 되면 안 되니까. 뜯어고칠 수 없는 상처를 언급하는 것, 남의 상처를 사업적 정보로 활용하려고 덤비는 것, 그것만으로도 형님(임윤서)하고 구성은 실패한 겁니다.”

김인숙은 자신을 찾아와 전쟁을 선포하려는 임윤서를 이렇게 비웃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요? 형님같은 온실공주가 과연 진짜 전쟁이라는 걸 제대로 치러낼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재벌가의 딸로 태어나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라왔던 그녀에게 인간이란 단지 가진 것을 지키고 키우기 위한 수단이며 대상에 불과하다. 오로지 가진 바 부와 권력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 모든 것을 수단이며 대상으로써 보고 있는 그녀에게 인간이란 피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깊은 내면부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고통과 고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적당히 밟혀 봐야 근력도 생기고, 미친 듯이 뛰어 봐야 폐활량도 늘죠. 양손에 떡을 쥐고 저울질하는 공주님과 벼랑끝에서 배수진을 친 사람과 누가 더 승산이 있을까요?”

그녀가 딜랑의 사장 피에르 바뱅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내가 그러니까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고, 아는 척하는 것도 싫고, 배려하는 것도 도와주는 것도 싫고, 그냥 처음부터 없었으면 하는 잊고 싶은 상처. JK를 다 준대도 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

친자매인데도 오가는 이야기란 오로지 구성그룹의 이익 뿐이다. 구성그룹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친자매 사이에서도 서로를 내칠 수 있다.

“언니가 JK그룹 첫째며느리이기 이전에 구성그룹 큰딸이라는 거 잊지 마. 언니도 구성 주주야.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구성에서 언니가 가진 지분가 지위 다시 생각해 볼게.”

결혼을 했지만 남편 조동진(안내상 분)과의 사이에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편 조동진이 바람을 피웠는데도 바람을 피운 그 자체보다 그 대상의 격이 낮은 것이 더 화가 난다.

“사람 참 외롭게 하는 재주가 있어요.”

“어디 당신만 하겠어?”

조현진(차예련 분)이 한지훈(지성 분)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한 말 그대로, JK든 구성이든 이미 개인이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적인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JK라고 하는 기업이 있고, 구성이라고 하는 부와 권력이 있고, 그 구성원들마저 그를 위한 하나의 부속품처럼 존재할 뿐이다. 항상 의심하고, 감시하며, 언제라도 버릴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결혼을 하고서도 온전히 한 가족이 되지 못하고, 시가인 JK와 친정인 구성 사이에서 입장을 저울질하며 어느 한 쪽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다.

“누가 낙점되든 한 쪽에는 축하합니다, 한 쪽에는 미안합니다 하면 되는 거야. 한 마디로 모르는 척 해!”

어쩌면 당연하게 들리는 남편 조동진의 말에 임윤서가 비웃음부터 흘리는 이유다. 일반의 개인이라면 당연한 말이지만 구성의 딸이자 JK의 며느리인 임윤서에게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JK의 총수 공순호가 자신의 큰아들 조동진을 불신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 것이다. 임윤서가 조동진을 경멸하는 바로 그 이유처럼 조동진은 JK를 위한 도구이자 수단으로써 그다지 적절치 못하다. 의외로 JK패밀리 가운데 조현진과 더불어 가장 사람냄새가 나는 캐릭터가 바로 조동진이다.

아무튼 그렇게 개인으로서 한 번도 존재해 본 적도 없고, 더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부와 권력을 한 몸에 누리며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도 없다. 인간이란 그렇게 자기 자신처럼 피상적이고 표면적이다. 딜랑 사장 피에르 바뱅의 아들이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을 당장 사업에 이용하려고 든 것은 마치 반사적으로 그렇게 배우고 훈련받아온 그대로 어느새 구성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심지어 도청까지 하는 그녀의 모습과 닮아 있다. 말 그대로 기계다. 부속이다. 개인의 판단 없이 피상과 표면으로서만 존재하는 객체다. 사람과 기계의 싸움은 이미 승부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피에르 바뱅이라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임윤서와 임윤희는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김인숙은 임윤서와 임윤희 자매의 실패를 유도하여 그것을 딛고 목표한 바를 이룬다. 김인숙의 전략도 스스로 잘해서 피에르 바뱅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임윤서 자매의 실패를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오히려 총집사 엄기도(전노민 분)를 움직여 김인숙을 도청하려 한 임윤서는 그러한 김인숙의 의도에 넘어가 휘둘리고 만 꼴이다. 사람을 읽는데는 김인숙이 그들보다 한 수 위였다.

“묘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달까?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것도 같구요.”

그것을 말하자면 인간과 괴물의 싸움이었다 할 수 있다. 부와 권력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아닌 인간과 인간으로서 살아온 인간을 아는 인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흔히 이야기에서 흔히 쓰이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원리 그대로 싸움은 인간의 승리로 끝나게 도니다. 탐욕에 찌들어 인간을 상실한 이들은 패배하고, 인간으로써 인간을 이해하는 이가 승리한다. 너무나 당연한 법칙이다. 그래서 임윤서가 마침내 김인숙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시청자의 입장에서 자못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이미 승리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번에는 더 큰 함정을 가장 큰 성공의 뒤에 숨겨둔다. 그 자체가 가장 큰 반전이며 복선이다. 이미 그녀 자신도 임윤서 자매처럼 피에르 바뱅의 개인사를 개인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용해 임윤서를 굴복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승리를 거두고 김인숙은 JK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JK에 이익이 되는 자, JK라고 하는 욕망에 봉사하는 이로 인정받는다. 그것은 김인숙이 무엇보다 바라던 것이다. 그 한 가지를 위해 18년을 인내하며 살아왔고, 꾸준히 준비하며 지금도 싸우고 있었던 터였다. 괴물을 만드는 바로 그것을 김인숙은 비로소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아니 그녀가 차지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그것에 먹혀버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개인의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을 사업에 이용하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을 어기는 모순을 범함으로써. 임윤서를 쓰러뜨리는 순간 그녀 자신이 임윤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임윤서의 모습은 앞으로 그녀의 모습이 될 터였다.

“내가 그러니까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고, 아는 척하는 것도 싫고, 배려하는 것도 도와주는 것도 싫고, 그냥 처음부터 없었으면 하는 잊고 싶은 상처. JK를 다 준대도 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

한지훈이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곰인형을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 그 순간 공항 입국장을 통과하고 있었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은 그가 누구인가를 알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내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는 바로 그 비밀일 것이다. 임윤서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김인숙의 치명적인 약점. 바로 불행과 비극의 반전을 예고하는 것일 터다. 이제까지의 선량한 피해자에서 그녀 역시 괴물로 바뀔지 모른다. 원작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목하는 것이다. 어느새 김인숙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JK패밀리의 조현진에 대해서. 그녀의 변신은 정말 놀랍다.

“올케 사람 한 번 만들어 보자구요.”

“난 믿어본 적도 버려본 적도 없는데 그러기도 전에 좀 무서워요. 이 정가원 안에서 핏줄도 아닌데 제일 가족같은 사람들이 생긴 거잖아요.”

한지훈에게 자기를 여자로 봐줄 남자가 생기지 않을까 설레이며 묻는 표정은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해맑다. 한지훈에 대해 버릴 준비도 함께 하라는 공순호의 요구에 대해 오히려 한지훈과 김인숙에 대해 JK의 누구보다도 가족같은 사람들이라며 신뢰를 보이는 그 모습은 차라리 극 초반 한없이 선량하게만 보이던 김인숙의 모습을 닮아 있다. 김인숙이 임윤서를 밟고 JK라는 괴물에게로 다가간다면, 조현진은 거꾸로 한지훈과의 관계를 통해 JK라고 하는 괴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모습을 갖춰간다고나 할까?

과연 이같은 관계의 역전은 앞으로의 극의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김인숙은 괴물이 되어 가고, 조현진은 어느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지훈은 그리고 JK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이다. 그는 심판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미 예고된 복선에서 한지훈과 조현진, 그리고 한지훈과 김인숙, 나아가 김인숙과 조현진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되어 나갈 것인가.

김인숙의 승승장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미 예고편에서 바로 오늘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차라리 지난주의 6회와 어제 3월 23일의 7회가 김인숙에게는 극중 유일한 구원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며 목적한 바까지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결코 김인숙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녀에게 인간으로서의 증명을 요구하며 계속해서 시련을 부여할 것이다. 그녀는 무엇으로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할 것인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위해서?

욕망을 사로잡혀 인간이기를 잊어가는 군상들과, 바로 그들로부터 인간이기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겁먹은 가련한 영혼. 그녀가 얻는 것은 과연 인간으로서의 증명인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상실인가? 어느새 인간이라는 사실마저 잊어가는 임윤서의 모습에서, 그녀를 짓밟고 어느새 자신이 그 모습을 닮아가려 하고 있는 김인숙의 모습에서. 그녀가 가려는 길은 무엇이고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불길하고 음험한 향기가 벌써 오싹해져 온다. 그렇게 이야기는 중첩되어 가려져 있다.

극의 흐름이 숨가쁘다. 마치 폭포수처럼 이야기를 한꺼번에 쉼 없이 쏟아놓는다. 땅이 울리고 물보라가 사방을 적신다. 가슴이 쿵쿵 울리는 것 같다. 공순호 역의 김영애의 카리스마며, 더구나 김인숙을 맡아 그녀의 이중적이며 모순된 모습과 그녀의 변신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염정아의 연기력이 놀랍다. 그 두 가지만 보인다. 아니 염정아 한 사람만 보인다. 이제 곧 드러나게 될 비밀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따라가기조차 벅차다. 기대하기조차 미련스럽다.

아직 풀어놓지 않은 것들이 많다. 김마리(김인숙)의 과거를 아는 듯한 캐리 김의 존재. 그리고 JK를 수사하고 들어가는 한지훈의 친구 검사 강충기(기태영 분), 새로 등장한 의문의 청년과, 무엇보다 김인숙과 한지훈, 조현진의 바뀌어가는 개인과 변화해가는 관계들. 한 회 한 회가 다음을 위한 복선이며 전체를 위한 몽타쥬다. 배우 하나까지 퍼즐의 조각처럼. 아직도 두근거리는 이유다.

수요일 목요일이면 약속을 잡지 않은 지도 꽤 되었다. 저녁 10시면 어김없이 집에 들어와 TV앞에 앉는다. 좋아하는 술도 않는다. 컴퓨터도 잠시 잊는다. 나를 집중하게 만드는 시간. 그야말로 악마의 유혹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기다림마저 흥분의 여운으로 짜릿하다. 여전히 열기로 뜨겁다.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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