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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23 08:59

강력반 - 강력반 연가 or 강력반 러브스토리?

수사는 뒷전인 수사드라마!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같은 패턴이다. 지난 3월 21일과 22일 KBS의 월화드라마 <강력반>의 5회와 6회에서도, 사건이 일어나고, 수사에 들어갔더니 관련자들이 경찰 윗선과 닿아 있고, 그래서 사건수사와 함께 경찰조직과도 싸워야 한다. 박세혁(송일국 분)과 허은영(박선영 분), 박세혁과 조민주(송지효 분), 정일도(이종혁 분)와 허은영, 그리고 경찰의 고위층과 정일도, 정일도와 박세혁, 허은영의 주위...

사건은 항상 뒤다. 아니 사건 자체도 굳이 수사가 필요없이 매우 단순하다. 차수연 사건에서도 이미 시작단계에서 윤성희(추소영 분)의 범죄사실은 거의 드러난다. 수사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수사를 방해하는 경찰조직과 그 경찰조직과 닿아 있는 윤성희의 모친, 그리고 사건의 이해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허은영과의 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아마 그것이 아니었다면 사건은 조기에 종결되지 않았을까?

윤성희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추리나 수사 없이도 CCTV만으로도 어느새 스태프 가운데 한 사람인 김영태가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른다. 김영태가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이준수를 통해 입수한 차수연의 다이어리를 통해 ‘오빠’라 쓰여진 인물이 김영태임을 확인하면서, 김영태가 결정적으로 범인이라는 사실도 김영태의 집을 찾으면서 간단히 드러난다. 수사라고 해봐야 5회와 6회 통틀어 한 회 분량이나 채울 수 있을까? 그래서 김영태 잡는데 일을 한 번 꼬느라고 윤성희 모친에게 사주받은 흥신소가 등장한다.

사건과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어떤 다른 이야기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를 통해 정일도는 허은영과 만나고, 박세혁도 허은영과 만나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고, 조민주와 박세혁도 만나 러브라인을 이어간다. 사건이 일어났다고 범죄자를 찾아 추적해 잡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방해하는 경찰조직과도 마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경찰과 싸우고, 경찰과 연결된 관련자들과 싸우고, 그리고 서로 사랑도 하고. 단지 사건은 그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드라마에 대해 수사드라마라기보다는 정치드라마이며 치정드라마라 여기고 마는 이유다.

그나마 조금은 그것이 고도의 트릭이며 복선이기를 바랬었다. 윤성희가 사건이 일어나기 2분 전에 119에 사건을 신고해 접수했다고 했을 때. 이건 너무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야말로 설정을 위한 설정이라 여겨졌다. 사람을 죽이려 청산가리까지 쓴 - 그조차도 이준수의 입을 빌어 청산가리가 무언지도 모르는 무지로 포장되고 있었다. 청산가리는 일반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독이다. 먹으면 죽는다. 하긴 사건이 일어나자 신동진(김준 분)은 팀장 겸 과장인 정일도에게 청산가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친절이 너무 지나치다. -심지어 청산가리를 직접 입수하게 되는 과정에서 청산가리에 대해 여전히 전혀 모르고 있었을 개연성은 대체 얼마나 될까?

“도대체 이 이상 뭘 어떻게 하라구요?”

더구나 말이 안 되는 것이, 이준수에게서 차수연의 다이어리가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 다이어리를 윤성희로부터 입수했다고 하고, 그것을 빌미로 1억이라는 돈을 받아낸 정황도 있다. 이준수의 증언으로 윤성희가 차수연의 사인인 청산가리에 대해 물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그 쯤 되면 확실히 윤성희가 범인인 것 같다.

하지만 정황은 증거가 아니다. 정황이 증거일 수는 없다. 증언이 있다고 과연 이준수가 사실만을 이야기했다고 누가 보증하는가? 이준수의 증언 내용이 모두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일 것이라고? 어떤 다른 의도에 의해서 그렇게 증언을 꾸며내는 것이라면? 그래서 실제 수사에서도 증언과 함께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증언에만 의존하다 뒤집히는 경우란 또 얼마나 많은가.

하긴 이 또한 반복되어 나타나는 문제다. 지난주에도 마찬가지였다. 성형외과 의사가 살해당했을 때 관계자들이 증언하면 그 증언을 바탕으로 수사가 이루어진다. 그 증언이 사실이라는 전제 아래, 아니 실제 모든 증언은 거의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관련자의 증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수사란 그만큼 수사관들의 노력을 덜어준다. 모든 증인이 사실만 이야기한다면 경찰관이 바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건 단지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할 뿐이야!"

냉철하게 사실만을 추적해 밝혀내라는 정일도의 말이 오히려 매정하게까지 들리는 것은 역시나 그만큼 드라마가 붕 떠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세혁의 정의감이 드라마를 지배한다. 미리 추측하고 단정하고 그에 맞춰 풀어가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진실이 밝혀진다. 엄밀한 이성적 추리나 합리적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좌충우돌하는 정의감에 의해서. 마치 어린이대상의 영웅물에서처럼. 정의의 영웅 앞에 사건이 복잡하거나 어려울 이유가 있겠는가. 박세혁의 이야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저히 수사드라마가 아니다. 아니 수사드라마이기는 하다. 수사드라마이기는 한데 경찰서 강력반을 배경으로 그 강력반에 존재하는 마치 배트맨과 같은 안티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영웅드라마다. 정의하자면 수사영웅드라마라고나 할까? 그래서 일전에도 경찰영웅판타지라 정의했던 것이었다. 반영웅이 영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씁쓸한 현실의 일면이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덕분에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서도 전혀 어떤 흥미나 호기심도 느끼지 못했었다. 사건이 - 더구나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도대체 그 범인이 누구이고 동기가 무엇인가? 하지만 시작단계에서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범인마저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고 반전 또한 없었다.

차수연의 뺨을 때리던 손에서. 조민주와 박세혁의 주위를 서성이던 모자쓴 남자의 모습에서. 메이드복을 입은 배우가 조민주의 곁을 스쳐가고, 박세혁의 앞에서 불한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에서 차수연 사건의 범인이 윤성희임이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손과 모자쓴 모습은 차수연과 관련한 범인이거나, 이후 윤성희가 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했을 때 그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추측이다. 그리고 추측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물론 이것은 수사드라마의 가장 정석적인 기법 가운데 하나다. 미리 복선으로 여러 인물을 보여주고 그 가운데 범인이 있음을 예고하고 청자로 하여금 추측케 하는 것이다. 다만 그런 경우 이미 범인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다양한 정교한 장치를 통해 판단에 혼란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부족했다. 처음부터 너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역시 다른 주변의 이야기로 분주한 드라마의 한계일 것이다. 사건과 수사에 대해 할애할 수 있는 부분은 고작 이런 정도다.

제목도 <강력반>, 드라마 소개에서도 ‘개성 강한 강력계 형사들이 각자의 수사 특기와 노하우로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정작 강력반에 소속된 남태식(성지루 분), 진미숙(선우선 분), 신동진 등은 도대체 뭐 하는 캐릭터인지조차 모르겠다. 과연 이들 형사들의 개성이나 특기란 무엇인가? 하긴 말했듯 수사 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까. 사건은 뒷전이고 정일도와 박세혁을 중심으로 한 조직과의 싸움과 주변의 이야기가 주일 테니까.

시청자를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이제 와서는 <강력반>이라는 제목부터가 시청자에 대한 기만으로까지 여겨진다. 차라리 <강력반연가>라거나 <강력반러브스토리>라 제목을 붙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수사드라마를 천명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화가 날 정도다. 그저 화면만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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