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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2.06 08:14

천일의 약속 "이서연의 드라마, 김래원의 고민..."

알츠하이머라는 병 앞에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는 타인일 뿐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김래원에게 박지형이라는 캐릭터는 상당한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워낙 노향기(정유미 분)의 캐릭터가 비현실적으로 착하게 묘사되고 있기에, 그녀와의 파혼과정에서도 들어야 했던 비난이 적지 않다. 그런데 겨우 이서연(수애 분)과 결혼을 하게 되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다.

순애보일 것이다.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마음을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여주는가? 알츠하이머라고 하는 현실 앞에서 박지형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여자 이서연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을까? 무엇으로서 박지형은 자신의 진심을 증명할 것인가?

"잘난 척 그쯤 하고 가, 아무 상관없어!"

그것은 이서연 내부에서 일어나는 균열이며 붕괴다. 이서연 내부에서 이서연이라는 인간이 그녀의 기억과 더불어 서서히 무너져가고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겉으로 드러나는 병이라면 병구완이라도 정성들여 해 줄 수 있을 테지만, 이서연 안에서 이서연이 사라지는데 그것을 박지형이 어찌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박지형만이 아니라 동생인 이문권(박유환 분)도, 사촌오빠인 장재민(이상우 분)도, 고모도,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치료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대해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약으로 늦출 수 있다고 하지만 그 한계란 너무나 분명하다. 어느 순간 자신을 잊고, 심지어 인간이라는 것도 잊고, 살아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말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자신조차 아니게 된 채 죽어가게 될 것이다. 의사조차 도와줄 수 없는 병. 의사조차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병이 바로 알츠하이머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뿐. 그저 스스로 무너지고 파괴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주는 것 뿐이다. 그런데 설사 결혼을 하고,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었다고, 박지형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앞으로는 박지형의 지순한 사랑에 대한 이서연의 리액션조차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 박지형마저 잊고 자기 자신마저 잊게 되었을 때 박지형의 사랑은 외사랑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자기의 아이가 태어나는데도 정작 자기의 아내는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것도, 그를 위해 이토록 올곧이 마음을 다하는 것도. 그의 인내와 희생에 대해서도. 알츠하이머로 인한 이서연의 비극이 깊어질수록 박지형은 자칫 주변으로 남기 쉬울 것이다.

아마 전환점이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병을 앓고 있는 이서연이 중심이다. 병을 스스로 느끼며 좌절하고 절망하며 분노하는 이서연 내면의 소리가 드라마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서연의 비극이 깊어질수록 그 소리 또한 커지고 절절해진다. 더욱 시청자의 관심은 이서연의 외침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는 박지형은 단지 방관자로서 이서연이 스스로 무너지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역할에 지나지 않게 된다. 어느 순간 박지형이 전면으로 나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스스로 병과 싸우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서연을 대신해, 병을 앓고 있는 이서연과 싸워야 하는 박지형의 모습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그러고 나서야 박지형은, 드라마는 비로소 완성된다. 아마도 그것은 이서연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신을 잃어가는 순간이 아닐까?

이제까지는 이서연이 절망했다. 이서연이 좌절하고, 이서연이 분노했으며, 이서연이 울부짖었다. 박지형은 단지 그녀의 상대로써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박지형이 절망해야 한다. 좌절하고 분노하며 울부짖어야 한다. 그가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 그 눈물을 닦아준다. 아직 그는 아무것도 절망한 것도 좌절한 것도 없다. 분노도 원망도 없다. 진심이란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지형은 여전히 이서연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동화에서처럼 단 한 번도 원망도 의심도 없이 올곧이 사랑하는 드라마여도 좋을 것이다. 요즘은 그런 순애보 드라마가 드물다. 하지만 역시 몇 번이고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끝끝내 이겨내는 드라마가 좋지 않을까? 하기는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다. 전체 20부작 예정인데 벌써 15회다. 박지형으로서는 그저 이서연을 사랑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기에도 남은 분량은 너무나 부족하다. 동화인 것일까?

그러고 보면 노향기부터가 상당히 동화적이다. 올곧으며 다정한 사촌오빠 장재민이나, 역시 올곧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박지형의 어머니 강수정(김해숙 분)이나,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역시 올곧은 성품의 오현아(이미숙 분) 역시, 박지형의 아버지 박창주(임채무 분)도, 노향기의 아버지 노홍길(박영규 분)도 어쩐지 그린 것 같지 않은가? 괜하게 캐릭터를 묘사하느라 분량을 할애할 필요가 없어 이야기가 상당히 찰지고 풍성하다. 이렇게까지 등장인물들이 올곧게 묘사되는 드라마도 드물 것이다.

"저는 바보같은 제가 좋아요. 주욱 이렇게 살다가 죽을래요."

그렇게 상처입고 아파하면서도 여전히 상대를 위해, 또한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 상대의 상대를 위해 마음을 써줄 수 있는 자신에 만족한다. 가장 궁극의 이타란 이기일 것이다. 자기가 좋아서. 자기가 만족해서.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정작 박지형을 위해, 이서연을 위해 기도를 하지만 그러나 그녀가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자기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이러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 노향기의 머리 뒤에서 광채가 나며 등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그러나 그 비현실적인 선량함이 이름처럼 좋은 향기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드라마에서라도 이런 캐릭터가 한 사람 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동화인 것이다.

아무튼 결국 알츠하이머라는 자체가 드라마를 이서연의 모노드라마로 여기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서연과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노향기와 주위의 이야기를 제한다면, 아니 그조차도 결국은 이서연과 마주하게 되리라. 그녀의 무너져가는 자아와 함께. 그녀의 사라져가는 존재와 더불어. 하나하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기억 가운데 앙상하게 드러나는 손가락처럼. 손가락마저 물에 잠겨 보이지 않게 된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이서연의 이야기일 테니까.

마침내 알츠하이머로 인해 회사에서마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무엇보다 회사에 대한 미안함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로 더 이상 회사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하나 있을 자리가 사라져가는데, 그럴수록 더욱 소중한 것이 사랑하는 박지형의 곁일 것이다. 그것은 또 언제까지 그녀의 곁에 남아 있을 것인가? 그녀는 언제까지 박지형으로 인해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행복할 수 있는 동안에는. 박지형의 짐이 그만큼 무겁다. 그리고 어렵다.

수애를 정말 오랜만에 집중해 보게 된 것 같다. 매력적이고 연기도 훌륭한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에서의 존재감은 정말 대단하다. 문예적이며 격정적이고 사랑스러우면서 치열하다. 그것을 묘사해내는 작가 김수현의 대사는 김수현의 대사 그대로일 것이다. 거의 이서연의 드라마라 할 수 있는 드라마를 혼자서 너끈히 짊어지고 나아가고 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비극은 더욱 깊어진다.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이서연 자신, 모두는 단지 이서연을 통해 그 비극을 보게 될 뿐이다. 그럼에도 그 비극을 통해 희망을 보게 될 것인가? 비극 속에서도 박지형의 사랑은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동화이기를. 기대해 본다.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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