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8.21 08:24

[김윤석의 드라마톡] 어셈블리 12회 "25시간 필리버스터와 영웅탄생, 카타르시스"

눈높이 감동,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을 위한 필사의 메시지

▲ '어셈블리'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셈블리.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모자라서 안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같이 진상필(정재영 분)보다 많이 배우고,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도 벌써 자기 분야에서 많은 것들을 이룬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진상필처럼 될 수 없었다. 되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

결국 국회의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치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국민이 아니라 여긴다. 유권자가 아니라 여긴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순간 다른 존재가 되었다 여기고 만다. 그래서 태연히 국민을 볼모로 삼고 만다.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할 정치인이 그것을 아예 기정사실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방치하겠다는 뜻인가.

국회의원에게는 일반국민과 다른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정치인에게는 평범한 유권자들과 다른 윤리와 도덕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법을 어긴다고 잘못이 아니다. 국민의 보편적 정의와 도덕에 위배되더라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더 큰 일을 해야 한다. 더 가치있는 일들을 해야만 한다. 그에 비하면 그만한 잘못쯤은 사소할 뿐이다. 국민들은 크게 여기는데 정작 정치인 자신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만다. 그 안에 있으니 그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

진상필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단한 논리나 주장도 없다. 거창한 이념도 지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렇다할 정책이나 법안 또한 내놓고 있지 못하다. 국회의원으로서 사실 거의 빵점에 가깝다. 자격미달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니 어쩌면 국회의원답지 못한 국회의원이기에 가지는 장점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똑똑한 만큼 말도 잘하는 정치인들이지만, 그러나 결코 그들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런 복잡하고 휘황한 수사들은 진상필이 살아온 환경과 맞지 않다. 보다 직관적이고 간명한, 진실한 언어만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냥 나쁜 놈은 나쁜 놈이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아이들의 눈이 무섭다. 딸의 반친구들이다. 아이들의 눈에 어른들은 어떻게 비치는가. 어른들이 만든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어차피 정치인이란 다 도둑놈이다. 자신이 보좌관으로 임명한 오랜친구 변성기(성지루 분)조차 그런 말을 한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다 차이가 없다. 그래서 포기하자는 것일까? 현실이라고 체념하고 말자는 것일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자신의 아이를 나쁜 기로 이끌려는 나쁜 놈을 만났을 때 부모가 보일 행동은 너무나 분명하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국회의원이기보다 그는 한창 예민할 나이의 딸을 가진 한 아버지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 나쁜 놈을 혼내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역시 드라마에는 이런 영웅이 필요하다. 전혀 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하다. 멋지고 세련된 것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무식하고 무모하다. 때로 감정적이고 거칠다. 하지만 필요한 말을 해준다. 듣고 싶은 말을 들려준다.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다. 기꺼이 희생한다. 말이 25시간이다. 한 시간만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서있어도 무릎이 온통 비명을 질러댄다. 한 시간만 계속 떠들고 있어도 입이 마르고 목이 갈라진다. 단상에서 내려와서는 안되니 화장실도 못가고, 연설이 끊겨서는 안되니 무언가를 먹을 수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수면욕조차 참고 견뎌야 한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진상필이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것, 그러나 현실에서 결코 지킬 수 없었던 그것일 터였다. 어느새 포기하고 체념해가던 정의를 홀로 아무도 하지 못할 단순하지만 무식한 방법으로 지켜내고 만다. 현실에서도 저런 국회의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유권자의 심리란 이중적일 것이다. 자신을 대신할 정치인을 바라면서도 자신과는 다른 정치인을 기대한다.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며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같은 것들을 추구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위치에서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전혀 다른 것들을 느끼며 전혀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현실에서 이룬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유교적인 권위주의에 익숙한 유권자들은 자신보다 훨씬 나은 훨씬 대단하고 거창한 인물을 선택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유권자 자신과 유리되어 있기도 하다. 실제 현실에서도 진상필과 같은 인물이 후보로 등록하고 출마한다면 유권자들은 표를 줄 것인가. 진상필과 같이 국회에서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를 지지해줄까? 하지만 그럼에도 결여는 굶주림을 낳고, 굶주림은 탐욕을 부른다. 어차피 드라마속 인물이다.

덕분에 백도현(장현성 분)과 박춘섭(박영규 분)의 위치와 역할이 모호해졌다. 그나마 백도현은 진상필과 경제시 출마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일 것이다. 여러차례 진상필에 의해 추진하던 것들이 좌절되면서 청와대의 압력때문에라도 대립하지 않을 수 없다. 진상필의 적이다. 그러나 박춘섭은 적극적으로 진상필과 적대한 적도 없고, 굳이 진상필과 부딪힐만한 이유나 동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진상필의 적도 백도현이고, 박춘섭이 가장 신경쓰는 것도 백도현이다. 들러리로 전락해 버린다. 박춘섭 자신의 말처럼 드라마에서도 진상필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진상필 영웅만들기의 들러리로 전락해 버린다. 앞으로도 여전히 백도현과 대립하며 진상필을 이용하려 계략을 꾸미는 노회한 책략가의 모습을 지켜낼 것인지.

아무튼 카타르시스였다. 특히 22시간째를 넘어가며 태블릿의 배터리가 다하나 즉흥적으로 자신이 일일교사로 갔던 딸의 반 학생들이 보내온 엽서를 읽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었다. 마지막 10분을 남기고 국회속기사에게 건넨 마지막 한 마디는 진상필이 그처럼 필사적이어야 했던 이유를 보다 명확히한다. 타협하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았다. 끝까지 지키려 했었다. 아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세상을. 정의롭고 향기로운 세상을.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만들 책임이 있는 어른으로써. 자신들이 만들 미래가 아이들에게는 현실이 된다. 설사 실패했더라도 그것은 어른들의 뜻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한, 아니 그런 아이들에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싶은 모든 어른들을 위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어른들 자신은 과연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조금은 신파이고 조금은 통속적이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는지 모른다. 강동이 필요하다. 공감이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너무 현실적이었다. 너무 메말라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의 정치란 혐오와 환멸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분노를 넘어서 절망하고 체념해 버렸다. 구원을 찾는다.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렇게라도 만족을 얻으려 한다.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대중을 위해 봉사한다. 진상필은 멋졌다. 

물론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기에는 백도현의 이름값이 아까울 것이다. 마지막까지 진상필과 싸워야 할 적이다. 김규환(옥택연 분)이 돌아섰다. 김규환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어떤 식으로 공격할까? 그것을 또 어떤 식으로 극복할까? 드라마는 더 깊어진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