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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2.02 08:33

나도 꽃 "서재희의 오열, 차봉선의 눈물, 그리고 박화영의 증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고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간다. 살아가려 한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누구나 하나씩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모두는 바란다. 위로받기를. 누군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쓰다듬어주기를.

화해하고 싶다. 영영 상처를 안은 채 아파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길용우 분)에게 따져묻고, 생전 찾지 않던 어머니(김지숙 분)를 찾아가 이유를 묻는 것은 그래서다. 착한 아이이고 싶어서. 먼저 화해하고 용서하고 칭찬받고 싶다.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

끝끝내 차봉선(이지아 분) 앞에서 서재희(윤시윤 분)가 오열하고 마는 이유다. 그가 바라던 것이었다. 그가 그리도 듣고자 했던 것이었다. 듣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차봉선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박태화(조민기 분)가 말하지 않던가. 상대에게서 자기와 같은 공통점을 찾게 된다고. 그것은 서재희가 아닌 서재희 안에 있는 차봉선 자신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위로였던 셈이다. 그것이 더욱 그녀를 위로받고자 매달리도록 만든다.

차봉선은 서재희를 위로하고, 서재희는 차봉선을 위로하고, 그래서 둘은 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서재희가 차봉선에게 집착하게 된 것은 차봉선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류로써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다. 자신의 상처를 알아주고 감싸줄 수 있다. 박화영(한고은 분)은 서로의 상처를 일깨우고 돌이키게 만드는 존재이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박화영의 분노가 깊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서재희를 용서하면서 시작된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이며 증오다. 어째서 그렇게 쉽게 서재희를 용서했던 것일까? 충분한 과정도 없이, 납득할만한 절차도 없이, 그녀는 단순히 살기 위해 서재희를 용서했다. 그런 서재희가 자기와 아이에게 보이는 선의조차 그래서 그녀를 분노케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것이 박화영이 그에게 바라던 것이 아니다.

영원히 자신에 종속된 채 함께 고통받기를 바란다. 상처를 함께 일깨우기를 바란다.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가 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가 타인에게로 투사된다. 젊음에 대한 질투, 싱그러움에 대한 증오, 하지만 그보다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이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그렇게 증오의 감정으로 표출된다. 상당히 위험한 상태다. 뭔 짓을 할 지 모른다. 사람이 가장 위험해지는 것이 바로 자기연민에 빠질 때다. 자기연민은 자기혐오를 동반한다.

오히려 박태화와 김달(서효림 분) 사이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김달은 꿈속을 살고, 박태화는 그 꿈을 헤집는다. 의외로 잘 어울릴 것 같은 커플이 바로 이들 커플이다. 어차피 그녀에게 서재희에 대한 다른 감정이 있을 리 없으므로.

서로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우연에 이끌려 사랑하고, 그리고 마침내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갈등하고 헤어지고, 그로 인해 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우연히 일어난 사건에도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게 된다. 결국 그것이 삶이 아닌가. 차봉선이나 서재희나 박화영이나, 어느새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 증오란 그들의 거울이 아닐까?

사실 대단할 것도 없는 것인데. 함께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그리고 마주보며 밥을 먹고. 함께 먹는 한 끼 밥으로도 사람은 많은 것을 치유할 수 있다. 사람이란 외로운 까닭이다.

어쩐지 보고 있으면 스산하도록 외롭다. 그러면서도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은 치유가 있는 때문일 것이다. 아파하고 아파서 비명을 지르면서도 낫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로 인해 더 아파하게 되더라도 상처를 낫우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이니까.

드라마로서는 상당히 통속적인데 캐릭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시대의 초상이다. 사회의 초상이다. 꽃이 되고자 하는. 아직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은 몸짓.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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