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7.29 08:42

[김윤석의 드라마톡] 너를 기억해 12회 "살인자는 살인자로, 마침내 형제가 만나다"

의외도 반전도 없는 너무나 쉬운 선택, 오해를 차라리 아쉬워하다

▲ '너를 기억해' 공식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현대추상화의 창시자인 칸딘스키는 어느날 우연히 화실에 거꾸로 놓여 있던 자신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바로 놓인 것보다 오히려 거꾸로 놓인 것이 더 아름답다. 어쩌면 단순한 선과 색의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해였다. 전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오해에 이끌리고 있었다. '너를 기억해' 이현(서인국 분)은 연쇄살인범 이준영(최원영 분)과 동류였다. 아버지 이중민이 두려워한 그대로 장차 이준영과 같은 연쇄살인마가 될 수 있는 끔찍한 재능이 그에게는 잠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현은 이준영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실종되었던 동생 이민이 살인자가 되어 이준영과 함께 나타나고 있었다. 도대체 그 사이 그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러나 아니었다. 이현이 아닌 이민이었다. 이중민이 보았던 불길한 흔적들은 이현이 아닌 이민이 남겨놓은 것이었다. 이준영 역시 이현이 아닌 이민을 찾아간 것이었다. 아버지 이중민이 살해당하는 사이 이민은 혼자 도망쳐서 몰래 이준영의 차에 숨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실종되어 있던 사이 이준영에 의해 끔찍한 살인자로 길러져 다시 이현의 앞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최초의 프로파일러이기도 했던 아버지 이중민조차 두려워하던 살인자의 자질이 살인자를 만나 완벽하게 꽃을 피워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아버지와 같은 프로파일러의 길에 들어선 형 이현이 막아서지 않으면 안된다. 이민의 배후에는 그토록 찾아헤매던 이준영이 숨어있다.

다시 말해 이현은 처음부터 자신이 괴물이 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이현이 갈등하거나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히 이준영과 이민에게도 그런 것은 해당사항이 없다. 순리란 이렇게 명확하다. 그림자조차 없다. 그늘조차 없이 말끔하다. 남은 것은 프로파일러인 이현이 특수범죄수사팀과 손을 잡고 이준영을 잡고 동생 이민을 막는 것 뿐이다. 그동안 의미를 부여하며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살인자인 이준영을 잡아 복수도 하고 잃었던 동생도 찾는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새삼 이준영의 정체를 궁금해 할 정도로 이준영을 그리고 있지도 않았다.

아마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오죽하면 이준영 자체보다 이준영을 찾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이후 밝혀지게 될 배경등이 더 중요할 것이라 여겼겠는가. 드라마의 발단이 되고 있는 20년 전의 살인을 제외하고 지금 이준영은 이렇다 할 눈에 띌만한 사건을 일으키고 있지 않다. 시체없는 살인의 함정이다. 시체가 없으니 사건도 없다. 인지하지 못하니 인상도 없다. 오히려 살인자로서는 정선호라는 이름으로 이현 앞에 등장한 동생 이민 쪽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더구나 그조차 형 이현과 다시 만난 자리에서 흘린 눈물들에 어느새 연민과 동정으로 바뀌고 만다.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형에게 버려졌다 여긴 채 연쇄살인마 이준영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야 했다. 인정을 앞세우면 단죄하기도 상당히 무리한 상황이 된다.

다시 만난 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원망까지 쏟아낼 정도면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 순간에조차 무심하고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그리워한 피붙이가 아닌 단지 한때 형제였던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정상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은 공포가 되고 혐오가 된다.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오히려 더 큰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이민을 이현은 끝까지 지키려 했고, 그러나 끝내 지키지 못했다. 이현의 눈물과 이민의 외침이 그동안의 시간을 그것으로 마무리지어 버린다. 다시 동생 이민을 찾아간 형 이현의 모습을 보며 피곤함마저 느낀다. 시청률을 생각한다면 분명 이해하기는 쉽다.

역시 이준영을 조금 더 키웠어야 했다. 당장 이준영과의 거래로 범죄정보를 넘겨받아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현지수(임지은 분)가 있었다. 이렇다 할 신고도 증거도 없지만 경찰의 일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때로는 거래로 유혹하고, 때로는 잔인한 응징으로 위협한다. 경찰의 상층부마저 그의 손아귀에 있다. 찾아야 한다. 잡아야 한다. 벌써 20년 전 일어난 사건의 마무리를 위해 이준영을 찾으려는 것보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하다못해 당시 이준영에 의해 실종된 아버지의 생사를 알고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차지안(장나라 분)의 동기 쪽이 훨씬 절박하고, 그만큼 이입하기도 쉽다. 그 처지를 이해한다.

어차피 이준호와 정선호의 정체는 드라마 중반을 넘어서면서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보이고 있던 터였다. 이준호는 그보다도 훨씬 전에 물망에 오르고 있었다. 이준호가 이준영일 것이다. 정선호는 이민일 것이다. 새삼 이준호와 정선호의 정체가 밝혀져봐야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놀람도 당황도 없다. 그냥 예상한 그대로 전혀 의외나 반전 없이 밝혀진 것 뿐이다. 그래서 그 다음은? 정선호가 된 이민과도, 그 뒤에 이미 정체를 드러낸 이준영과도 이현은 맞서야 한다. 동기를 부여받는다. 더 강한 충격이 동기를 만든다.

살인자로 태어났다. 살인자로 자랐다. 살인자가 되었다. 너무 쉽다. 하기는 공중파 드라마가 너무 어려워도 문제이기는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랑을 한다. 그동안 이현을 옭죄던 공포가 사라진다. 죄를 벌하고, 악을 바로잡는다. 특수범죄수사팀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