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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29 09:14

브레인 "서준석에 대한 보복, 이강훈의 모순과 딜레마..."

실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믿을 것은 오로지 실력 뿐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세상 일이란 실력에 의해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가 가장 믿고 있고 자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의 실력이다. 이강훈(신하균 분)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며 그가 장차 겪어야 할 시련과 고난의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그에게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이 조금만 덜했더라면 어땠을까? 전공의 양범준(곽승남 분)처럼 자신의 실력보다 주위의 눈치를 먼저 살피며 기회나 노리는 타입이었다면? 그랬다면 그나마 좌절도 굴욕도 없었을 것이다. 굳이 병원장이 유력시되는 내과 학과장의 아들 서준석(조동혁 분)과 대립각을 세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서준석에 잘 보여 내과 학과장 서교수의 눈에 들 수 있다면 그것도 그의 출세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병원내 간호사나 전공의들에 대해서도 크게 얼굴붉힐 일 없이 살갑게 너그럽게 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우호적인 평가들이 그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고 병원 내에서의 그의 입지를 강화시킨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질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심지어 난폭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병원내에서의 그의 고립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를 동경하여 뒤쫓는 동승만(이승주 분)을 제외하고 거의 그에게 인간적인 호감이나 신뢰를 보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은 자신이라기에는 뭣하다. 조교수가 되기 위해 학과장인 고재학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이강훈이 학과장 고재학에게 줄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상 그가 지금껏 열심히 갈고 닦은 실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교수임용을 앞두고 서준석은 그의 아버지가 고재학을 찾아갔지만 이강훈은 자신의 실력으로 자기가 쓰고 있는 논물을 가지고 고재학에게 아부를 하려 한다. 다행히 이강훈에게는 주위의 누구보다도 뛰어난 실력이 있었기에 그것만이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다. 이용할 수 있다. 실력마저 없다면 이강훈은 어떻게 되었을까?

실력이야 말로 이강훈이 가진 마지막 자존심인 것이다. 무엇 하나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고, 불공평한 세상에 그들과 겨룰만한 것도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조차 없다면 그에게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조차 없다면 더 이상 이강훈은 이강훈이 아니게 된다. 실력도 없이 서준석에 잘 보여 병원내 인맥을 쌓게 된다고 그것이 과연 이강훈 자신의 것일까? 고재학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 단지 아부만 잘해서 출세하게 된다면 그는 여전히 이강훈일 수 있을까? 어차피 세상이란 실력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며 철저히 권력에 아부하던 이강훈이 그렇게 실력이라는 자신의 자존심을 부여잡고 있다. 파열음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조교수 임용만 해도 그렇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없었다면 그가 그렇게까지 반발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분노하고 원망하고 증오하고, 당연히 자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를 위해 지금껏 모든 것을 걸어 왔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을 부정당했고, 그의 실력은 모욕당했다. 서준석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여기는 그의 자존심이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아니었다면 여전히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고재학과 김상철(정진영 분)에게 충실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으련만, 그는 그것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는다.

여기에서 또 다시 드러나는 문제가, 정작 자신의 실력만을 믿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정작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는 그 실력이 들어있지 않다고 여기는 점일 것이다. 서준석이 조교수로 임명된 데에 다른 이유가 있음을 그는 직감적으로 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이나 열정, 역량보다 더 중요한 어떠한 이유들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음을 안다. 그로 인해 자기가 불이익을 당했다고. 단순히 의사로서의 역량을 기르는 데에만 충실한 타입이었다면 역시 김상철이 말하는대로 묵묵히 자기 일에만 최선을 다하며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그런 타입도 되지 못했다. 불우한 환경 만큼이나 강한 그의 상승욕구는 부정한 방법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그것을 인정하며 자신도 그것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그에 대한 보복을 한다면 역시 같은 방법일 것이다.

서준석을 그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궁지에 빠뜨린 이유였다. 서준석에 대한 실력에 있어서의 우월감과 실력외적인 부분에서의 열등감이 그와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아마 김상철이 처음 서준석과 함께 논문을 준비하라 했을 때에도 그것을 서준석을 눌러버릴 기회로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보다 먼저 조교수가 된 서준석보다 실력에 있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혼자서 진행하겠다며 배제를 선언해오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어차피 그가 서준석과 함께 작업하려 했던 것은 그를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서였다. 일그러진 이강훈의 양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부분일 것이다. 김상철도 그것을 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비극적인 존재일 것이다.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그러나 실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세상의 불공평함을 그는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유일하게 주어진 것이 의사로서의 뛰어난 실력이었다. 오로지 그것 하나 믿고 그것을 자존심삼아 버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성을 쌓은 채. 그렇게밖에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며. 의사로서의 일조차 그러한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리고 만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뛰어난 의사가 맞다. 빚쟁이가 찾아와 그리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이 분주한 가운데서도 환자를 돌보는데 있어 조금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다만 과연 그의 앞을 가리고 있는 현실이라는, 그리고 실력을 불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러한 부조리로부터 그는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겠는가? 고재학으로부터, 그리고 조교수라는 자리에 대해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그가 의사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 물론 인간으로서 권력과 명예에 대한 추구는 당연한 본능일 테지만 말이다. 훌륭한 의사로서 족하지 않을까?

어머니 김순임(송옥숙 분)에 대한 이강훈의 감정이 애닲다. 아마 원래는 다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지나치게 냉정한 것은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감정도 없이 태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 자신의 다정함을 감당하지 못해서인 쪽이 더 많을 것이다.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간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죽고 웬 아이를 하나 임신한 채 돌아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그러면서도 세상살이가 어눌하고, 싸구려운동화를 꺾어신은 맨발처럼 초라한 그녀의 모습이 그리 애닲다. 자식이 부모의 초라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어느새 자라서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게 되었을 때다. 부모는 자식의 초라함이 애닲고 자식은 부모의 초라함이 화가 난다. 대개는 그 분노가 아이의 행동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를 미워한다. 초라하니까. 한심하니까. 성가시고 불편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를 놓지 못하다. 그것이 그리도 애닲고 안쓰러워 마음이 쓰이니까. 차마 그것을 드러내지 못해 괜히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한 쪽으로 돌려 외면하고, 그러면서도 보지 않는 등을 흘끔 쳐다본다. 아마 어머니의 빚을 갚기 위해 선배를 만나 술을 마시고 난 다음 취한 김에 윤지혜의 타이를 보아주는 것도 그러한 때문일 것이다. 그대로 두고 보고 있기에는 너무 한심해서 화가 난다. 다만 술김에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이 쉽게 볼 수 없는 윤지혜에 대한 다정함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서준석으로 하여금 김상철 교수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이강훈과 별개로 논문을 준비해 발표할 것을 결심하게 만든 것도 그의 이강훈에 대한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이강훈은 실력 이외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서준석은 실력 이외의 모든 것을 가졌다. 정작 부학장 박인범(박창호 분)과 고재학은 그런 그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실력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열세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윤지혜에 대한 감정과 그러한 이강훈에 대한 열등감이 이후 서준석의 행동을 결정하게 되리라. 그 또한 불행한 인물이다. 이강훈만 아니었다면 특별히 비교당하는 일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갔을 것을, 이강훈으로 인해 마치 그 길이 죄인의 길과 같다.

실제 실력 이외의 것들로 인해 조교수 승진이 결정되고, 그러나 결국 믿을 수 있는 것은 실력 밖에 없고, 정작 그 실력은 병원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아마 이강훈과 김상철의 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강훈에게 필요한 것은 그가 가진 실력에 대한 인정과 존중, 존경이다. 그에 걸맞는 자리일 것이다. 정당하지만 정당하지 않다. 부조리일 것이다.

과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강훈을 돕는 정유진(김수현 분)의 사랑은 보답을 받게 될까? 의외로 순정파인 아가씨다. 서준석은 어디로 변해가게 될까? 윤지혜는 어떻게 바뀌어가게 될까? 문득 그래도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실력이라는 믿음을 보고 싶어진다. 거짓없는 진실한 실력 한 가지임을. 타인을 상처입히고자 할 때 어쩌면 가장 크게 상처입는 것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신하균의 격정적인 연기가 좋다.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게 이강훈의 내면을 파헤치는 그 눈빛이, 표정이, 몸짓이 좋다. 말은 단지 공기의 파동에 불과하다. 그의 진심은 신하균이 연기하는 이강훈 자신에게 있다.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더욱 재미있어지고 있다.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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