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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28 09:10

뱀파이어 검사 "이타적인 이타적인 폭력과 살인, 아버지라 불리우는 잔혹함"

조폭의 보스가 딸을 지키는 방식...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어떻게 보면 상당히 따뜻한 기분 좋은 이야기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폭력조직의 보스가 자신의 딸을 위해 과거 보스를 배반하고, 이번에는 함께 모의했던 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있다. 어느새 검사가 되어 자신을 원망만 하는 딸에 대해 아버지의 정이 상당히 깊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섬뜩한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아는 완벽한 이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은 때문이다. 항상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 하고, 항상 가장 가까이에 누군가 있어 그것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다지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보람이 되고 성취감이 된다. 이기가 이타가 되고 이타가 이기가 된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의 경계다.

다시 말해 남을 위해서도 인간은 얼마든지 이기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타인데 이기이다. 이기인데 이타다. 가장 극단적인 예로 가족의 복수를 위해 그 원수를 죽이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살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살인이다. 나 자신을 위한 살인이 아니기에 그것은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갖는다. 아무리 가족이더라도 타인을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 하지만 결국 그 가족을 위한다는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강도가 침입해 들어와 가족을 위협하는데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면 나중에 반드시 자신을 위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원수가 있는데 그 원수를 갚지 않고 살아간다면 자기의 마음에 큰 빚이 된다.

다만 그렇더라도 차이가 있다면 어지간해서 가족의 원수를 갚는다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강도가 침입해 왔어도 될 수 있으면 제압만 하고 말지 일부러 죽이려고까지 하는 경우는 역시 별로 없다. 인간의 양심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복수를 위한 것이라 할 지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 가족을 지키겠다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을 죽이는 것 역시 결코 옳은 행동이 되지 못한다. 어쩌면 그래서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은 손해를 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독하지 못해서 꼭 일정한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만다. 그런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고 하니, 드라마에서도 나오는 조직폭력배들이 그런 예일 것이다.

처음 자신의 보스인 곽노승을 배신하고 같은 조직원인 정쾌수와 경찰인 김덕환과 결탁한 것까지는 그렇다 칠 수 있다. 하기는 과연 유원국이 딸 유정인(이영아 분)만을 위해 곽노승을 배신하고 정쾌수, 김덕환과 손을 잡은 것일까? 그런데 더구나 곽노승이 출소할 때가 되어 자신을 배신한 '쥐새끼'의 존재를 알아내는 사람에게 조직을 물려주겠다고 말하면서 주위가 동요하자 유원국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들을 죽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만다. 아니 계획을 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곽노승이 출소하여 자신의 딸의 이름을 언급하자 지레 당황하여 폭력을 휘두르고 그를 죽여 버린다. 자신의 딸을 위해 정쾌수와 구치수, 김덕환이 죽도록 계략을 꾸미고, 자신의 손으로는 직접 형님이라 부르던 곽노승을 죽이고, 과연 그것이 아버지의 정이라는 말로만 포장될 일이던가?

하기는 누군가는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가족의 이름을 들먹인다. 자식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것을 해 주기 위해서. 더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 그래서 그를 위해 단순히 부정만 저지르면 비리인사가 되는 것이고, 여기에서 폭력을 휘둘러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치면 폭력배가 되는 것이다. 아마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혹은 가족을 위해, 혹은 친구를 위해,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며 그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지 않을까?

 
물론 과연 곽노승이 사실을 알고 유정인을 죽이려 들었을 때 유원국에게 그녀를 지킬 다른 선택이란 있었는가? 결국은 폭력조직 안에서 일어난 문제는 폭력조직 안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직폭력배다. 일반의 상식이 아닌 폭력조직의 질서에 따라 해결하려 들기에. 아무리딸을 위해서라고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는 인간이란 그런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왔기에 그는 당연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일 테고. 그런 점에서 폭력조직의 논리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의 나름의 부정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정인도 그것을 안다. 그녀 또한 폭력조직 안에서 그들의 논리와 방식 아래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어린시절을 보내 왔으니까. 정쾌수의 시체를 보고 누구보다도 쉽게 그 죽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래서 아버지 유원국의 방식에 반발하면서도 유원국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 것을 비난할 수 없다. 아마도 보통의 신경을 가진 딸이었다면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사람을 여럿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했을 터이건만, 유정인 또한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세계의 사람이었던 셈이다.

뱀파이어인 민태연(연정훈 분)과 폭력조직 보스의 딸 유정인, 확실히 범상치 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스페셜'한 수사팀이라고나 할까? 다만 이번의 경우 민태연의 뱀파이어로서의 능력이 크게 역할을 하지 못했다. 뱀파이어의 권능이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은 죽은 사람에 대해서 뿐, 결국 산 사람이 꾸미는 일은 산 사람이 추적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매력이다. 초능을 중요한 소재로 채택하고 있지만 그에 매몰되지 않는다. 비슷한 사이코메트리 소재의 일본만화 <사이코메트러 에지>와 비교해서도 상당히 제한적으로 쓰고 있고, 대부분은 인간의 이성과 수사팀의 발에 의존한다. 괴기물이거나 초능물이 아닌 수사물이고 추리물인 이유다. 유원국과 구치수, 김덕환의 비열한 머리싸움 또한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한다.

딸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태연히 사람을 죽이고, 딸을 위해서 마치 미친 놈처럼 사람을 다시 죽이려 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정이다.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그런데 어느새 그에 동의하고 마는 것은 얼마나 삶이 피폐하다는 뜻인가. 조직폭력배와 동화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폭력이다. 마지막까지도 폭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민태연이 쫓는 그 존재에 대한 단서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 같다. 드라마를 이루는 두 개의 중요한 줄기 가운데 하나다. 하나는 매회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태연의 과거와 관계된 어떤 존재를 쫓는 것이다. 파편처럼, 그러나 퍼즐처럼 이어지며 두 개의 이야기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하나로 이어지고 만다. 사건을 하나 해결했으니 과거의 사건에서 이어지는 윤지희와의 인연이 새로운 단서로 나아간다. 무척 비밀스럽고 공포스럽게.

아무튼 독특한 드라마일 것이다. 완성도도 높다. 역시 한 주에 한 회 분량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 트릭을 짜고, 그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에 맞춰간다. 위화감 없게 인간의 드라마까지 녹여낸다. 또다른 굵은 줄기의 이야기마저. 기본에 충실하다.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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