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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26 10:27

위대한 탄생 "또다시 불거지는 공정성 논란에 대해..."

세상에는 공정한 시험도 공정하지 않은 시험도 없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남아계신 여러분들도 정말 간발의 차였으며, 아니면 멘토제라는 특별한 이유 때문에 그런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탄생>과 관련해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항상 생각한다. 과연 세상에 공정한 시험이란 존재하는가?

이를테면 현재 활동중인 아이돌 가운데서도 여러 기획사를 옮겨가며 수 차례 오디션을 보고 떨어진 경험이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그 가운데에는 명실상부한 국내 톱아이돌로 성장한 이들마저 있을 정도다. 그러면 그 오디션은 잘못된 것이었는가?

흔히 말한다. SM에는 SM스타일이 있고, YG에는 YG스타일이 있으며, JYP에는 JYP만의 스타일이 있다. 각각 요구하는 조건이 다르고 따라서 특정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는데 다른 기획사에서는 합격하여 바로 데뷔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불공정한가?

수능을 치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전문가들에 의해 시험문제의 경향이나 난이도, 유불리등에 대한 분석이 온갖 매체를 수놓는다. 어떤 수험생은 더 유리하고, 어떤 수험생에게는 더 불리하다. 유리한 수험생에게는 좋겠지만, 불리한 경우 아무래도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시험이다.

나는 미적분에 강하다. 그런데 약점인 순열문제가 예상보다 더 많이 나왔다. 만일 미적분 문제가 더 많이 출제되었다면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도 존재한다. 누군가는 순열을 더 잘 하기에 미적분 문제 대신 순열이 더 많이 출제된 것이 좋다.

바로 그런 것까지 포함한 것이 시험인 것이다. 시험과목이 무엇이고, 시험범위는 어디까지이고, 점수의 비중은 어떻고, 만일 누군가 자기가 잘하는 과목이 시험과목 안에 들어 있지 않으면 그때는 어느 정도 좋은 점수 받기를 포기하는 쪽이 현명하다. 도저히 자신이 없는 분야가 시험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을 때, 노력을 통해 점수를 올릴 수 있으면 좋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은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출제자는 그러한 학생들의 노력에 대해 어떤 부분을 평가할 것인가를 정하게 된다. 출제자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거기에 대고 누구에게는 더 유리하고, 누구에게는 더 불리하니 시험이 불공정하다.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시험과목이나 범위에서 비중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출제자 입장에서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므로. 반대로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분야는 출제자가 반드시 보고자 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시험에 응시하고, 평소에 공부해서 실력을 쌓고,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시험점수란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음악순위프로그램은 어떨까? 순위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다. 과연 순위는 정당했는가? 노래는 어떤 가수가 더 잘하고, 퍼포먼스는 어느 팀이 더 좋고, 노래 또한 누구의 곡이 더 좋았다. 하지만 가수의 인기라는 것이 반드시 가수의 실력이나 노래의 좋고 나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대중의 호감을 끌어내었는가? 말도 안 되는 노래로도 히트하는 경우도 있고, 설마 그런 노래가 히트할까 싶은 노래가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불공정한가? 하지만 그것이 대중이다.

아마도 지나친 경쟁사회의 자화상일 것이다. 모두가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사람들은 꿈을 꾸게 된다. 어딘가에는 분명 공정한 경쟁이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는 분명 공정한 경쟁이 있어 객관적인 실력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그나마 시험성적은 점수로라도 계량화되지만 때로 계량이 불가능한 예술분야에 대해서도 그래서 서열을 부여하려 든다. 누가 노래를 더 잘하고 못하고, 누구의 노래가 더 좋고 못하고, 그러나 송창식과 조용필과 나훈아 사이에 노래를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구분짓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지만 오디션이기에 그것이 엄정하게 객관이라는 이름 아래 공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점수로써 실력을 계량화하여 순위에 따라 당락을 결정했던 KBS의 다른 밴드오디션 프로그램 <TOP밴드>를 보더라도 그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었다. 심사위원 각각의 점수를 취합하여 그것으로써 순위를 정하는 것은 좋았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한 심사위원이 선호할만한 개성있는 밴드들이 여럿 떨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에 비하면 <위대한 탄생>이나 <슈퍼스타K>나 심사위원 전체의 의견으로는 탈락이 맞더라도 다만 한 사람만 만족시킬 수 있다면 구제될 가능성이 생겼다. 다양성이 더 넓어지고 있었다.

장단점이 있다. 심사위원 전체에게 고루 인정을 받는가? 아니면 모두는 아니더라도 다만 한두사람이라도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는가? 전자를 객관적이라 하겠지만, 과연 후자의 겨우 그것이 가치가 없는 것인가? 가수란 결국 대중을 음악으로써 매료시키는 직업이라 한다면 최소한 몇 사람의 심사위원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을 만족시키고 매료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훌륭하다 할 수 있다.

과연 누구의 음반을 살 것인가? 모두가 좋다고 하는 1위인가? 아니면 나만 좋다고 생각하는 꼴찌인가? 답은 자명하다. 음악은 내가 듣는 것이다. 멘티를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것은 멘토의 역할이다. 그것이 <위대한 탄생>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대한 탄생>만의 룰에 의해 조건이 주어지고 그 조건을 충족한 참가자들이 멘토에 의해 선택되었다. 누군가는 멘토로부터 음반작업을 해 보자며 연락을 제의받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멘티선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1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 인정하는 1위도 있는 것이다.

하기는 그래서 공중파 순위프로그램의 순위에 그처럼 민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이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내가 만족하여 듣고 있다면 그것으로 그것은 충분히 훌륭한 음악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 든다. 객관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려 든다. 모두가 인정해야 1위다. 모두가 인정하기에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한 결과가 바로 MBC의 오디션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일 것이다. 각자가 그들의 팬들에게는 최고의 가수일 텐데 청중평가단이라고 하는 보편의 기준에 의해 그 가운데서도 우열을 정한다.

아마 생방송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심사위원이 따로 있다면 심사위원은 자기의 기준에 따라 참가자들의 노래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길 것이다. 시청자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기준에 따라 참가자의 노래를 평가하고 실시간문자투표에 참가한다. 누가 결정하는가? 그것을 두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불공정하다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공정한가 아닌가의 여부는 그것인 누구에게 더 유리하고 불리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것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차이가 나는가도 아니다. 얼마나 자신이 내세운 룰에 충실했는가? 결국 자기가 내세운 룰에 따라 시험을 치르고 오디션을 보는 것이라면, 그 룰이 공정하게 엄격하게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패자부활전'이라는 제도를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룰에 따라 탈락시켰다면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설사 패자부활이 필요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그러면 <위대한 탄생>은 자신이 내세운 룰을 어겼는가?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멘토로 하여금 멘티를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먼저 선언했고, 멘토들은 장차 자신의 멘티가 될 참가자들에 대해 끊임없이 과제를 주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판단의 기준은 당연히 출제자인 멘토들에게 있다. 그렇다면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수학시험도 결국은 유불리가 있고 그에 따른 결과의 선택이 존재한다. 답이 명확한 수학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개인의 차이가 있고, 그러한 차이에 의해 결과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답이 없는 예술분야야 말할 것도 없다.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가를 계량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주관적인 판단만이 존재한다. 누가 더 좋은가? 누가 더 좋게 들리는가? <위대한 탄생>은 그런 오디션이다. 아니 <슈퍼스타K>며 <TOP밴드>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믿는 사람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아무튼 결과 자체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것이었다. 태도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김태극은 일단 노래 하나는 기차게 잘 불렀다. 김경주는 어쩌면 가장 많은 성장을 보인 참가자였을 것이다. 엄친아, 엄친딸 배수정과 에릭 남의 경우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고, 최정훈과 푸니타 역시 오디션 내내 화제가 되었던 참가자들이었다. 작년의 메이건 리와 올해의 메이건 리를 비교해 본다면 멘티로 선택되지 않는 것이 서운할 정도였으며, 전은진, 정서경, 샘 카터는 매우 독특한 개성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50kg는 어째서 멘티로 선택되지 않았는가 의문인 참가자 가운데 하나였다. 나머지 가운데 더 훌륭한 재능과 실력을 가진 참가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결코 그에 떨어지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탁월하다.

아마 시즌1에서의 김태원과 비슷한 역할일 것이다. 다만 차이라면 아무래도 여성이다 보니 그 말하는 것이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는 듯 한다. 누이가 어린 동생을 대하듯 정겹고 따스하다. 이선희가 이렇게 따뜻한 사람인가 몰랐다. 유머넘치는 이승환과 엄격한 윤상과 귀여운 박정현, 날카로운 윤일상, 그리고 따뜻한 어머니 이선희. 한참 선배이기에 인생의 경험이 묻어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멘티는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힘이 되어 준다.

<위대한 탄생>이 좋은 이유다. 아마 이선희가 아니었어도 다른 누군가 그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이승환이거나, 윤상이거나, 윤일상이거나, 박정현이거나. 이선희가 그 가운데 가장 선배다. 이제 앞으로 멘티들이 만들어갈 무대를 기대해 볼 일이지 지난 심사기준에 대해 공정한가를 따지는 것은 너무 아깝다. 그런 멘토들이기에 이들 멘티가 선택되었다.

드디어 멘티선택이 끝나고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멘토스쿨이다. 작년에는 김태원과 외인구단이 크게 대박을 터뜨렸었다. 프로그램 자체를 지배한 거의 핵폭탄 수준의 대박이었다. 이번에는 어느 멘토의 팀에서 그와 같은 대박이 터질 것인가? 의외로 윤상을 기대해 보는 바다. 무언가 조합이 상당히 재미있다. 가장 개성이 강한 참가자들이 그리 모인 듯하다.

세상에 공정한 시험도 공정하지 않은 시험도 없다. 오디션 역시 마찬가지다. 원하는 자격이 있고, 필요한 기준이 있다. 바로 거기에서 출제자와 수험자의 약속이 이루어진다. 공정성이란 바로 거기에 있다. 룰이다. <위대한 탄생>에는 그만의 룰이 있다. 의미없는 이유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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