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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백제의 멸망, 그러나 백제는 없고 계백만 있었다."
전혀 아무런 동정도 연민도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
2011년 11월 23일 (수) 09: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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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기자 azzasi@stardailynews.co.kr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계백과 같이 고증을 하려 해도 사료가 부족해서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에는 대개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한 가지는 사료의 부족한 부분을 상상력을 동원해 채워넣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나마 사료를 통해 재구성할 수 있는 주위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출발은 좋았다. 백제의 마지막 충신답게 원래 무왕의 충신이던 호위무사 무진(차인표 분)의 아들로써 의자(조재현 분)의 의형제였다. 어차피 계백이 부여씨의 방계라고 하는 설도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뿐 어느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으니 그런 정도는 허용범위에 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서 신라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백제로 돌아와 의자왕을 도와 왕권강화에 힘쓰고. 하지만 문제는 계백 이외의 인물들이었다.

부족한 사료를 극적 상상력으로 대신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의자든 은고(송지효 분)든, 성충(전노민 분)이든, 흥수든(김유석 분), 사택왕후(오연수 분)와 무왕(최종환 분) 역시 실존인물이었다. 의외로 기록 또한 계백에 비해서는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실존인물이고 기록을 통해 확인 가능한 사실들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계백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허구로 구성하더라도 그 기준은 또한 기존의 실존인물들과 그들과 관련한 사실기록에 근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택왕후에 대한 기록은 2009년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금제사리봉안기'에 따르면 사택왕후, 아니 사택부인은 무왕이 죽기 2년 전인 639년 미륵사지석탑에 무왕의 강녕을 비는 내용과 함께 사리를 봉안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왕이 죽고 의자왕이 즉위한 이듬해에는 의자왕의 모후가 죽고 교기와 의자왕의 동모누이들이 숙청당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선화왕후야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니 어느 정도 허용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사택왕후가 교기와 함께 숙청되는 시점 정도는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무왕이 즉고 의자가 왕으로 즉위한 뒤 사택왕후가 죽고 교기가 숙청되었다. 즉 사택왕후와 교기의 숙청은 어디까지나 왕으로서 의자의 의지와 역량에 의해 그리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무왕이 살아 있었다. 무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무왕에 의해 사택왕후와 교기는 제거된 것이었다. 그리고 정작 왕으로 즉위하여 백제의 내정을 장악하고 신라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의자는 국정은 무왕에게 맡긴 채 은고를 두고 계백과의 사랑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왕으로서의 모든 책임과 권한이 여전히 아버지 무왕에게 있으니 왕이 되지 못한 의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 정도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계백은 차근차근 장군이 되어 가고 있었다.

편애였다. 왕은 왕이 되지 못하고, 계백은 장군이 되어 있다. 원래는 교기를 제거한 것도, 신라의 성을 여러 차례에 걸쳐 수십 개나 공취한 것도, 대야성을 공략한 것도 의자의 명령을 받든 장군 윤충의 공이었다. 의자가 망신을 당한 여근곡 전투 역시 윤충이 신라의 서라벌을 기습하려다가 오히려 신라군의 복병에 의해 역습을 받고 패퇴한 전투였었다. 연개소문과 손을 잡고 연계하여 신라를 몰아붙인 것도 마찬가지였다. 655년 요녀 군대부인 은고가 나타나 백제의 내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기까지 신라로 하여금 당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까지 밀어붙인 것이 다름아닌 백제의 왕 의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공이 계백에게 가 버렸으니. 왕이 되는 것도 늦었고, 왕으로써 역할을 하는 것도 늦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공이 계백에게 가 버리며 백제는 중심을 잃어 버렸다. 심지어 성충이 의자에게 간언하다 죽으며 유언으로 남긴 기벌포와 탄현을 지켜야 한다는 전략까지도 계백의 공이 되어 버렸다.

드라마의 마지막이 이토록 허무한 이유였다. 차근히 망해가고 있었다. 왕이 사라지면서. 왕과 더불어 백제의 조정이 사라지면서. 오로지 계백 하나였다. 성충도 흥수도 없이 계백 하나에 의해 지탱되어지던 나라였다. 그토록 신라로 하여금 전전긍긍케했던 의자의 백제는 고작 김춘추의 계략 하나를 당하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차그차근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 당장 망하더라도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계백만이 여전히 영웅으로 남아 있으니, 계백과 같이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장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망하고 마는 백제라는 나라에 대해 연민의 감정따위 생길 리 만무다. 그렇다고 신라군의 편을 들 수도 없고, 어차피 망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의 멸망에 굳이 이입해서 볼 까닭이 뭐가 있을까?

최소한 안타까웠어야 했다. 성충의 죽음이, 흥수의 유배가, 의자의 타락이, 그래서 백제가 멸망하려는 그 순간 아쉽고 안타까워 동정과 연민이 생겼어야 했다. 그들의 나라여야 했다. 실제 백제를 살았던 이들의 나라여야 했다. 의자의 나라여야 했고, 성충의 나라여야 했고, 흥수의 나라여야 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백제는 계백의 나라였다. 오로지 계백을 위해서. 결국 사료에 단 한 줄 이름만이 나와 있는 계백 한 사람을 위해 다른 모든 역사살 실재했고 기록도 남아 있는 이들을 희생시킨 결과였다. 그들과 더불어 백제는 지워져 버리고, 계백 역시 허구의 존재로 허공에 붕 떠 버렸다. 실체없는 나라가 멸망한다. 없는 것이 없었던 것으로 돌아간다.

의자가 원래 영웅이었다면? 뛰어난 군주라서 성충과 흥수의 보좌를 받아, 계백과 은상, 의직, 윤충 등 훌륭한 장수들을 앞세워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면? 그런데 요녀로 인해 초심을 잃고 점차 타락하게 된다. 그로 인해 성충과 같은 훌륭한 신하가 죽고, 계백과 같은 빼어난 장수들이 전장을 떠나게 된다. 전성기의 성세가 말년의 암울함과 대비된다. 결국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맞아 계백이 백제군을 이끌고 김유신을 황산벌에서 맞아 싸워야 했을 때 마치 일장춘몽과도 같이 한 때의 성세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망가지고 피폐해진 비관적인 현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계백 또한 가족을 죽이고 전장으로 향할 만하지 않을까? 그동안의 내정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귀족들마저 왕에게 등을 돌리고, 고립무원에 빠진 왕을 위해 마지막 싸움에 임하려는 각오라면 충분히 가족을 죽이고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한 번도 영웅인 적이 없고, 백제는 한 번도 영광스러웠던 적이 없다. 계백을 제외하고 백제란 언제나 그 모습 뿐. 새삼스럽게 비장해야 할 이유도, 그를 위해 가족을 죽여야 할 까닭도 없다. 갑작스런 귀족의 이탈도 생뚱맞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런 개연성도 설명도 없다. 마치 황산벌싸움만 거의 10여 회 가까이 치르고 있었던 듯 전혀 마지막다운 아무런 충격이 없다. 실제 계백이 죽고 난 뒤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에 대한 아무런 설명따위 없다. 이미 계백이 백제의 모든 것을 거지고 죽어버린 뒤이니 남아 있는 백제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치밀했어야 했다. 지금도 그래서 아쉽다. 사택왕후는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었다. 사택왕후의 비중을 줄이고 은고의 비중을 늘렸어야 했다. 굳이 사택왕후가 미실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기록에 나온 대로 무왕과 금슬이 좋은, 그러나 후견인으로써 사택씨가 왕을 누르고 있는 정도로 묘사되면 좋았을 것이다. 대신 의자가 즉위하고 은고가 사택왕후가 되어 계백과, 성충, 흥수의 적으로 그려지는 쪽이 더 나았을 것이다. 부여효와 부여태와 부여융의 왕권다툼과 은고의 총애를 받으며 신라와 내통하는 임자, 왕을 신뢰하지 못하는 귀족들, 그리고 의자의 의지에 의해 좌평의 자리를 독점하는 부여씨의 왕족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미 후반부 분량이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실존했던 그들의 모든 존재는 계백이 가져가 버렸다.

계백이 드라마를 망쳤다. 정확히는 계백을 편애한 작가가 드라마를 망쳤다. 계백을 편애하더라도 방법은 많았다. 말했듯 사료에 충실하면서도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계백에 대해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해보거나, 다른 기록이 남아 있는 실존인물들에 대해 고증에 보다 충실함으로써 계백이 있을 만한 여지를 만들어 주거나. 그러나 대신 작가는 백제의 모든 것을 계백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서 계백이 성공했다면 영웅탄생이라는 짜릿함이라도 누릴 수 있었으련만, 그러나 계백이 결국 실패하고 죽임을 당함으로써 영웅마저 사라진 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게 되어 버렸다. 미련도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동정도 연민도 실망도. 아무것도 없이.

역사드라마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아니 설사 단지 역사의 시대와 인물만을 빌려 온 판타지드라마라 할지라도 드라마로서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진다. 말 한 그대로다. 백제는 없고 계백만 있다. 그리고 그 계백조차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가족을 스스로 모두 죽이고 전장으로 향하는 비장함조차도 창새로 부는 한 줄기 바람과 같다. 느낌만 있다.

아마 화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미 예상했던 바이고, 기대했던 바다. 그동안 충분히 겪어 온 모습이기도 하다. 원래 그런 드라마였다. 그래도 마지막회였는데. 오히려 다행이라는 느낌일까? 이제 다른 드라마를 볼 수 있다. 허무하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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