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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6.29 09:24

[김윤석의 드라마톡] 사랑하는 은동아 "21세기 순정예찬,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 남자와 한 여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을 위해

▲ 사랑하는 은동아 ⓒ드라마하우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원래 동화속 공주들은 높은 탑에 갇혀 있거나, 외딴 성에 잠들어 있기 쉽다. 혹은 저주를 받아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있기도 하다. 왕자들은 사악한 괴물들과 교활한 마녀의 함정을 넘어서 공주를 구해야만 한다. 그들의 운명은 예언이 말해준다. 초월적이고 신성한 의지가 그들의 사랑을 증명해준다. 추억은 거의 모든 개인에게 존재하는 절대이며 보편이다.

순수란 선과 악을 초월한 것이다. 도덕과 관습, 전통과 인정, 인간의 관념과 당연한 상식까지 아득히 초월하여 그것들이 있기 전부터 존재해 온 절대적인 것이다. 왕자가 싸워야 하는 괴물은 다른 것들이 아니다. 당장 부모마저 반대하는 결혼을 마지막까지 지지해주고 지켜봐주었던 자신의 여동생조차 반대의 입장을 전해우고 있었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다. 아이까지 딸린 애엄마다. 더구나 자신으로 인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던 남편이었다. 과연 세상은 그런 그들의 사랑을 용납해 줄 것인가.

"뺐어야죠!"

만일 자신이 찾는 첫사랑이 벌써 결혼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사랑하는 은동아' 지은호(주진모 분)가 주저없이 그리 짧게 대답하는 장면에서 어떤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누군가로부터 원망과 비난을 듣게 될까봐, 혹시라도 그로 인해 잃어야만 하는 것들이 두렵고 안타까워서. 그러나 한 편으로 그렇다면 그것은 그것밖에 안되는 사랑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비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인기를 잃을 것이 무서운 것도 아니다. 조서령(김유리 분)의 말처럼 돈을 아쉬워하는 성격도 아니다. 애초에 지은호가 배우가 되고, 인기를 얻으려 했던 이유부터가 지은동을 다시 찾고 싶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다. 지은호를 찾았고, 지은호와 앞으로도 계속 함께일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따라서 오직 한 가지 지은호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어야 할 지은동의 마음일 것이다. 지은동이 자신을 잊고, 자신을 거부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떠나간다. 아니 지은동이 자신을 떠나 남편인 최재호(김태훈 분)에게로 돌아간 뒤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페어플레이를 약속한다. 자칫 엄청난 민폐이거나 세상의 윤리와 관습을 무시하는 패륜으로 여겨질 수 있는 행위인데 주진모의 진지하면서 절절한 연기가 그같은 우려를 불식시킨다.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일 것이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또 여성대로, 어느새 잊고 있던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장의 설레임이 전부였고, 두근거리는 짜릿한 감정에 자신을 맡기던 어설프던 시절이다. 그 서툰 약속을 잊지 않는다. 기약조차 없는 기다림을 놓지 않는다. 17살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20년이라는 시간이 마치 어제일처럼. 기억마저 희미한 채로도 단지 스치듯 만났음에도 서로의 모습을 바로 떠올리고 만다. 기억마저 잃은 상태에서도 단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도 머리가 아닌 가슴이 기억해내고 만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서로의 모습을 못알아 볼 리 없다. 그래서 운명이다. 아련했던 기억 너머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그렇게 전설로써 완성된다.

첫사랑의 기억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한 번이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해 보았다면 처음 그것을 느끼던 설레고 짜릿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아니 첫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특별한 의미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아쉽고 서럽다. 안타깝고 미안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깨닫게 된다. 자신이 했던 실수를.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들을. 그래서 첫사랑이란 개인의 기억을 통해 이상화되기 쉽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넘보거나 훼손해서는 안되는 차라리 신성에 가까운 절대의 영역이다. 그 순수를 형상화한다. 현실로 이룬다. 오랜 신화나 전설이 순수를 통해 영원을 손에 넣었을 때 그것을 동화라 일컫는다. 오랜 사랑의 신화와 전설이 동화로써 완성된다.

의붓아버지의 독선과 강압에 의해 지은동은 높은 탑에 갇히고 만다. 사고로 기억마저 잃고 주위의 계략으로 인해 오랜 망각이라는 잠에 빠지고 만다. 그 사이 남편과 자식의 존재가 마치 저주처럼 그녀로 하여금 앞으로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 지은호의 마음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녀 조서령과 지은동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마술사 최재호, 그리고 그들을 돕는 주위인물들까지. 그런데도 과연 두 사람의 올곧은 사랑이 마침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남편과 헤어지고, 어쩌면 자식마저 버려야 한다. 길러준 부모와의 관계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가족도 자신의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랑하려 한다. 지은호가 지은동을 찾으려 애쓰던 그때 지은동도 지은호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만나야 하는 당위다. 운명은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가 만든다. 아주 짧고 사소한 스침으로도 그들은 인연을 운명으로 만든다.

그런 점에서 지난주 방영된 10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환점과도 같은 회차였을 것이다. 과연 그들을 얽매고 있는 족쇄란 단지 주위의 기만이거나 계략이기만 했는가. 자신과 같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지은호 자신을 향한 조서령의 마음도, 지은동 자신을 생각하는 남편 최재호의 감정 역시. 그래서 지은동이 끝내 남편 최재호에게로 돌아갔을 때 지은호는 잠시 조서령과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은 한없이 지은호에게로 향하고 있었음에도 지은동은 끝내 아내로써 남편인 최재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기만이라는 형태로 돌아오고 말았다. 지은동과의 사이를 떠어놓고자 조서령은 지은동의 남편인 최재호마저 이용해 자신을 속였다. 자신이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자 최재호는 그동안 자신의 상태를 숨기고 있었다. 지은호와 만나지 말 것을 명령하는 남편 최재호를 보는 지은동의 눈빛이 차라리 무심하다. 자신들의 순수를 더럽히고, 기만과 거짓으로 속여 앞을 막으려 한 이상 그들은 단지 적에 불과하다.

위기인 동시에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도록 그들의 등을 떠미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애써 미뤄두고 있던 지은호의 편지를 지은동은 뒤늦게 펼쳐 본다. 그런 지은동을 지은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따라나선다. 결국 통속드라마로서 너무 상투적인 설정이 이후의 전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는 점이 차라리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다. 열쇠는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들을 옭죄던 족쇄가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되어 준다. 그들을 비로소 마음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다음은 행복해지기 위한 수순이다.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이고 내용이다. 20세기에도 이미 사라져가던 낡은 순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목까지 어쩌면 유치하고 촌스럽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체가 원래 유치하고 촌스러운 것이다. 억지로 꾸미거나 가공하지 않은 원초의 그 무엇을 보여준다. 시청률은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래서 뜨겁다. 공감하게 되면 헤어날 수 없다. 중독이다. 늦게 앎을 안타까워한다.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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