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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5.06.24 10:14

[공소리 칼럼] 일상 속에서 성교육이 필요했다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9살 때 일이다. 수수께끼 수업을 앞두고 획기적인 수수께끼 문제를 고민하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학급 친구들은 내가 낸 수수께끼 문제를 맞히지 못했다.
 
“돈을 좋아하는 여자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
 
나는 어른들만 아는 단어를 알게 된 흥분으로 문제를 냈다. 아무도 맞추지 못하자 힌트를 주었다. “텔레비전에 많이 나와! 무척 예쁘게 하고 다녀! 뱀이래!”
 
아이들은 그제야 뱀이 들어가는 단어들을 읊기 시작했다. 마침내 ‘꽃뱀’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담임교사는 갑자기 성질을 내며 못된 것만 안다며 아이들 앞에서 나를 나무랐다. 나는 연유도 모른 채, 수치심을 안고 간신히 눈물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담임교사는 나를 불러 기분 풀라며 사탕을 줬지만, 왜 나무랐는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더 어릴 적, 다방은 지금보다 활발하게 존재했다. 다방은 커피 등 음료를 파는 곳인데 출장 영업도 했다. 50cc 스쿠터를 타고 화려한 청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쟁반에 보자기를 싸서 배달하던 여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손님에게 차를 접대할 때나, 남자들이 당구장 등 여가 공간에 다방을 부르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화려하고 예쁜 다방 언니들에게 말 붙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다방은 남자 고객만 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뉘앙스 때문에 다방 언니들을 볼 때마다 천박하고, 잘못된 것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을 하는 여자는 천박하고 잘못됐다고 느꼈다.
 
다방에서 가져온 쌍화탕은 맛있었다. 어른들에게 매번 남겨달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하지만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다방 음료가 맛있어서 이용하는 게 아니라 화려하게 꾸민 여자가 타주는 맛있는 음료를 원해서 이용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 성을 상품화한 것을 보고 자랐지만, 아무도 다방 영업에 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성장하면서 소위 성교육에서 배운 것은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 전부였다. 중학교 성교육 시간에 안전한 성관계에 대해 질문한 친구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너희 모두 알고 있잖아? 다 보고 와서 질문하는 것 아니냐.’였다. 그 말은 아이들 모두 음란물을 보고 배웠을 거라고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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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음란물을 접한 후 성관계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일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폭력적이고, 이상한 내용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성행위를 했을 거라 예상되는 사람은 모두 이상해 보였다. 한동안 기혼자를 보면서 자꾸 에로틱한 생각이 떠올라 끔찍했다.
 
어쩌면 성교육 과정에서 음란물을 승인해 준 셈이었다. 성적 가치관을 바로 잡아주지 못했던 성교육은 누군가에게는 수치심을 고스란히 안고 살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성적 폭력성을 내버려두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성교육 시간에 ‘음란물에 나온 모습이 바로 성관계다.’라는 내용이 아니라 음란물로 처음 성관계의 개념에 대해 알게 되어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왜곡된 시선을 거두고, 건강한 관계의 모습을 설명해주었더라면 한동안 어른들에 대한 불신도, 학교 성교육에 대한 불신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음란물 때문에 충격 속에서 지내는 동안 아무에게도 고민을 토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꽃뱀이라는 수수께끼를 내고 혼이 났기 때문이고, 다방을 이용하면서 종사자들을 부정적으로 여기던 이중적인 어른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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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어떤 개념이 잡히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음란물을 봤다고 고백할 수 없었고, 그 뒤로 성관계하는 어른들 모두 이상하게 보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수치심이 마음속에 내재해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말하면 꽃뱀과 다방 종사자에게 향했던 이중적인 잣대와 시선을 나에게 쏟을 것 같았다.
 
성교육은 단순히 성관계가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성관계를 물리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단순한 피임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 우리 사회에 왜 성적 상품화가 이루어지는지, 어떤 모양의 성 역할이 있는지,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편견 없이 설명하고 가르쳐줬다면 어린 마음에 혼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 출처 : 의왕시 공식블로그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백지상태 만들기 성교육을 실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르는 게 낫다, 식으로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통제시키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백지상태일 리 없다. 청소년기 남성호르몬 분비는 아동기보다 20~50배 증가한다. 생리적으로 성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더 이상 모르쇠 방식은 안 된다. 성은 가학적이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고, 남녀는 차이가 있고, 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성범죄에 대한 것까지 이해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 백지상태에서 갑자기 건강한 지식이 채워지진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에게도 성교육은 일상이어야 한다. 이 사회에서 성적 수치심과 트라우마에 벗어나고 건강한 성 의식을 느끼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
 
인간은 존속번식을 위해서 생애 정해진 정도만 성관계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은 지성이나 창의성 없는 무미건조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 ‘성’은 성관계뿐만 아니라 문화이고,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에서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 
 
성을 가리고, 덮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알고, 이해하는 것으로. 편견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하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며, 행동하는 것으로.
 
차근차근히 한 명, 한 명씩 건강하게 성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모두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어쩌다 한 번 있는 성교육 한 시간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수시로 건강한 성에 대해 사고하는 사회로 빨리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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