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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16 10:35

계백 "은고는 요녀가 아니고, 성충은 충신이 아니다!"

사택왕후가 모든 것을 틀어 버렸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결국 사택왕후가 문제였을 것이다. 사실 사택왕후와의 싸움은 그렇게 오래 끌 만한 것이 못되었다. 교기가 의자왕에 의해 숙청당하는 것이 즉위 2년째인 642년이었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하는 것이 660년의 일이니 그로부터도 무려 18년의 세월이 있다.

의자(조재현 분), 계백(이서진 분), 성충(전노민 분), 흥수(김유석 분), 은고(송지효 분)가 중요하게 활약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였을 것이다. 사택왕후가 물러나고 의자가 왕위에 올라 백제의 내정을 개혁한다. 그리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내정을 안정시키며 무왕에 이어 신라에 역습을 가한다. 즉위 2년에 이미 신라의 성 40여 개를 빼앗고, 즉위 15년에는 다시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신라의 성 30여 개를 빼앗으며 신라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동안의 정치적, 군사적 성공에 고무된 의자왕이 자만에 빠지면서 결정적으로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만든 폐정이 일어난다. 은고가 군대부인이라 불리우며 사서에서 요녀, 혹은 흰여우로 묘사되는 것도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워낙 사택왕후와의 싸움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다 보니. 무엇보다 요녀 군대부인 은고를 묘사하려 해도 사택왕후와 지나칠 정도로 겹치게 된다. 태자를 부여융에서 부여효로 바꾸고, 의자왕으로 하여금 사치와 향락에 빠지게 하며 성충을 죽이고 흥수를 내쫓고, 심지어 상좌평의 책상에 요녀를 뜻하는 흰 여우가 올라앉았다는 이야기마저 돌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럴 경우 사택왕후와 은고는 동어반복이 되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은고의 화장이 사택왕후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좋아할 시청자는 없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사택왕후로 인해 남은 분량이 얼마 없으니 그나마 주인공 계백을 제외한 의자와 성충, 흥수의 분량이 크게 줄어들어 버렸다. 이후 백제가 멸망하기까지 백제의 내정을 피폐케 할 요녀 은고의 활약 역시 분량도 줄어든데다 사택왕후와 지나치게 이미지가 겹치는 문제로 인해 그 역할을 다시 크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 계백마저도 12년이라는 시간을 공백으로 두고 건너뛸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의자와 성충, 흥수, 그리고 은고로서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하는 일이 없다.

진짜 하는 일이 없었다. 의자는 계백을 의심하는 것이 일이고, 성충과 흥수는 계백을 믿는 것이 일이다. 성충이 죽으며 유언으로 남겼던 기벌포와 탄현을 지키라고 하는 계략 역시 계백의 것이 되어 버린 채 나머지는 그저 구색이나 갖추는 정도로 남는다. 백제의 부흥을 이끌어야 할 의자, 성충, 흥수는 물론, 백제의 몰락을 이끌었어야 할 은고 역시 아무런 하는 일 없이 급작스레 마지막을 향해 치달아 가게 된다. 하다못해 음모를 꾸며 성충을 함정에 빠뜨리는 작은 수고조차 없이 은고가 직접 성충을 죽이게 되는 상황이 그래서 벌어진 것이다. 성충과 흥수에게도 역할이 있고, 은고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었을 텐데, 그 모든 과정과 결과가 생략됨으로써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은고가 요녀가 되지 못함으로써 성충 또한 충신이 되지 못하고 암살의 희생자가 되고 만 것이다.

차라리 지난주 은고가 김춘추와 내통하기 시작한 이후 계속해서 김춘추의 첩자 노릇을 하며 의자왕을 파멸로 몰아넣었다면. 의자왕의 허영과 의심을 자극하여 백제의 내정을 피폐케 하고, 뛰어난 신하인 성충과 흥수를 함정에 빠뜨려 제거한다. 상좌평마저 마음대로 하며 의자왕의 눈과 귀를 가리고 판단을 흐린다. 그런 가운데 계백 역시 의자의 의심과 은고의 계략으로 인해 손발이 묶인 상황이 되면서 신라가 반격에 나서는 틈을 주게 된다. 그 모든 것을 은고가 주재하고 난 다음에야 그를 요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은고는 기껏 성충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서도 왕 앞에 쉽게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비는 은고다. 당당하지도 오만하지도 교활하지도 냉정하지도 못하다. 어리석고 무지하며 쉽게 흔들린다. 단지 김춘추로 인한 가련한 희생양일 뿐 그녀는 요녀가 될 수 없다. 성충의 죽음은 그렇게 역사마저 무시한 채 간결하게, 흥수의 숙청도 그로 인한 자발적 떠남으로 마무리된다. 은고는 없다. 요녀도 흰 여우도 군대부인도 없다. 단순한 실수만 있을 뿐이다. 그녀는 불운했고 가련한 처지였다. 긴장이 무너져 버린다.

사택왕후의 분량을 줄이고 보다 은고에 집중했어야 했었는데. 사택왕후와의 싸움은 초반에 일찍 끝내 버리고, 중반 이후 은고와 성충, 흥수와의 싸움을, 그리고 계빽과의 갈등을 보다 첨예하게 부각시켰어야 했었다. 그랬다면 은고는 요녀가 될 수 있었고, 성충과 흥수도 충신이 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계백이 반강제로 은거하게 되는 상황도 시기적으로 맞게 된다. 그렇게 왕의 신임을 잃고 물러났던 계백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맞아 탄현에서 신라군을 막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사택왕후가 그 모든 것을 뒤집어 버렸다. 요녀도 없고 충신도 없고 영웅도 없다. 의자의 변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무튼 어차피 역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드라마 <계백>이지만 성충의 죽음에서 나당연합군의 공격까지 자기 입맛대로 마음대로 바꾸려 들고 있다. 성충은 원래 사치와 향락에 빠진 의자에게 간언하다가 감옥에 갇혀 죽게 된다. 그런 식으로 자객에 의해 암살당해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도 한 나라의 신하라는 흥수는 아예 마음대로 벼슬을 그만둬 버리고. 그리고 그것이 원래 의자왕 즉위 15년째인 656년의 일이었어야 했는데, 660년에 있었던 나당연합군의 공격이 바로 시작되려 하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은고가 요녀가 되는 과정 자체가 생략되어 버린 것이다. 이미 역사란 의미가 없다.

왕후가 나라의 기밀을 빼돌리는 중요한 죄를 저질렀는데 좌평이라는 이는 그것을 왕이나 조정에 알리기보다 직접 찾아가 설득부터 하려 하고. 그래서 성충이 죽은 책임을 의자가 은고에게 묻지 않겠다 하니 그대로 벼슬을 내놓고 떠나가려 한다. 하기는 왕이 되어서 감정에 치우쳐 은고를 용서하고 마는 의자도 마찬가지다. 왕은 무치다. 부끄러움이 없다. 왕의 음모와 계략에 의해 은고가 목씨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외로운 처지로 내몰렸어도 그것은 왕으로서 사과할 일도 반성할 일도 하물며 죄책감을 가질 일도 아니다.

왕이니 신하니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무책임하다. 왕은 왕으로서 단호하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나라가 망하는 이유가 있다. 그나마 성충만이 제대로 사실을 알고 왕에게 보고하려다 죽임을 당하지만, 결국 좋은 사람은 일찍 죽는 것일까? 은고의 명령마저 거역한 채 조미압을 살려 보낸 임자의 영리한 처신은 그의 이름을 불멸로 만든다. 백제를 멸망시킨 배신자로서. 은고가 아닌. 백제가 멸망한 것은 따라서 역사의 필연이었던 셈이다. 이런 나라가 오래 가는 예는 역사상 드물다.

처음의 기획의도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얼마나 사전제작이 중요한가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그때그때 임기응변하던 것이 조금씩 오류를 쌓아가더니만 지금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무진이 인기 있다고 몇 회 더 출연시킨 자체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제대로 이루어진 것 없이 지금은 이 드라마가 뭐 하는 드라마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은고는 요녀가 아니었다. 성충과 흥수도 충신이 아니었다. 다만 계백은 명장이었다. 의자와 성충, 흥수의 업적마저 모두 게걸스레 가져간 채 영웅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계백>이던가? 단지 시대와 사람의 이름만을 빈 판타지 드라마였던 것이다. 새삼 확인한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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