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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15 11:05

천일의 약속 "저는 알츠하이머 환자입니다!"

이서연의 가장 큰 비극은 박지형일 것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저 알츠하이머 환자입니다, 어머니."

이서연(수애 분)에게 가장 큰 불행은 어쩌면 알츠하이머가 아니라 하필 그녀가 사랑한 남자가 다름아닌 박지형(김래원 분)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아이다. 아직 철들지 않은 아이. 아이는 주위를 볼 줄 모른다.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 에고 덩어리다. 순수하게 자기 자신만을 바라본다. 그것을 천진하다 부른다. 천진해서 사고를 치고, 사고를 치고서도 반성할 줄 모른다. 자기만 좋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것이 그렇게 일방적인 것이던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을 책임지고,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어느 한 쪽이 기대고. 그것은 결혼이 아니다. 동정이고 적선이다.

"당신, 나 참 모른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힘들기에 기대고 싶고, 어렵기에 의지하고 싶다. 그래서 상대의 품에서 평안을 얻는다. 하지만 이서연은 다르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앞에 두고서도 끝끝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고집불통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만큼 여리다. 그러한 약한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다른 누군가에 짐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녀에게는 더 큰 짐이 된다. 박지형에게 의지하는 순간 박지형은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짐이 된다.

자신으로 인해 결혼마저 깨고, 결혼하자고 강요하더니만 부모에게까지 그 이야기를 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든다. 상식을 넘어선 박지형의 폭거에 당황해하고 곤란해하는 그의 어머니 강수정(김해숙 분)의 앞에서 그녀는 어떤 말을 했어야 했을까? 박지형의 진심에 감동해서 결혼하겠다 말해야 했을까? 잘 살겠다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허락해달라 말했어야 했을까?

결국 이서연은 박지형의 집요함 앞에 자신의 자존심을 꺾고 만다. 그토록 받아들이지 않으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견디던 고집을 놓아 버리고 만다.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며. 얼마나 매일매일이 비참하고 두려운지. 하루하루가 달라져가는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도록 만든다. 과연 그같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털어놓아야 하는 심정은 어떠할까? 그런데도 모자라 나중에는 그 남자의 어머니 앞에서 자기가 환자임을 밝혀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버티고 견디고 있었는데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다.

존중해 달라. 어째서 나를 존중하지 않는가. 박지형의 에고였다. 이서연의 처지나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는 박지형의 일방적인 이기였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이 먼저 인정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으로 인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붙여 버렸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과연 박지형에게 이서연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 존재하는 '대상'이었을까?

진정 이서연을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었다면 먼저 설득부터 했어야 했다. 의지하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에게 얼마나 이서연이 필요한가를 이야기했어야 했다. 얼마 안 되는 시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얼마나 이서연이라는 존재가 필요한가? 얼마나 이서연이 절실하고 간절한가? 그것이 존중이다. 그것이 이서연의 자존을 지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를 앓아서가 아니라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음에도 그녀를 사랑하고 필요로 해서. 그러나 그는 단지 병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책임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단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으로써 이서연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짐이 될까? 짐이 되어 일방적으로 의지할까? 기대면 편해질까? 그러나 이서연은 결코 그런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그렇게 살아왔다. 오히려 그녀의 여린 내면은 그녀의 주위로 단단한 껍질을 덧씌우고 말았다. 껍질이 깨지는 순간 그녀는 죽는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가 자기가 아니게 되고 만다. 그러나 박지형은 그것을 모른다. 아예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에 취해 있을 뿐이다. 그녀를 그토록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자기에 도취되어 있을 뿐이다. 이를 어찌해야 하겠는가?

하필 어쩌다 박지형이라는 남자를 만나서. 병만으로도 그리 버거운데 박지형으로 인해 그녀는 더욱 버거운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마음은 고맙지만 부담스럽다. 아니 마음이 고맙기 때문에 더 부담스럽고 고통스럽다. 오죽하면 강수정 앞에서 자기 자신을 알츠하이머 환자라 소개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까지 몰아세운 박지형을 그래도 그녀는 사랑한다.

아무튼 참으로 절박하다. 집행날자를 받아 놓은 사형수의 심정이 이러할까? 죽을 것을 안다. 아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어 사라지면 그 공포는 덜하다. 자기가 아니게 된다 한다. 모든 기억을 잃고, 인격마저 뒤바뀐 채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 죽어간다고 말한다. 알츠하이머란 자존에 대한 병이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질병일 것이다. 하물며 이서연처럼 에고가 강하다면. 하루하루 자신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며 더 망가지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어쩐지 고풍스럽기까지 한 문예적인 이서연의 독백이 그래서 깊이 와닿는다. 말이 넘치고 넘치면 시가 된다. 감정이 넘치고 생각이 넘치면 한 편의 시가 나온다. 교양있는 여자다. 출판사에 근무하고, 신춘문예에도 당선된 적이 있다. 김수현의 깊이있는 대사가 더욱 고통의 순간순간을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과 공포와 불안과 체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한 조용한 격정을 훌륭하게 표현해내는 수애의 연기력은 그저 감탄스럽다.

불쌍한 척 자기연민에 빠져 사는 김래원의 연기 역시 훌륭하기는 마찬가지다. 결코 동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연민조차 생기지 않는다. 자신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노향기(정유미 분) 앞에서조차 좋은 남자이고자 하는 모습에는 환멸의 감정마저 든다. 아마 이런 것을 두고 시쳇말로 찌질하다 하는 모양이지만. 이보다 더 찌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찌질함조차 멋있어 보이려 한다는 점에 김래원의 매력이 있다.

아마도 노향기의 역할이 이후 중요해지지 않을까? 그녀는 여전히 순수하다. 그리고 진실하다. 어쩌면 드라마 속 인물들 가운데 가장 솔직한 캐릭터일 것이다. 솔직하게 사랑하고, 솔직하게 체념하고, 솔직하게 그래도 사랑한다.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다고 얼마나 사랑받으며 자랐는가를 알게 한다. 이서연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캐릭터다. 그녀의 역할에 따라 드라마의 질감이 달라진다. 박지형을 위해서도 그녀는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오빠 장재민(이상우 분)의 역할은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오빠와 연인은 다르다. 가족은 의무지만 어디까지나 타인인 연인은 진심이 된다. 아직 박지형의 진심이 전해지고 있지 않을 뿐, 장재민은 끝까지 오빠로서 지켜보는 역할에 머물 것이다. 친동생역인 이문권(박유환 분) 역시 마찬가지다. 눈물은 더할 수 있어도 진심을 더하지는 못한다. 가족이란 그래서 더 슬픈 것이다.

이서연의 고모부(유승봉 분)의 티눈은 절묘한 메타포를 이룬다. 병을 이야기 않고 참고 있다가 걷지도 못할 정도로 키우고 만다. 그로 인해 고모(오미연 분)는 화를 내고, 사촌언니 장명희(문정희 분)는 황당해한다. 그러나 진심으로 걱정한다.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병을 숨긴 것이 도리어 더 큰 걱정을 끼치게 만든다. 그것을 지켜보는 이서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렇다고 병을 알리기에는 알츠하이머라는 충격과 공포를 그녀 자신도 다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기조차 두렵다.

어느 순간 자고 일어났더니 죽어 있더라. 모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일 게다. 고통스럽고 싶지 않다. 남들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하물며 자기가 자기가 아니게 된다고 한다. 창피당하고 싶지 않다. 모욕당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에 절망하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순간은 다가온다.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들은 그래서 더 애닲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곱씹으며 듣게 된다.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섬세한 감정의 선이 어느새 사람의 마음마저 움직인다. 그대로 따라간다. 작가 김수현의 힘이다. 그리고 연기의 힘이기도 하다. 새삼 깨닫는다. 나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진심으로 몰입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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