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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12 09:42

위대한 탄생 "이선희의 눈물, 위로받다!"

떨어뜨리기 위한 오디션이 아닌 붙여주기 위한 오디션에 대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시험을 치르는 목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떨어뜨리는 것, 다른 하나는 합격시키는 것이다. 자격이 없는 이를 걸러내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이를 골라내고. '못한다'와 '잘하지 못한다'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자격이 없는 자에 대한 경멸과 미치지 못한 자에 대한 연민이다. <위대한 탄생>의 오디션은 바로 이러한 가운데 후자에 속할 것이다.

가사를 외우지 못했다. 아니 긴장해서 그나마 외운 가사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도저히 다음을 진행하지 못하는 참가자 김시은씨에게 <위대한 탄생>의 멘토들은 잠시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도전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는 그래도 전혀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윤상은 그녀에게 아예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 부분은 허밍으로 처리하라 조언해준다. 누가 보더라도 탈락이 확정적인 상황이었지만 이선희는 그녀에게 먼저 놓아버리지 말라 희망을 말해주고 있었다. <위대한 탄생>의 장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알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어째서 그런 노래도 모르는가? 어째서 그런 쉬운 노래도 제대로 외워 부르지 못하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올 생각까지 했는가? 가사를 외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멜로디도 제대로 못 외우고서 오디션에 임하려는 것은 불성실하고 무책임하다. 그러나 이선희의 말처럼 제아무리 프로가수라 할지라도 하루만에 노래를 마스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가사를 외우고, 멜로디를 외우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것을 참가자들은 단 하루만에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중인 베테랑들조차 떨리는 무대에서 두려움과 긴장과 싸우며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꿈을 향해. 그리고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위해. 그런데.

그렇게 그들도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라온 이들인 때문이었다. 음악이 하고 싶다. 가수가 되고 싶다. 그러나 어떻게? 그나마 윤일상이나 이선희는 수월하게 음악의 길로 들어서고 성공에까지 이른 경우이지만 그들에게도 그리 간절하고 간절해서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선희가 '강변가요제'에서 불러 대상을 받은 'J에게'가 원래는 음반제작자로부터 거부당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노래였다던가? 이승환은 음반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가 마침내 자기 손으로 음반을 내고 있었다. 박정현은 가수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홀로 태평양을 건너 낯선 한국땅에서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었다. 과연 그런 열정들이 그렇게 하찮게, '너 못한다' 한 마디로 폄하될 수 있는 것인가?

<위대한 탄생>이 전부는 아니다. <위대한 탄생>에서 보여준 것이 그들의 실력은 아니다. 단지 약간 부족했을 뿐이다. 아주 약간 아쉬웠을 뿐이다. 아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지역예선에서 떨어뜨렸을 것이다. 위대한 캠프까지 올라온 이상 그들에게는 그만한 작은 가능성이라도 보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떨어진 것은 - 아니 합격하지 못한 것은 그것들으 채 꽃을 피우지 못했거나 아니면 <위대한 탄생>이 요구하는 기준에 조금 미치지 못해서.

못해서가 아니다. 잘하지 못해서다.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다. 충분히 미치지 못해서다. 그같은 진심이 참가자를 향한 윤일상의 위로와 이선희의 눈물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나라도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숨겨진 가능성을 찾아내고 계발해주기 위해서. 그래서 멘토들은 전혀 아니다 싶은 참가자에게조차 기회를 주려 한다. 단점을 지적하고, 장점을 찾아주고, 발전을 위한 조언을 해주고, 그리고 심지어 오디션의 무대에서 실수한 것에 대해 괜찮다며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자 한다. 지난주 '어둠의 마성' 전은진이 가사실수에도 불구하고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녀의 가능성을 보고자 한다.

하기는 바로 그런 것이야 말로 <위대한 탄생>만의 '멘토제'가 갖는 강점일 것이다. <위대한 탄생>은 오디션으로서 이중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멘토로부터 멘티로 선택되기까지, 그리고 멘토의 멘티가 되어 생방송의 무대에 서고 나서부터. 전자는 멘토를 향한 것이다. 후자는 대중을 향한다. 전자는 멘토의 선택을 받는 것이 목적이고, 후자는 대중의 선택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후자의 경우 멘토와 멘티들과 함께 한다. 예선을 통해 보여진 재능과 가능성 가운데 멘토가 얼마나 그것을 훌륭히 단련시켜 대중들 앞에 내보이는가?

<위대한 탄생>의 생방송 무대는 바로 멘토와 멘티가 함께 대중들 앞에 선택되고 판단되어지는 자리인 것이다. 멘티만이 아니다. 예선에서 보인 모습들에 비추어 얼마나 성장했는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그는 얼마나 대중가수로서 완성되어 있는가? 그러라고 멘토가 있는 것이다. 멘토는 멘티를 통해 자신의 또다른 음악적 역량을 대중에 선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멘토 입장에서도 멘토를 선택하는데 있어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멘티들에게는 데뷔가 걸려 있지만 멘토들에게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 거기에 걸려 있다.

못하는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못하는 사람을 걸러내고 막연히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멘토 자신이다. 눈앞의 참가자 가운데 누가 과연 자신과 함께 주어진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훈련을 받고 생방송 무대에서 대중들 앞에 설 수 있을 정도가 되겠는가? 아니 설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 누구보다 뛰어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멘티가 거두는 성적이야 말로 멘토의 자존심이다. 다른 누구에게도 그 판단을 양보할 수 없다.

때때로 멘토의 판단과 대중의 판단이 엇갈리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박영삼씨의 무대가 그리도 훌륭했지만 그러나 그가 끝내 선택되지 못한 이유다. 잘하고 못하고 문제가 아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한 줄로 세워 그 가운데 못하는 사람만 떨어뜨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얼마나 자기와 함께 어울려 성장해 갈 수 있는가? 장점을 보게 되고 개성에 걸어보게 된다. 김시은이 얼마나 가사를 못 외우고 노래를 엉망으로 불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시은이 제대로 불렀을 경우 얼마나 대단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승환은 끝내 김시은을 다시 살려내고 있었다.

아마 많은 시청자들이 <위대한 탄생>을 좋아고 매주 꼬박꼬박 지켜보는 까닭일 것이다. 배제가 상식처럼 여겨지는 사회. 못하는 사람을 떨구는 것이 잘하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못하는 사람을 떨구어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잘하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탄생>에서도 비판이 가해진다. 누가 더 잘한다. 누가 더 못한다. 하지만 멘토들의 생각은 다르다. 더 잘하는 사람과 그보다 조금 덜 잘하는 사람들. 모두가 잘한다고 했을 때 그 판단도 선택도 달라진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반짝임마저 눈여겨 보게 된다. 마치 무한경쟁사회에 문득 구원과도 같이 내밀어지는 따뜻한 손과도 같이. 따뜻하다.

아무튼 푸니타의 노래에는 필자 역시 소름이 돋고 말았다. 윤상은 푸니타더러 훌륭한 포크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지만, 필자는 오히려 그녀에게서 소울을 느꼈다. 어떤 사람들은 뽕기를 느꼈다고 말한다. 맑은 구성짐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시골에서, 일본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미국의 외진 도시에서, 할렘의 흑인들에게서, 혹은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에게서, 동남아시아나, 남미나, 유럽마저도. 내면의 저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올려지는 진솔한 소리는 인류 보편의 공통의 것이다. 한국계 어머니와 인도인 아버지를 둔 그녀의 출신은 더욱 국경을 넘어 보편을 지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의 자격>에서 박완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외국인이 한국말로 노래를 부를 때 더욱 발음에 신경써 노래를 부른다. 또박또박하다고나 할까? 곱씹어 부르는 담백함이 아름다운 멜로디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슬픔에 매몰되지 않는 청량함. 구성짐이란 단지 슬픔을 슬픔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슬픔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그녀의 비브라토는 분명 국악과 소울, 인도의 전통음악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있었다. 컨트리이기도 했고 알앤비이기도 했다. 정직함보다 더 위대한 음악은 없다.

구자명은 기대한 대로였다. 그의 강점이다. 정직한 것. 바로 앞에 김태극은 그 자신도 인정했듯 상당히 오버필이었다. 그에 비해 구자명은 오로지 노래의 가사만을 생각하며 멜로디만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감정이 넘치기에 오히려 비울 수 있다. 비어 있어도 그 자리를 가득 채울 수 있기에 굳이 채우려 하지 않고 비어 있는 채로 남겨둘 수 있다. 노래의 사이 사이 텅 빈 여백이 그렇게 듣는 이의 감정을 채운다. 구자명의 감정을 채운다. 윤일상도 인정했다. 진실함보다 더 훌륭한 음악은 없다.

김태극은 필자가 무척 좋아하는 참가자 가운데 하나다. 물론 실수는 했다. 심사위원이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기가 자기 노래를 판단해 버렸다. 샘 카터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스스로 부른 노래의 가치를 까먹는 행위다. 판단은 청중이 한다. 심사위원이 한다. 겉넘었다. 하지만 오버필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잘한다. 절제는 필요하겠지만 음악인 가운데 그렇게 자신감 넘치고 되바라진 캐릭터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심사위원 앞에서도 당당한 그 시건방짐이 어쩐지 유쾌하기까지 하다. 모두가 예의바른 가운데 그런 악동 하나 정도는 활력소가 된다. 역시 데뷔하여 연예계에서 활동하자면 보다 전략적인 판단과 행동이 필요하기는 할 것이다. 영리해져야 한다.

박지혜의 탈락은 아쉬웠다. 그러나 그녀는 지역예선 이후 한 번도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 보이지 못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무척 안타까웠다. 그에 비하면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김경주는 차근차근 자신의 강점과 개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미 가지고 있다기에는 오히려 그녀의 성실함과 꿈에 대한 열정이 그것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떨어졌지만 충분히 다시 부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배수정의 부활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비록 한 번의 무대로 크나큰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 한 번으로 판단하기에는 그녀가 예선에서 보여준 장점과 가능성이 너무 아쉽다. 단지 엿보인 정도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형태로 보여지던 것이었다. 너무 완성된 형태로 보여진 것이 독이 되었다.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예선에서 보인 자신을 뛰어넘는 것. 가장 어렵다.

이선희의 눈물만이 기억에 남는다. 애슐리 윤의 무대가 끝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데 이선희는 말라고 있었다. 멘토들 모두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한다고. 눈물은 눈물로 닦는다. 진심어린 눈물이야 말로 가장 깨끗하게 눈물을 훔쳐낸다. 모두에게도 구원이 아니었을까?

위로가 된다. 위로를 받는다. <위대한 탄생>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지친 마음이 치유되는 그런 상쾌함마저 느끼게 된다. 울어줄 줄 알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려줄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멘토들이다. 그런 프로그램이다. 그것이 무척 좋다. 실패해도 좋다. 실수해도 좋다. 그것이 당신의 전부는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더 큰 더 넓은 다른 곳에 있다. 필자가 무척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말없이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진다.

패자부활이 그래서 오히려 기분이 좋다. 못해서 떨어진 이들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다. 아쉽게 미치지 못한 이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들이 끊이지 않지만 그런 진심을 믿는다. 하나같이 필자가 무척 좋아하고 신뢰하는 음악인들이기도 하다. 모두에게는 자격이 있다. 단지 먼저 기회를 잡고, 그보다 조금 늦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여섯 사람을 더했다. 모두 가운데 단지 여섯 사람을 더했을 뿐이다. 여운이 깊다. 진하다.

재미있었다. 감동이 있었다. 무엇보다 예고편이 있었다. 시즌 1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르고 걸러진 마지막 34개팀이 멘토의 선택을 받기 위해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다. 과연 선택받고 환호할 사람은 누구인가? 선택받지 못하여 눈물을 흘릴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또한 어떤 멘토를 선택할 것인가? 그 희비의 극적 갈림이 마침내 펼쳐지려 한다. 어떤 드라마일 것인가? 기대가 크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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