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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5.05.20 05:32

[권상집 칼럼] 어벤져스2, '1000만 돌파 기록이 주는 시사점, 닥치고 독점해라'

빈 수레가 요란한 대한민국 문화의 빈곤함

▲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월트디즈니코리아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어벤져스2가 국내에서 외화로는 최단기 1,000만 기록을 돌파했다. 이미 앞서가는 언론들은 외화 기록인 아바타의 1,330만 기록을 깨는 건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실 지금 같은 분위기로는 못 깨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모든 상영관이 현재 어벤져스에 독점적으로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의 성장가능성이 창조경제라는 국정 기조로 인해 더욱 주목을 받고 있지만 어벤져스2의 1,000만 기록을 보면서 국내 문화 인프라가 얼마나 독점에 휘둘리고 빈곤한지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어벤져스2는 이미 개봉 전부터 예매율이 96%를 기록했고 사전 예매량 또한 95만장이라는 상상을 초월한 수치를 보여주며 관객의 기대를 모았다. 더욱이, 미국 할리우드가 중국, 일본 등의 관심을 뒤로 하고 대한민국의 서울 한복판에서 어벤져스를 촬영하면서 이 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관심은 더욱 더 쏠렸다. 우리 모두 한번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영어로 ‘Seoul’ 이라고 찍혀 있는 모습을 보고 싶고 한국의 도시가 어떻게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비춰지는지 보고 싶은 욕구가 은연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벤져스2는 뚜껑을 열어보니 지루하고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전개 역시 매우 부족했다. 해당 영화의 스토리가 과연 한국 영화로 제작되었다면 투자 받기 쉽지 않았을 정도로 전반적인 내용은 부실했다. 요란한 화면과 시끄러운 사운드로 관객의 귀와 눈을 사로잡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였을 뿐인데 우리는 왜 이 영화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까.

지난 2004년,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대형 영화 배급사들은 초기 관객몰이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과거 90년대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이 단관 극장을 통해 개봉했을 때에는 관객들의 입 소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기업이 영화 사업에 뛰어들기 전이었기에 그 당시에는 대한극장,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 등이 상영관의 주류를 차지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가 도입되고 대기업이 영화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관 사업을 시작하면서 흥행 요소는 초기 압도적인 스크린 점유율과 관객몰이로 바뀌었다. 어벤져스2 역시 개봉 첫 주에 무려 10,000회가 넘는 상영을 전국의 영화관에서 했다고 하니 이건 독점을 넘어서 파격적 초독점이라고 표현해도 할말이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전국 어딜 가나 상영관에 어벤져스2가 깔려 있고 관객들의 선택권은 이로써 또다시 쉽게 박탈당한다. 아울러, 음악이든 영화든 대작 또는 빅스타가 컴백하면 모든 제작사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피해서 개봉 시기 또는 등장 시기를 조율한다. 문화적 빈곤함의 악순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압도적 배급 또는 압도적 광고 회수를 통해서 경쟁자를 무력화시켜 급기야 경쟁자가 시장에 아예 등장조차 못하게 만드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시장의 절대 승리 요건이다.

그 결과 국내 대기업, 특히 영화의 플랫폼인 상영관을 가지고 있거나 음악의 플랫폼인 음원 사이트 또는 방송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의 입맛에 맞게 국내 콘텐츠는 제작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소비자 또는 관객을 만날 기회조차 영원히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영화를 멀티플렉스에서도 최대 2개관 이상 상영하지 못하게 하는 프랑스 정부의 규제는 우리에게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문화의 다양성보다 단일 문화를 중심으로 한 통일성, 독점 효과가 국내 문화콘텐츠 기업들에겐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다.

가끔 요즘 젊은이들도 90년대 문화를 그리워한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는 단순히 그 당시 문화콘텐츠가 더 좋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그 시대를 조금 더 추억하고 향수에 젖어 드는 이유는 적어도 문화콘텐츠의 다양성이 지금보다 그 당시가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기가 다소 없더라도 보다 다채로운 음악과 영화가 80~90년대에는 선보였고 멀티플렉스가 없더라도 단관 극장들이 여러 장르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문화적 풍요로움을 조금 더 우리에게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시대 문화를 더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지금은 이제 이런 얘기조차 문화콘텐츠 기획자들에겐 한가로운 얘기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대형기획사가 내세우는 가수, 대기업 영화배급사가 공급하는 대작에 빛이 가려 이 순간에도 신음하는 아티스트, 영화 감독들은 무수히 많다. 예전에는 이들에게 꿈을 갖고 노력하라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자신의 창의적인 역량만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었고, 관객 및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두 다 꿈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2015년 현재 성공공식은 정해져 있다. 국내는 100억이 넘는 대작, 해외는 1,000억이 넘는 초대형 대작은 멀티플렉스를 통해 초기 점유율 80%를 유지하며 관객을 공략한다. 그리고 1일 100만 관객 돌파, 2일 200만 관객 돌파와 같은 광고성 기사로 독립 영화, 중소형 영화를 시장에서 퇴출시킨다. 음악 분야 역시 동일하다. 압도적 물량과 홍보로 ‘음원차트 올킬’을 해버리는 대형 기획사의 성과는 이제 놀랍지 않다.

그러므로 어벤져스2가 설사 1,500만 기록을 세운다고 해도 우리는 이제 놀라지 않게 되었다. 이 역시 허무한 과거 기록으로 영화 역사에 남을 테니까. 왜냐하면 올 여름 터미네이터 시리즈, 미션임파서블 시리즈 등이 또 한번 압도적 스크린 확보를 통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아바타 시리즈 또는 또 다른 국내 또는 해외 영화가 스크린 점유율 80%를 넘어서서 90%를 차지하여 2,000만을 돌파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현재 대한민국 문화계에 딱 맞는 말이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계열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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