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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11.10 13:39

영광의 재인 "재미는 있는데 몰입이 되지 않는다."

마치 드라마처럼 드라마를 만들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드라마란 픽션이다. 픽션이란 허구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 안에서 그것은 사실이 된다. 그를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된다. 시청자로 하여금 최소한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그것이 사실로써 여겨질 수 있도록. 기믹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어떤 드라마는 한 가지 기믹을 더하게 된다. 이것은 어차피 거짓이다. 실재하지 않은 허구다. 픽션임을 선언한다. 이것은 단지 드라마일 뿐이라고. 그러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시청자는 관객으로서 단지 그것을 본다. 혹은 드라마 속의 드라마의 인물로써 그것을 체험하게 된다. <영광의 재인>이 그렇다.

도대체가 아버지 윤일구의 초상이 있는 방을 지나치고 있다는 이유로 윤재인(박민영 분)의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라니. 이전에도 어머니 여은주(장영남 분)가 식물인간에서 깨어났을 때 윤재인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심령드라마도 아니고. 논리도 개연도 아무것도 없다.

극적으로 과장된 서재명(손창민 분)의 캐릭터와 마치 그린 듯한 서인철(박성웅 분)의 캐릭터, 더구나 김인배와 허영도(이문식 분)의 인연에 이르면 작위성은 더욱 강해진다. 하기는 거대상사의 입사시험 자체가 하나의 게임이다. 단계적으로 더 강한 미션이 주어지고 주인공들은 그 미션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시련을 겪고 성장하게 된다.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를 위한 설정이다.

거의 그렇다. 거의 전반적으로 그렇게 이루어진다. 좋은 말로 장르에 충실하고, 나쁜 말로 진부하다.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와 본 듯한 설정, 본 듯한 이야기. 그러면서 그것이 과장된 극적인 요소에 의해 보기 좋게 포장된다. 찌개를 끓이는데 넣는 라면스프와 같다. 부자연스럽지만 맛있다. 양념의 맛이다. 뻔한 음식이 뻔하게 맛있어진다.

문제라면 그런 경우 어느 정도 빈틈을 보여야 더욱 허구성이 강해진다는 점일 것이다. 아예 거짓말을 하겠다고 말하고 거짓말을 하는데 너무 진지하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듣고 있는데도 너무 진지하여 얼핏 착각하게 만든다. 거짓말인 것을 알고 들으면 황당한 것이 재미있다.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사실이니까 흥미롭게 재미있다. 그런데 거짓말인데 사실같다. 사실인데 거짓말 같다. 필자가 <영광의 재인>을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 가운데 하나다.

어떤 초월적인 힘이 서재명을 응징하고 윤재인을 보살피려 한다. 그 힘에 의해 어머니 여은주와 딸 윤재인이 이끌린다. 아버지 윤일구와도 딸 윤재인은 아무거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끌리고 만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사실처럼 진지하면 허황되어진다. 차라리 거대상사 입사시험처럼 과장되어 드라마적 요소로써 쓰이고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너무 실제처럼 진지하다 보니 거부감부터 들게 된다. 거짓말임을 선언하고 거짓말을 하는데 거짓말장이가 된다. 차라리 그냥 거짓말을 티내고 했다면 조금은 더 편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것을.

주인공의 캐릭터도 에러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드라마의 주제일 것이다. 윤재인의 캐릭터는 이미 완성되었다. 순수하고 밝고 에너지 넘치는 인물. 여기에서 몇 가지 더해봐야 더 이상 변화를 꾀하기는 힘들다. 윤재인의 캐릭터는 그래서 매력이 있다. 그런 반면 정작 김영광(천정명 분)과 서인우(이장우 분)의 캐릭터는 미완인 채다. 김영광은 자격지심에 자기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고, 서인우는 지독한 컴플렉스로 인해 세상에 나오려 해도 나오지 못한다. 결국 허영도의 말처럼 윤재인에 의한 이들의 갱생기 - 성장기가 주된 내용이 되지 않을까?

여러 이야기와 과정들을 통해 자격지심에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우던 김영광이 점차 세상을 알아간다. 자기를 굽히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진짜 자존심이 무언가를 깨달아 간다. 괜히 고개만 뻣뻣이 목소리를 높이던 것에서 조용조용한 목소리로도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 수 있음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김영광에 대해 서인우 역시 이제껏 자기를 억우르고 있던 트라우마와 컴플렉스로부터 그것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용기화 힘을 얻게 된다. 누구를 통해서? 윤재인을 통해서. 그녀는 그들을 비추는 빛이다. 2차원의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은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로소 신경쓰이는 여자가 생겼다. 책임져야 할 동생이 생겼다. 그리고 어릴 적 풋사랑과 아버지가 저지른 죄의 증거가 눈 앞에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림자가 어울리는 입체적인 얼굴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 김영광과 서인우의 얼굴이 2차원의 평면적인 모습이었다면 이후로는 입체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빛은 입체일 필요가 없다. 윤재인은 윤재인인 채로도 좋다.

아무튼 이래저래 몰입하기 힘든 드라마다. 김영광이 입사지원서를 낸 사실을 알고 김영광의 누나 김경주(김연주 분)를 찾아가 쏟아붓는 서재명의 말은 오래된 창고에 보관된 낡은 영상을 보는 듯하다. 그것을 듣는 김경주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윤재인과 김영광을 둘러싼 환경 역시 오랜 만화책에서 오려낸 듯 빛바랜 평면이다. 차라리 아예 몰입을 포기하고 드라마로서만 보려 한다면 그러나 나름대로 장르가 주는 재미를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냥 보면 된다. 드라마로써. 드라마이기 때문에. 위화감이 들었다. 재미는 있는데 어쩐지 몰입이 되지 않는다. 흥미는 있는데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경꾼인 채면 좋았던 것이다. 드라마를 드라마로서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이입하여 보려 했다. 이것은 드라마다.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철저히 시청자를 객체로써 유리시킨다.

상당히 독특한 드라마다. 그리고 어려운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 경계가 애매하다. 거짓말을 거짓말처럼. 사실을 사실처럼. 거짓말이 사실이 되고 사실이 거짓말이 되면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기준마저 다 다르다. 아슬아슬한 경계라 할 것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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