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5.05.16 11:48

[칼럼] 육체의 장애, '성적 장애는 아니다'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섹슈얼 강연회 뒤풀이 모임에 참석하여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성에 관련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중 한 남성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화의 주제는 막힘없이 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 남성분과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진행해나갔다. 한 가지 작은 불편함은 내가 그 남성분의 말을 거의 못 알아듣는 바람에 친구가 통역에 가깝게 대화를 도와줬다. 그 남성분은 뇌병변장애가 있어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고, 말할 때 발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안하지만, 다시 말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하다 보니 예전에 그 남성분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성 경험이 담긴 에세이였는데, 순수하고 솔직한 문체여서 인상 깊게 읽었었다. 그런데 그 에세이를 읽으며 장애인이다, 비장애인이다, 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에세이의 주인공을 직접 만나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확히 에세이 주인공이 장애인이어서 뜻밖이었다.
 
 

▲ 장애인 심볼 ⓒTraffic of Seoul

왜 뜻밖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크게 보면 성에 대해 차이가 없는 게 당연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누구든 성욕, 성적 판타지, 성적 희열감과 좌절감 모두 느끼는 게 당연하다. 단순히 나와 교집합을 이루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성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 것뿐이었다.
 
누구나 교집합을 이루지 않는 성은 존재한다. 동성애자 입장에서는 이성애자가 여집합일 수 있다. 소수성애자(게이, 트랜스젠더 등) 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다른 처지는 존재한다. 하다못해 누군가는 빌 클린턴(前 미국 대통령. 임기 중 성 추문 관련 대배심 증언에서 ‘구강성교는 했지만,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과 교집합 혹은 여집합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장애인은 성적 소외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을 무성애(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하거나 성적 피해 혹은 가해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 극단적인 인식이 장애인을 성적으로 소외시킨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인 것과 상관없이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도 있고, 여집합을 이루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다 보면 성생활이 비장애인보다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외모로 차별받는 경우도 있고, 사회생활을 못 하는 처지나, 보호자가 필요한 처지에는 성적 파트너를 만나기 힘들 수 있다. 그리고 장애인의 가족이나 친구가 성생활을 도와주는 일은 쉽지 않다. 가령, 육체의 장애를 입고 집에서만 생활하는 딸에게 남자친구와 은밀한 시간을 제공해주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비장애인보다 성생활의 애로사항이 많을 수 있다.  
 
모임에서 만난 남성분의 에세이는 공감되고, 재밌는 연상이 되어 웃음도 나는 담백한 글이었다. 여집합보다 교집합이 더 큰 글이었다. 점잖고, 순수한 실제 대화에서도 이질감보단 공감대가 형성됐고, 모임의 누구보다도 가장 소통이 잘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육체의 장애를 입은 사람이 멀게 느껴져서 장애인의 성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삶에서 육체의 장애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고로, 장애인의 성 또한 특별히 여기지 않았다. 장애나 장애인의 성은 이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저 모임에서 만난 남성의 에세이가 장애인이 써서 뜻밖이라고 느낀 바보 멍청이가 된 것이다. 뜻밖일 필요가 없다. 그 남성과 나의 성생활의 여집합을 얼마나 환산할 수 있기에 뜻밖이라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어쩌면 무관심뿐만 아니라 어떤 편견이 있었던 게 아닌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누군가는 장애의 기준이 단순히 제도 속에서 만든 등급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외모의 차이일 수도 있다. 불편함의 수준은 누구나 나뉠 수 있다. 하지만 성적인 영역은 안 나뉜다. 나의 삶 속에는 육체의 장애를 가진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불편한 육체라는 이유로 특별한 게 아니기에 장애인이나 장애인의 성에 대해서도 앞으로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다만, 무지하고 무심했던 상태에서 깨달은 것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육체의 장애를 가졌다고 서투른 관심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떤 편견도 필요 없는 게 아닐까?

모바일에서 기사보기